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고 고운 그녀의 손이 나의 머리를 쓸어넘겼다. 서로가 숨쉬는 것들만이 이따금 들려오는 것이 전부였던, 그것말고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공간이었다.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애처로운 듯 흔들리는 눈빛이, 눈동자는 고요한 바다 위 일렁이는 파도처럼 떨려오고 있었다.
“…분명히 지금 같이 나가게 되면, 우리 다 잡히게 될 거야.”
그녀의 말에 나는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밖에 돌아다니는 기사단장이 있었고 죄인이라는 이름을 뒤집어 쓴 내가 그를 마주친다면, 그리고 나를 도망치도록 유도한 그녀마저 함께 최악을 면하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뒷문으로라도 빠져나가자, 함께.”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긴장인지 더욱 요동치는 심장을 진정시키기 위해서라도 우선은 임시적인 이 공간을 벗어나는 게 현명한 선택일 것이라고, 그렇게 믿었으니까.
“아니… 뒷문으로 간다 해도 우리 둘 다 도망칠 순 없을 거야.”
그녀는 결코 굳은 의지를 다진 듯, 결의가 선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와는 다른 생각을 확정지은 듯 했다.
“…내가 미끼가 될 테니까, 그 틈에 빠져나가.”
“그게 무슨 소리야! 우선 다같이 살아야지!”
”아니, 난 아무래도…“
”이곳이다! 이곳에 있다는 제보가 있었어, 어서 찾아!“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은 없었다. 달려서 그들을 따돌리기엔 이미 지쳐있었고, 할 수 있는 것은 최악의 결과를 불러오게 될 최선의 선택을 하는 것, 그 뿐이었다.
”이제라도 가야 해, 빨리!“
그녀의 손에 의해 나는 등이 밀려 강제로 그녀가 말한 비밀통로 앞에 섰다. 나는 그녀의 뜻에 결국 비밀 통로를 지나갔다. 몇 발자국 나아갔음에도 그녀의 생각은 떨쳐지지가 않았고, 나는 다시 돌아왔던 곳을 다시 걸었다. 이런 건 합리적인 선택이 아니었기에 그녀를 데리고 오려던 참이었다.
하지만 신은, 그 노력에 보상마저 내려주지 않았다.
”루시안 드 메이르, 체포하겠습니다.“
쿠궁. 심장이 강하게 내려앉은 소리가 내 귀를 가득 메웠다. 그녀는 이미 기사단에게 제압당해 기사단장을 올려다보고 있기만 하였고, 기사단장은 누군가와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였다.
“에이리언 크레바스, 도주 상태.”
들려오는 내 이름에 흠칫 놀라 기사단장을 바라보았다. 기사단장은 날 발견하지 못한 듯 그녀만을 바라보았다.
”루시안 드 메이르. 지금 그 자의 위치를 뱉는다면 네 죄를 감형시켜 줄 수 있는데.“
기사단장은 무릎 한쪽을 꿇고서 그녀와 눈을 맞추었다. 그러자 그녀는 고개를 들어 기사단장을 바라보더니 그의 얼굴에 침을 뱉었다.
”꿈 깨세요, 기사 단장님.“
”하. 이 자를 데려가라.“
순간 그녀가 기사단에게 끌려가던 순간 속,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는 그 느낌이 들었다. 눈물이 맺혀선 곧 흘러내릴 것만 같은 그녀의 눈동자는 나를 더욱 깊은 죄책감으로 끌어내렸다. 그렇지만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분명히 달려가고 싶은 마음은 가득했지만, 다같이 잡힌다면 그녀의 노력이 헛수고가 된다는 그 생각에 난 이 곳에서 한발짝도 나갈 수 없었다.
결국 나는 다시 비밀 통로로 지나갔다. 마음 속에서 대체 얼마나 울부짖었을까, 세보지도 않아 모를 정도였다. 결론적으로 나는 그녀를 버렸고, 제 안의를 위해 도망친 비굴한 자가 되었다. 그녀의 생각이 어떻게 되었든 달려나갔다면 나았을지도 모를텐데.
”미안, 진짜 미안해… 루시안.“
비밀 통로 속에서 작게 중얼거렸다. 통로 속의 내 눈앞에는 빛이 내려오고 있었다. 새어나오는 빛이 가득한 공간에 발을 내딛자 가장 익숙했던, 그녀와 함께한 추억의 향기가 가득한 상점가였다.
”어머, 에이리언! 오늘은 혼자 왔어?“
상점가 속에서 깊게 내려앉은 눈빛과 자신감조차 잃어 무엇 하나 할 수 없을 것만 같은 그 태도에 이상함을 느낀 상점가의 주인이 다가왔다.
“왜 이렇게 얼굴이 상했대. 무슨 일 있었어?”
“아… 아니에요, 아무 일도 없었어요.”
내 목소리는 옅게 흔들리고 있었다. 몇번이고 내 머릿속에선 방금 보았던 그 상황이 재생되었고, 그것을 떠나보낼 만큼 지금의 나는 강하지 못했다.
“그래, 그렇다면 다행인데… 루시안은?”
순간 그 말에 멈칫하고서 어떤 대답도 더 할 수 없었다. 그래, 그녀는 나라는 존재 하나 때문에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했다. 난 그녀의 모든 것을 저 아래로 끌어내렸다.
나는 숨이 막혀 버틸 수 없다는 합리화에 그를 벗어나 달렸다. 목적지 없이 그저 뛰어갔다.
”얘, 어디 가…—.“
그의 목소리는 가득 울리는 듯 했지만, 뛰어갈수록 그 목소리는 점점 희미해졌고, 이후에는 들리지 않았다.
나는, 그녀의 희생을 바라보기만 했다. 나를 위한 희생에 나는 비열하게 도망쳤다.
”아아.“
끊임없이 좌절하고 마음은 더 아파왔다. 시리도록 아픈 내 마음에 흐르는 이 눈물은 비가 되어 내렸다. 그녀와 더 이상의 추억을 만들어가는 것도 함께하는 일상도 웃고 지내던 순간들도 이제는 없었다.
“전부 나 때문에…”
나라는 존재 하나에 일은 커졌고 그녀는 끌려가야만 했다. 그것이 전부였다.
| 그녀를 향한 나의 죄책감에 휴식조차 없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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