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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16 21:26조회 41댓글 0세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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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curious.quizby.me/Seri…






나는 모자를 푹 눌러썼다.

방금까지도 방안에 틀어박혀 초등학생과 생동감 넘치는 패드립을 주고받다 나온 내게 자연광은 부담스러울 정도로 밝았다.

변성기도 오지 않은 목소리로 부모님의 안부를 묻던 초등학생. 난 그놈을 떠올리다 자괴감에 몸부림쳤다.

‘그래. 사실 니 말이 다 맞다.’

엄마는 죽었고 아빠는 살아있는지조차 모르는 게 현실.

아내를 잃은 남편이 실연에 고통하며 술과 폭력에 빠졌다는 어찌 보면 흔한 이야기다.

가정폭력을 일삼던 아빠에게서 벗어난 건 7년 전. 내가 프로게이머로 데뷔했을 때였다.

그래도 혈연이고 불쌍한 사람이란 생각에 꼬박꼬박 돈을 부친 내가 우습게도 아빠는 성인이 되기도 전에 그 돈을 도박으로 다 꼴아박고 그대로 집을 나가 월북했다.

그러니까… 북한으로 갔다는 말 맞다.

형제도 없는 나는 그 이후로 천애 고아가 됐다. 아, 서러워.

심지어는 잘못 배운 가정교육 탓에 사회성이 박살 나버려 프로팀 내에서까지 따돌림을 당했다.

난 계약 기간이 끝나자마자 팀에서 탈퇴해 원룸 하나를 구했다.

그간 1군에서 활동하며 번 돈이 있으니 삶이 궁핍하다 느껴지는 일은 없었다. 사실 돈이 다 떨어지면 그냥 죽으면 되지, 하고 무념무상 살았다.

항상 텅 빈 채 사는 기구한 삶이었다.

신은 존재하지 않았다.

세상은 내게 여러모로 불공평했다.

난 문득 억울해졌다.

‘이럴 거면 그냥 다 망해 버려라!’

휘이이잉!

숨이 막힐 듯한 모래바람이 불어온 건 그때.

깊게 눌러쓴 모자가 바람에 젖히며 어깨에 닿지 않는 짧은 머리카락이 바람에 마구잡이로 흩날렸다.

누군가 비명을 질렀다. 다른 누구는 바람에 못 이겨 바닥에 주저앉았다. 문득 불안감이 몰려왔다.

그 순간, 세상은 온통 황금빛이었다. 정말 다 망하기라도 할 듯.

바람이 서서히 잦아지나 싶을 때.

―쾅!

그 소리와 함께 바닥이 진동했다.

저 멀리서 끔찍한 비명이 들렸다. 허공에 뜬 모래 사이로 언뜻 검은 실루엣이 보이는 듯했다.

그 실루엣은 건물 끝까지 솟아 있었다. 게다가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공룡의 재림이래도 이렇게까지 압도적이진 않을 거 같은데. 이게 정말 현실인지 의구심이 든다.

삐이이이이.

모든 휴대전화가 동시다발적으로 울렸다. 그 소리가 마치 이명처럼 들렸다.

내 옆에 선 여자가 울먹이며 핸드폰을 확인했다.

[긴급재난문자]
전국 각지에 먼지폭풍과 함께 정체불명의 괴생명체 출몰. 국민 여러분께서는 서둘러 대피하시길 바랍니다.

‘하.’

말도 안 돼.

‘나 꿈꾸는 거 아니지?’

그것이 길쭉한 혓바닥을 날름거렸다. 그것의 혀에 부딪힌 구식 건물의 벽에 커다란 균열이 생겼다. 먼지 사이로 드러난 그것의 혓바닥에 사람 한 명이 들려 있었다.

“괴, 괴물······.”

이쯤 되니 나도 그들의 환상에 동조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나쯤은 발로 밟아 압사시킬 수도 있는 거대한 괴생명체가 내게 다가왔다. 그 괴물은 사람 몇 쯤 잡아먹을 기세로 내달리고 있었다.

씨발.

그제야 사람들이 헐레벌떡 도망가기 시작했다.

