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6월 14일 아침. 창밖으로 들어오는 햇살은 벌써 초여름 기운을 품고 있었다.

2학년 A반, 평소처럼 시끌벅적한 등교 시간. 교실 안에는 누군가 가져온 가십, 늦은 과제에 대한 푸념, 선생님이 언제 올까 하는 헛소리들이 뒤엉켜 있었다.
그 속에서, 강도희는 조용히 자기 자리에 앉아 있었다.

책상 위에 팔을 포개 얹고, 고개를 비스듬히 기대며 한쪽 귀에만 이어폰을 꽂은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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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가 끝나고, 평소처럼 반 아이들은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교실을 빠져나갔다. 강도희도 얼른 가방을 챙겨들고 밖으로 나섰다. 아니, 나서려다 말았다.

아직 자리에 있는 한 사람, 임시후를 보았기 때문에.

떠나버릴까 봐, 강도희는 일부러 천천히 움직였다.
임시후가 고개를 들면 바로 보일 수 있도록, 그의 옆에 가서 멈춰 섰다.

"…야, 뭐해? 안 가?"

"아, 학교 끝났지, 같이가자"

"뭘 같이 가. 그냥 가는 거지."

그렇게 말하면서도, 강도희는 임시후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두 사람은 천천히 교실을 벗어나 복도를 걸었다.

침묵이 감돌았다. 오늘따라 복도에 다른 학생들도 보이지 않는다. 두 사람의 발소리만 조용하게 울렸다.

...

집으로 가는 길, 평소처럼 임시후와 나란히 걷는다. 이미 해가 져서 주변은 어둑어둑했다. 길 양쪽에 심어진 가로수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있고, 두 사람의 그림자도 그 사이를 가로질렀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걷기만 한다.

그때, 임시후가 입을 열었다.

"야, 강도희"
임시흔가 이름을 부르며 돌아보자, 강도희도 멈춰섰다.

"...어, 왜."

"있지, 며칠 뒤에 열리는 불꽃놀이 같이 보러가자."

불꽃놀이, 라는 말에 강도희의 눈이 살짝 커졌다. 그리고 이내, 그녀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번졌다. 티격태격하는 사이지만, 결국은 둘이서 함께 하는 시간을 가장 좋아하는 것이다.

"...불꽃놀이?"

"응"

그녀는 평소처럼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뭐. 같이 가줄게."
불꽃놀이 날, 약속 장소에 먼저 도착한 강도희는 조금 초조한 기색이다. 손에 들고 있던 탄산 사이다를 마시며, 임시후를 기다린다.

‘왜 오늘은 일찍 안 오는 거야...’

"어이!"

저쪽에서 임시후가 걸어오는 것을 보자, 강도희의 얼굴에 살짝 미소가 번졌다가 금세 사라졌다. 그녀는 사이다 캔을 만지작거리며 임시후를 향해 툭 던지듯 말했다.

"어, 왔냐? 늦었잖아."

"아 미안"

해가 져서 어둑어둑 해지고, 곧 불꽃놀이가 시작될것같다.

"저기, 나 할말이 있어"

그때, 임시후가 말했다.

어둠 속에서도 시후의 얼굴이 보인다. 그의 진지한 표정을 보자, 도희도 살짝 긴장한다.

"뭔데?"

"나, ———"

임시후의 말이 터지는 불꽃놀이 소리에 뭍힌다.

불꽃이 터지며, 순간 세상이 환해졌다. 그 빛 아래에서 임시후의 표정이 보인다. 그가 무언가 말하려 입을 열었지만, 소리에 가려 잘 들리지 않는다.

도희는 임시후에게 한 발짝 다가가며, 집중해서 듣는다.

"뭐라고? 다시 말해봐."

펑-! 퍼펑-! 피유우- 퍼벙-!!

"..아냐!"

임시후는 웃음을 짓고선 말을 마쳤다.

요란한 폭죽 소리에 귀가 먹먹하다. 다혜는 눈을 가늘게 뜨며 시후를 바라본다. 그가 웃는 모습에, 도희도 살짝 웃음이 새어나온다.

