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누가 누구의 마니또일까"

눈이 다 녹았다.
운동장은 물기만 남았고, 어제랑은 전혀 다른 풍경이었다.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뭔가 기대했던 내가 웃겼다.
책상 위엔 아무것도 없었고,
그냥 원래대로의 평범한 수요일이 시작됐다.

요즘은 쉬는 시간에도 눈이 자꾸 돌았다.
누가 누구의 마니또일까,
나는 누굴 챙겨야 하고, 날 누가 챙기는 걸까.

"서준아."
생각에 잠겨 있는데, 임서아가 내 책상 앞에 섰다.
"너 혹시 이 초콜릿 좋아해?"
"좋아하지. 어? 갑자기 왜?"
"아니, 그냥. 취향 체크."
그리고는 씨익 웃더니 돌아갔다.

'...진짜 왜 저러지.
장난이겠지? 아님, 내 마니또야?'

아예 감이 안 왔다.
이건 게임이라지만, 다들 진심이 섞인 느낌이라 더 어려웠다.
누군가가 나를 챙기고 있다는 건 분명한데,
누군지 모르니까 괜히 더 복잡했다.

점심시간엔 괜히 하윤이 쪽을 바라봤다.
그 애는 친구들과 웃으며 밥을 먹고 있었고, 나랑은 눈도 안 마주쳤다.
어제 받은 장갑 한 쪽을 김하윤에게 돌려주었다.

그냥, 어제만 그랬던 걸까?
괜히 내가 신경 쓰는 걸까?

종례 후 복도에서 준호가 말했다.
"야, 너 마니또 누군지 진짜 모르겠냐?"
"어. 하나도 감이 안 와."
"재밌겠다, 너는. 너만 멀쩡하게 모르는 거 같아서. 이런 게 마니또지.나는 챙겨줄 때마다 너무 티가 나서.."

나는 말없이 웃었다.

진짜, 하나도 모르겠는데.
괜히... 김하윤이 눈에 자꾸 들어오는 건 왜일까.

___

20화 "내 진심은 전해지지 못했다"

목요일 늦은 밤, 방에 앉아 있다가 책상 서랍을 열었다.
종이봉투 하나와 작은 상자, 그리고 잘 안 쓰는 편지지 한 장.
나는 그것들을 꺼내 책상 위에 올려놨다.

내일이 김하윤 생일이었다.

사실 아까 학원에서도,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 저녁을 먹을 때도,
계속 고민만 했다.

뭘 주면 좋을지.
아니, 줘도 될지.
그걸 받아도 이상하지 않을지.

너무 티나면 안 될 것 같아서 괜히 머뭇거렸다.

나는 책상 앞에 앉아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다가,
가방 옆에 두고 몇 번 만지작거렸던 립밤을 꺼냈다.
며칠 전에 올리브영에서 샀다. 그냥 괜찮아 보여서.

편지도 지금까지 쓴 것 중에 가장 길게 썼다.
'마니또니까 쓴 건데, 괜히 감정이 들어가버렸나..?'
잠깐 고민했다.

'하윤아.
생일 축하해.
너가 뭘 받고 싶은지 몰라서,
그냥 너가 예전에 한 번 흘리듯 말한 거 기억해서 골랐어.
맞을지 모르겠다.

요즘 많이 웃는 거 같아서 다행이야.
계속 잘 지내.

-너의 마니또'

그냥 상자에 립밤 하나 넣고, 편지지도 넣어
종이봉투에 담았다.
그리고는 가방에 조심히 넣었다.

마니또라서 주는 건데..
이상하게 자꾸 혼자 엄청난 고백이라도 하는 느낌이었다.


다음 날 금요일 아침.
교실에 들어가자, 김하윤 책상 위에는 선물이 쌓여 있었다.
작은 선물 상자 몇 개, 포장지, 리본, 손편지.

나는 조용히 내 자리로 가 가방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또 다시 준호 자리로 가는 척 하면서
하윤 책상 서랍에 종이봉투 하나를 밀어 넣었다.
아주 조용히, 몰래.

1교시 쉬는 시간.
하윤은 들뜬 얼굴이었다.
"헐, 나 선물 진짜 많이 받았어!"
이보민이 "와, 하윤이 진짜 많이 받았다. 이거 누가 줬어? 대박이다." 며 포장 뜯는 걸 도왔다.

근데 그 중에서,
하윤이 유난히 오래 들여다보는 선물이 하나 있었다.

"이거 뭐야.. 색깔 완전 예쁘다."
하윤은 작고 반짝이는 포장지를 조심스럽게 펼쳤다.

립밤이었다.


근데.. 내가 준 게 아니었다.

나는 순간 멈칫했다.
서랍에 넣은 건 분명 나였는데,
하윤이 손에 들려 있는 건 다른 거였다.

편지를 슬쩍 보더니
"이거 시연이가 준거야?"
하윤이 웃었다.
"이거 내가 평소에 쓰던 브랜드인데, 색 어때? 잘 어울려?"
"우와! 진짜 잘 어울려!"

나는 고개를 숙였다.
내가 고른 건 색도 별로 없었다.

서랍을 열어보는지 보려 했지만,
끝내 하윤은 내 것을 꺼내지 않았다.

다른 립밤 때문에 내 진심은 전해지지 못했다.

___

21화 "무시당해버린 내 진심"

김하윤은 계속 친구들과 수다를 떨었고, 선물들 얘기도 했다. 방금 받은 립밤은 벌써 가방 속 파우치에 들어가 있었고, 그걸 꺼내 윤서아랑 거울을 보며 발라보기도 했다.

나는 여전히 초조했다.
내가 넣은 건 아직도 서랍 안에 있었다.
오늘 아침 내가 넣었을 때 그대로.

서랍을 보지 않은 건지,
봤는데도 그냥 모르는 척 하는 건지,
아니면 진짜.. 모르고 있는 건지.

수업 사이사이 틈만 나면 자꾸 시선이 하윤이 책상 서랍으로 향했다.
그게 너무 티날까봐 중간중간 억지로 창밖도 보고, 물도 마시고, 괜히 스트레칭을 한번 하기도 했다.

그날 점심시간.
나는 일부러 하윤보다 늦게 교실에 들어왔다.
근데 책상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종이봉투가 꺼내져 있는 것도, 버려진 흔적도.
서랍 속을 다시 확인하려는 듯, 눈이 자꾸 그 아래로 향했다.

...그대로였다.

책상 아래 그 자리에, 아직도 내 편지랑 립밤이 남아 있었다.
왜 안 꺼냈지? 안 보였나? 아님, 알고도 일부러 안 본 척 하는 건가?
모른다고 하기엔, 너무 눈에 띄게 놨는데.
쪽지가 붙어 있었고, 포장도 돼 있었고, 아예 서랍 안 한가운데에 넣었는데.

그날 저녁.
집에 와서 가방을 풀면서,
자꾸 오늘 오전 그 장면이 머릿속을 반복했다.

하윤이 갖고싶어하던 브랜드.
자기가 평소에 썼던 색.
웃으면서. 고마워하면서. 좋다는 듯 말하면서.

나는 그 순간, 그냥 뒤로 밀려난 사람이었다.
있지만, 없는 사람처럼.

그 편지는, 읽히지 않았다.
무시 당해버린 내 진심은 그냥 그 자리에 남았다.
전해지지 못한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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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2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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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나잇 - 큐리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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