나도 체면 따윈 생각하지 않고 미친 듯이 달렸다. 바닥에 주저앉은 사람들이나 가만히 서서 멍때리고 있는 사람들을 제치고 어떻게든 멀리 뛰었다. 이렇게 빨리 달릴 수 있었다는 것도 모르고 살았다.

―콰아앙!

또 바닥이 울렸다.

한 번 더 바람이 쏟아졌다. 소리의 후폭풍이었다.

그것은 분명하게 괴물의 발디딤이었다.

【크르르르르···】

괴물이 사람의 시체를 입에 문 채 서럽게 울었다. 그 흉측한 자태에 사람들은 좌절했다. 저 거대한 재앙 앞에서 무엇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폭풍처럼 쏟아졌다.

그것이 한 번 움직일 때마다 도망칠 힘을 잃었다.

다리가 떨렸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구역질이 나올 것 같았다. 입에서는 단내가 풍겼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에 운동 좀 해 둘걸!’

―콰아아앙!

소리가 점점 가까워진다.

―콰아아아앙!

끝도 없이.

【크르르릉···】

뒤에서 느껴지는 살기에 난 천천히 뒤를 돌아봤다.

···개구리?

내 앞에 선 건 개구리를 닮은 괴물이었다. 온몸에 비늘 같은 걸 수놓은 개구리는 온몸이 피칠갑이 된 채 무언가 오물거리고 있었다.

개구리는 사냥감을 살피듯 주위를 둘러보더니 곧 폴짝 뛰어올랐다. 그 높이는 웬만한 주택을 상회했다. 그것은 빠른 속도로 내 쪽으로 전진하고 있었다.

‘이래서 바닥이 울렸던 건가?’

곧 요란한 소리와 함께 바닥으로 착지한 괴물이 입맛을 다셨다. 길쭉하고 얇은 혓바닥이 한 번에 세 사람을 낚아채더니 그대로 입에 쑤셔 넣었다.

한참이나 멀리 있었는데도 뜀걸음 몇 번에 코앞까지 가까워졌다. 도망칠 수 있었지만, 다리가 움직이질 않았다. 더 도망친다 해도 언젠간 따라잡힐 게 분명했다.

피가 이리저리 튀겼다. 귀를 에는 듯한 비명이 들린다. 결국엔 피할 수 없다.

난 두 눈을 꾹 감았다.

미친 과학자가 잘못 만든 괴생명체인지, 외계인의 침략인 건지. 뭐가 됐든 난 좆됐다. 오감을 가득 채운 살의를 느끼다 보면 이만 삶에 미련을 놓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죽을 준비를 하자. 그렇게 마음먹었다.

그러자 순간적으로 머릿속에 주마등이 스쳤다.

벌써 10년도 더 전에, 직장에서 퇴근하던 엄마가 뇌출혈로 쓰러졌을 때의 기억.

엄마는 온몸에 의료용 튜브를 감은 채 창백한 얼굴로 누워 계셨다. 하루에 두통약만 세 알씩 먹으며 어려운 살림에 보태려고 일터를 나가신 엄마에게 돌아온 건 뇌종양 말기 선고였다.

엄마는 죽기 직전 물도 음식도 잘 먹지 못해 쩍쩍 갈라지는 목소리로 겨우 말하셨다.

“서하야, 넌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살아라.”

넌 나처럼 죽지 말라고. 꼭 끝까지 살라고. 그게 엄마의 마지막 유언이었다.

가족한테 좋은 기억이 얼마나 많다고. 항상 처맞기만 하고 가장 역할은 내가 다 했는데도 그 얘기만 나오면 눈을 붉혀서는. 미련한 애정결핍 때문에.

씨발.

그럼에도 죽을 수 없다.

······뭐라도 해 보자.

난 눈을 떴다. 그리고 주변을 살폈다.

저 앞에선 개구리 괴물이 하늘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허공에 뜬 황금빛 모래와 함께 사람들이 괴물의 입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저러다 기관지가 확 고장 나버렸으면 좋겠다.

자세히 보니 오늘 게임에서 토벌한 몬스터를 닮은 것 같다. 그 쪼렙 몬스터의 이름은 개구리몬이었다. 이건 일종의 근거 있는 자신감인데, 난 그 게임에서 전 세계 랭킹 14위였다.

