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봄, 당신은 별처럼 웃었다》 5화: 기억하지 않는 존재는 존재하지 않는다
설정2025-08-08 14:04•조회 8•댓글 0•EIEI 🫶
〈5화〉기억하지 않는 존재는 존재하지 않는다
마리우스는 웃지 않았다.
리아나를 마주보고 서서,
그의 회색빛 눈동자는 사납게 흔들리고 있었다.
“넌… 그녀가 아니야.
그런데 왜, 똑같이 웃는 거지?”
리아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그저 입을 꾹 다문 채,
자신도 모르게 눈웃음을 지었다.
그게 습관처럼 나왔다.
…하지만, 자신은 원래 그런 웃음을 지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진짜 리아나는… 그 순간에도 그렇게 웃지 않았어.”
“……”
마리우스는 주먹을 쥐었다.
“너는 지금,
그녀의 얼굴로, 그녀의 이름으로,
그녀가 견뎠던 모든 기억을 아무것도 모른 채… 웃고 있어.”
그 말은
비난이 아니라 슬픔이었다.
자신이 아는 사람의 죽음을 부정당하는 듯한,
지워진 진실에 대한 분노.
그날 저녁, 리아나는 혼자 오래된 정원으로 향했다.
하늘은 연보랏빛으로 물들고 있었고,
한 그루 오래된 별꽃나무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그 아래, 시에른이 서 있었다.
“…왔군.”
그는 리아나를 보고도 아무 말 없이 시선을 돌렸다.
리아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당신… 알고 있었어요?
마리우스가 나를 알고 있다는 걸.”
“몰랐다.”
“…그럼 지금은?”
시에른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더 대답 같았다.
리아나는 천천히 별꽃나무 아래로 걸어갔다.
그 가지 끝에서 반짝이는 작은 꽃잎 하나가 떨어져 그녀의 손등 위에 앉았다.
“시에른.”
“응.”
“만약 내가…
진짜 리아나가 아니라면,
그냥… 누군가의 기억을 가진 존재라면,
당신은 날… 없다고 생각할 거예요?”
그 물음에, 시에른은 잠시 말이 없었다.
그리고 아주 조용히, 그녀를 향해 한 걸음 다가섰다.
“기억하지 않는 존재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게, 이 세상의 법칙이지.”
그 말에 리아나의 어깨가 툭, 처졌다.
정말… 사라지고 싶었다.
하지만 다음 순간, 시에른이 말했다.
“그래서 난, 너를 기억할 거야.”
리아나는 고개를 들었다.
시에른의 눈빛은 흔들리지 않았다.
“지금 네가 누구든,
이 봄, 이 순간…
내가 널 기억하는 한,
넌 존재야.”
그 말에 리아나는 숨이 멎는 것 같았다.
바람이 불어왔고, 손등 위 꽃잎이 날아가 사라졌다.
리아나는 천천히, 작게 속삭였다.
“…고마워요.
나는… 당신이 나를 처음으로 ‘존재하게’ 만든 사람이에요.”
그날 밤,
리아나는 처음으로 자신의 일기장을 열었다.
빈 페이지 위에 글을 적기 시작했다.
「2025년 봄.
세이노르 아카데미.
나를 기억해주는 사람이 생겼다.
그래서 오늘은 조금, 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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