"뭐야, 싱겁게. 그냥 웃긴 거였어?"

하지만 그녀의 마음 한구석에서는, 조금 서운한 기분이 든다.

하늘이 밝은 오색빛깔 폭죽으로 둘러싸인다

"와.."

임시후는 나지막하게 감탄사를 내뱉는다.

하늘을 가득 메운 불꽃을 바라보며, 도희의 입이 살짝 벌어진다. 그녀는 넋을 잃고 그 광경을 바라본다. 그녀의 얼굴은 오색 빛깔로 물들어, 평소의 새침한 표정과는 달리 멍한, 그리고 어딘가 황홀해 보이는 표정을 짓고 있다.

"...진짜 예쁘다..."

그러게..
그로부터 1개월 뒤, 임시후가 갑자기 급성 뇌졸증으로 응급실에 실려간다.

병원, 중환자실. 생사를 오가는 임시후의 옆에서, 강다혜가 눈물 범벅이 된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있다. 그녀의 작은 손이 그의 손을 꼭 붙잡고 있다.

"임시후... 일어나..."
임시후의 눈이 깜빡이더니 눈을 가늘게 뜬다.

"도희, 강도희..?"

그는 살짝 웃어보였다.

웃는 시후의 얼굴을 보자, 도희의 눈에 다시 눈물이 차오른다.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이 바보야, 왜 이제야 일어나는 거야...!"

"미안.. 도희야, 손 좀 줘봐라"

시후의 말에, 도희가 얼른 그의 손을 꼭 쥔다. 그녀의 작은 손은 덜덜 떨리고 있다.

"손, 여기. 여기 있어."
"이렇게 잡고, 귀 좀 대봐"

도희는 순순히 시후의 말대로 귀를 가져다 댄다. 그녀의 얼굴은 시후의 손에 거의 닿을 듯 가까워진다.

"응, 듣고 있어. 말해."

시후가 나지막이 속삭였다.


"그날, 말하려고 한거. 나, 너 좋아해"

그가 씩 웃는다. 그때 갑자기 기계에서 소리가 난다

삑- 삑-! 사망 위험- 삐이이-!!





심박수 그래프가 요동치고, 기계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퍼진다. 도희의 눈이 공포에 물들며, 그녀는 시후의 손을 필사적으로 붙잡는다.

"안돼, 임시후!! 죽지마, 제발!!"

시후는 파들거리는 입술로 간신히 입모양을 취한다.

그 모양은, 마치 어느밤의 입모양과 같았다.

大好き。



도희의 눈이 시후의 입모양을 읽는다. 그녀의 눈이 커지며, 입술이 떨린다. 하지만, 기계음과 주변의 소란에 시후의 마지막 말을 미처 듣지 못한다.

"안돼, 임시후!! 임시후-!!"

그로부터 3년 후, 도희는 외교관이 돼려고 일본어 를 공부하고 있다
"이건 죄송합니다..그리고 이건.."

도희의 손이 어떤 글자에서 멈췄다가 조용히 입을 움직여 본다

"大好き。..사랑해.."

3년 전, 하늘 아래에서 웃던 임시후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가 마지막 순간에 입모양으로 전하려던 말도.

도희의 눈가에 눈물이 맺힌다.

시후야.. 보고 싶어..

그녀는 그리움에 사무친 목소리로 조용히 중얼거린다.

그로부터 다시 3년뒤

도희는 이제 외교관이 되어, 일본에서 근무하고 있다. 그녀는 여전히 시후를 기억하고 있다. 가끔 일본의 거리를 걸으며, 그와 함께 걷던 추억을 떠올리곤 한다.

"여긴 변한 게 없네.."

다혜는 하늘을 바라보며 중얼거린다.
그리고 어느 날, 시후와 함께 봤던 불꽃놀이를 함께 봤던 장소를 지나간다. 다혜가 추억에 사무쳐 있을때, 불꽃이 터졌다.

펑-! 퍼펑-!!

오색빛깔 불꽃이 하늘을 뒤덮었다.