난 일종의 세뇌를 시작했다.

그래, 그냥 저 괴물을 개구리몬이라고 생각하자.

그러자 왠지 괴물이 쪼렙 개구리몬과 닮아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저런 잡몹한테 죽을 순 없다.

‘말이 되는 소리를.’

난 마른침을 삼켰다. 사실 그것을 제대로 올려다보는 것만으로도 다리가 떨려왔다. 저걸 ‘상대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 보였다.

도망쳐서 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겁에 질려있는 사람을 고기 방패 삼고 저 멀리 튀어버릴까? 건전하지 않은 생각들로 머릿속이 가득 찼다.

건물 안조차 안전하지 않았다. 개구리몬의 혓바닥으로 가루로 변해버린 건물들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그 밑에 깔린 사람들의 피로 바닥이 흥건했다.

그 사이 개구리몬의 배와 볼이 빵빵하게 부풀었다. 공기를 그렇게 많이 빨아들이더니, 이제 어쩔 셈인 거지?

【그르르르르……】

열기.

이 일대가 순간 화끈거렸다.

화아아아아아―

개구리몬이 불을 뿜었다. 몬스터의 입안에 가득 차 있던 핏물과 모래조각, 일반적인 공기들이 순식간에 화염으로 변해 순식간에 모든 것을 녹이기 시작했다.

“이런 젠장!”

무슨 허무맹랑한 몸을 가졌길래 불을 뿜고도 멀쩡해? 평생 살아오면서 입에서 불을 뿜는 생물이 있다고는 들어본 적도 없었다. 체온이 순식간에 올라가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사람들이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녹아갔다. 뼛조각도 남지 않을 정도로 완벽하게. 서 있던 그 자리에서.

건물 쪽이라 다행이지, 내 쪽으로 이 불꽃이 날아왔다면…….

지금쯤 살아있지 못할지도 모른다. 소름이 돋았다.

화염이 멈췄을 땐, 불을 뱉은 그곳이 전부 흔적도 남지 않을 정도로 망가진 뒤였다. 개구리몬은 멈추지 않고 다시 모랫가루들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얼마 전과 같은 지옥이 또다시 펼쳐지려 했다. 크게 벌린 개구리몬의 입 안에서 작은 불꽃이 맴돌았다.

저건 못 피한다.

게임 속 캐릭터마저 마나나 마력이나 하는 것들을 써야 겨우 괴물들을 처리할 수 있는데, 저같은 일반인이 괴물을 상대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잠시만.

‘마나라고?’

난 황급히 하늘을 쳐다봤다. 황금빛 모래가 여전히 둥둥 떠 있었다.

개구리몬은 모래를 집어삼킨 뒤 불을 내뱉었고, 그 불꽃은 분명 황금빛을 내고 있었다.

허공을 만졌다. 모래가 가득한데도 그 촉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더 비현실적인 상황에 억압돼 작은 이질감을 알아채지 못했다. 이건 단순한 모래조각 같은 게 아니었다.

만약 이것이 게임에서 지겹도록 보던 ‘마나’ 같은 물질이라면.

그것을 눈치챈 순간, 내 피부 사이사이로 황금빛 물질이 흘러들어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분명한 마나.

마나가 피부에 스며들어 혈관을 타고 온몸으로 흩어졌다. 그 움직임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심장이 세게 뛰었다.

마나가 손끝으로, 머리끝으로, 다시 발끝으로 흩어진다. 마나가 흐를 때마다 심장이 터질 듯이 팽창한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 당장이라도 저 개구리몬의 팔을 뜯어버리라고 명령하는 아드레날린.

마나가 살짝 섞인 입김을 내뱉었다. 온몸에서 힘이 들끓었다.

이건 하나의 게임이었다.

저 개구리몬은 게임의 주인공이 처음 맞이하는 일종의 시련이다. 주인공은 떳떳이 시련을 이겨내고,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른다.

게임의 법칙. 주인공은 어떤 순간에도 완전하게 사망하지 않는다. 또한, 주인공은 도망치지 않는다.

이제야 뭘 해야 되는지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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