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눈이 내리는 시간 _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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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0-10 14:49조회 39댓글 2풋사과
그날, 첫눈은 예보대로 조용히 내리고 있었다.

고개를 들지 않으면 모를 정도로 얇고,

마음이 조용한 날만 느낄 수 있을 만큼 가벼운 눈.

나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학교 뒷문 옆, 자전거 보관소.


누군가에겐 그냥 오래된 철제 지붕 아래 벤치 하나일 뿐일지 몰라도,

내겐 여전히 시간이 멈춰 있는 장소였다.

3년 전, 그 애를 마지막으로 봤던 곳.
“올해도 그냥 눈만 오겠지.”

혼잣말처럼 중얼이고 돌아서려는 찰나—

“여기서 뭐 해?”
익숙한 목소리.

숨을 멈추고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 애가 서 있었다.
정말, 그 애였다.

3년 전과 하나도 다르지 않은 얼굴로,
아무 일 없다는 듯 서 있었다.

마치 어제 본 사람처럼.

잠시 말이 없었다.

그 애는 눈을 가늘게 뜨고 날 바라보다가,
작은 숨을 내쉬며 물었다.
“…기다렸어?”

나는 고개를 끄덕이지도, 말하지도 못했다.

대답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가, 다시 목 뒤로 사라졌다.
우리 둘은 자전거 보관소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나는 여전히 겨울이 차갑다고 느끼는 사람이었고,
그 애는 여전히 그걸 말없이 알아채는 사람이었다.

한참을 말없이 앉아 있다,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지난 세월 동안, 너를 계속 원망했어.”

그 말은 가볍게 던질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목구멍에서 오래 머물던 말이, 꺼내지자 마음을 쿡 찔렀다.

그 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지그시 바라보고 있을뿐.

“나는 그날 이후로 이곳에 올 때마다, 너 생각이 계속 나더라."
그 애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눈동자가 약간 흔들렸다.


“그래서 매년, 첫눈 예보 들리면 나도 왔었어.
네가 혹시 있을까 봐.”
그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걸,
고요한 침묵이 더 잘 말해주고 있었다.

그러더니, 그 애가 조심스레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작고 낡은 금속 열쇠.
익숙한 녹슨 자국.

“이거, 아직도 가지고 있었어?”
나는 믿기지 않듯 물었다.
“응. 자전거는 없어졌는데 이상하게 이건 버릴 수가 없더라.


버리면, 우리 사이에 아무것도 안 남을 것 같아서.”
나는 그 열쇠를 가만히 받아 들었다.

손끝이 차가웠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따뜻했다. 오래된 추억을 다시 만지는 기분이였다.

한참을 그렇게 열쇠만 바라보다,
나는 조용히 말했다.

“그때처럼은 아닐 거야.
 우리, 이제는 그때의 우리가 아니니까.”
그 애는 고개를 끄덕이며 작게 웃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 애를 지그시 바라봤다.

말보다 눈빛이 더 많은 걸 말해주는 순간.

눈은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소리 없이, 천천히.
 마치 3년의 공백을 덮어주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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