낭만, 윤슬 보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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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18 19:40조회 54댓글 0낙애
그 시절의 나는 사랑 앞에서 한없이 투명하고 나약했다. 너는 언제나 햇살을 머금은 꽃처럼 피어 있었고, 나는 그 눈부심을 시샘하면서도 더 깊이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내 마음은 갈려 나간 조개껍데기처럼 날카로워질 때도 있었지만, 네가 내뱉는 숨 한 올에도 심장이 멎을 듯 떨려 하던 나는 결국 너라는 바다를 유영하는 어린 고래였다.

"물결이 빛나는 건 파도가 부서지고 있기 때문이래."

너는 윤슬이 가득한 수평선을 바라보며 그렇게 말했다. 너의 목소리에는 어쩐지 씁쓸한 단맛이 묻어 있었다. 그때의 나는 네가 하는 말의 의미를 다 알지 못해서, 그저 우아하려 애쓰는 네 손끝에 얇부진 초콜릿 하나를 쥐여줄 뿐이었다. 그것이 내가 너에게 줄 수 있는 가장 다정한 영원이었다.

우리는 서로의 맨몸을 비벼 불씨를 만들려 애쓰던 서툰 계절을 통과했다. 지독히 뜨거운 겨울 바다에 빠져 익사하는 고래가 되어도 좋으니, 정작 바다는 고래가 죽어가는 줄도 모른 채 흘러가도 좋으니, 나는 그저 너에게 닿고 싶었다.

"그대여, 쌉쌀한 유리 조각 같은 마음에도 어떤 단맛이 숨어 있을까요."

시간이 흘러 다시 마주한 너는 여전히 꽃처럼 지고도 향기를 남기는 사람이었다. 힘없이 고꾸라지는 사랑 또한 사랑이며, 닳아 너덜너덜해진 편지를 쓸어내리는 시간조차 우리를 빛나게 했음을. 노을을 담아 사랑을 말하고, 파도를 담아 이별을 말하는 무한한 향기 속에서 나는 더 이상 비참해지지 않기로 했다. 부서진 조개껍데기들이 모여 모래사장을 빛내듯, 아팠던 순정도 결국은 네가 선물한 윤슬의 일부였으니까.

너라는 바다가 내게 건넸던 그 감미로움은 도대체 어떤 이름의 맛이었는지. 대답 대신 불어오는 바람에 눈을 감으면, 눈동자에는 노을이 담기고 입술에는 햇살이 맺힌다. 그거면 충분했다. 우리의 낭만은 보존될 것이고, 나는 이 아름다운 결핍을 품은 채로 다시 빛나는 물결을 향해 헤엄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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