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떠난 방 안은 고요했지만, 그 고요 속에는 심장이 부서지는 것 같았다. 창문 틈 사이로 스며드는 빛은 부드럽지만 무겁게 시간을 눌러 버렸고 나는 손을 뻗어 그의 흔적을 잡으려 했지만, 손끝에는 언제나 허공만 닿았다. 붙잡으려는 행위가, 이미 사라진 것을 되살리려는 헛된 의지가 되버렸다.
밤은 길고, 그림자는 길게 늘어졌다. 벽에 드리운 그림자와 내 그림자가 서로를 밀고 당겼다. 비가 내리던 오후, 나는 붓을 잡은 채 창가를 바라보았다. 창밖으로 쏟아지는 장대비는 마치 내 마음을 흡수라도 하려는 듯, 한 방울도 남김없이 내리꽂혔다. 캔버스 위에는 그의 얼굴이 아직 말라붙지 않은 색채로 남아 있었다. 나는 손끝으로 그 붉은 눈동자를 어루만지며 속삭였다.
“왜 가지 않는 거야… 왜 날 두고 가는 거야…”
그가 숲 속 안개 속을 걷던 날부터, 나는 그의 그림자를 좇아야만 했다. 안개 속에서만 겨우 모습을 드러내는 그는 현실에서는 잡을 수 없는 존재였으니까. 하지만 나는 그를 캔버스 안에 가두고, 손끝으로, 눈빛으로, 심장 박동으로 조각하며 소유했다. 내 그림은 그의 숨결로 적셔졌고, 나는 그 숨결 없이는 숨조차 쉴 수 없을거 같았다.
폭풍이 몰아치던 밤, 창밖 바다는 거칠게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그림 앞에서 무릎을 꿇고, 눈물이 물감에 섞였다. 그의 미소가 날 향해 도망치려 하는 것 같았다. 나는 울부짖었다.
“너는 나를 떠날 수 없어! 나만 봐야 해! 나만 사랑해달라고.”
붓이 캔버스를 긁으며 귀가 찢어지는 듯한 날카로운 소리를 냈고, 그 소리와 함께 내 심장은 폭풍처럼 요동쳤다.
- 사랑해.사랑해.사랑해. 사랑해.사랑해.사랑해.
그는 이제 내 작품 속에서만 숨 쉬고, 안개와 폭풍 사이로 흔들리는 그림자처럼 현실에서는 잡히지 않는다. 빗방울이 캔버스를 적시듯, 그의 숨결과 웃음, 기억까지 차갑고 집요하게 스며들어 내 안을 적셨다. 바깥의 폭풍이 내 창을 두드려도, 내 안에서는 끝없이 그만 바라볼 것이다. 그를 붓끝으로 그의 형태를 재현하며, 모든 순간을 붙잡는다. 사랑이라 부른 집착 속에서, 나는 이미 스스로를 잃은 채, 폭풍 속 그림자와 함께 그를 향해 내달렸다.
우리가 붙잡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남은 허상의 그림자일 뿐이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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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겟 큐리어스에 정병 로맨스 써달라 하신걸 봐서.. ㅎㅎ 옛날에 쓴거 가져왔습니다 😽
반응 좋으면 더 가져오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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