불꽃놀이가 시작되자, 도희의 걸음이 멈춘다. 그녀는 하늘을 올려다본다. 하늘이 오색빛깔 불꽃으로 가득 찬다. 몇년 전, 시후와 함께 봤던 그 불꽃이, 지금 그녀의 눈 앞에서 다시 피어오르고 있다.




도희는 달렸다. 언젠가 시후의 손이 닿을 거라는 듯이. 그렇게 달리다가, 빠졌다. 그것이 그 고요한 호수에 일으킨 처음이자 마지막 파동이었다. 이상하게도 마지막 순간에 도희는 웃고 있었다. 따스한 온기가 자신을 감싸주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
그녀의 눈에 눈물이 맺힌다. 그녀는 하늘을 향해 손을 뻗는다. 마치 시후에게 닿고 싶다는 듯이.

물 속에 잠기는 순간, 도희는 눈을 감는다. 그녀의 입가에는 희미한 미소가 번진다. 마치 이제 시후와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듯, 편안한 표정이다.

그리고 그녀는, 마지막 파동을 남기며, 그렇게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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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그리고. 환상이 일어난다. 도희가 눈을 떴을때, 그녀는 시후와 그때 그 장소에 함께 있다

"야, 왜그래?"

눈을 뜨자마자, 시후의 얼굴을 보는 도희. 그녀는 순간적으로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아 멍하니 있다가, 주변을 둘러본다. 그 하늘, 그 강가, 그리고 자신과 함께 있는 시후까지.

"어...? 여긴..."

도희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시후를 다시 바라본다. 방금 전까지 그녀가 있던 일본도, 호수도, 모두 환상이었던 것처럼 느껴진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손을 내려다보고, 자신의 몸이 너무나 작아진 것을 깨닫는다. 마치, 중학생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이, 이게... 뭐야...? 왜.. 작아졌지..?'

"시후야, 내 몸이 이상해.."
그가 말한다

"무슨 소리야? 아, 시작한다!!"

펑-!

불꽃 소리에 도희의 시선이 하늘로 올라간다. 아름다운 불꽃이 밤하늘을 수놓고 있다. 이 모든 것이 꿈만 같다.

"불꽃... 축제?"

그리고 그녀는 임시후을 향해 고개를 돌린다.

"시후야, 이거.. 꿈인가?"

"..?"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시후를 보고 도희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다짐 했다. 이번엔 내가 먼저 다가가겠다고 . 입을 연 순간 둘은 동시에,
"나, 너 ——!!"라고 외쳤다.

그 순간의 소리는 불꽃의 소리에 잠겼지만, 둘은 서로를 보며 씩 웃었다

불꽃 소리보다 더 크게, 서로의 목소리가 들린다. 둘은 동시에 '나, 너 좋아해!'라고 외친다.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더 이상 친구 이상의 감정이 교차한다.

잠시 서로를 바라보다가, 도희가 먼저 시후에게 다가간다. 그녀는 까치발을 들고, 눈을 감는다. 그리고 시후의 볼에 자신의 입술을 부드럽게 가져다 댄다. 짧고 강렬한 입맞춤 후에, 도희가 눈을 뜬다.

"..이번엔 내가 먼저 했다?"

시후는 씨익 웃었다.

다혜의 입술에 시후의 입술이 포게진다.

놀란 듯 눈이 커졌지만, 곧 도희도 눈을 감고 시후의 입술에 응한다. 두 사람은 그렇게 불꽃 아래에서,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하고 애틋한 순간을 나눈다.

입술을 떼며, 도희가 시후를 올려다본다. 그녀의 얼굴은 붉게 물들어 있다.

"..이제 우리, 뭐야?"

"연인!"


그렇게 풋풋한 사랑은 시작되고있다.

밤은 끝나지 않고, 불꽃은 영원히 하늘을 수놓고 있다. 그 아래에서, 두 사람은 손을 잡고 서로를 바라보며 웃고 있다. 마치 시간 자체가 그들을 위해 멈춘 것처럼.

그들은. 시간선을 넘어 끝나지 않는 영원한 밤을 달린다.

부디 그들이 잡은 이 손을 놓지 않길.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