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 기아, 기아, 기아, 기아, 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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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08 14:58조회 78댓글 6검은
기아는 스물일곱번째 날에서 육천칠백팔십구번째 날까지 기록 될거에요. 당신의 마르고 주름진 손가락으로 한 번 세보아요. 까닥대며 한 번 세보아요. 스물 일곱, 스물 여덟, 스물 아홉, 서른. 계속 세보아요. 세상이 망각 될 때까지. 정신을 잃고 목숨이 깨질때까지. 눈이 감길때까지. “기아”라는 단어가 기억이 안 날때까지. “농작물”이라는 단어가 뭔지도 기억이 안 날때까지. “먹는다”라는 단어가 옷주름인지, 시체인지, 저 이글거리는 구인지, 혹은 나 스스로인지 기억이 안 날때까지. 그러다 보면 눈에 성에가 낀 기분이 들어요. 벌써 겨울인가봐요. 겨울은 싫은데 말이에요.
하지만, 당신은 다시 정신을 차리고 마을로 가죠. 마을에서 눈을 자르고 방황해요. 안쓰러운 눈 먼 거지처럼 보이는 게 함정이요. 눈은 실제로 자르지 않으실거잖아요. 당신의 눈알은 그저 뒤에 가있을 뿐이죠. 실제로 눈은 죽음을 끔벅이지 않고 거짓을 끔벅여요. 거짓은 다시 노래를 부르려고 입을 열고, 당신은 이 거짓에 맞춰 북을 치죠. 그 북고리는 마을 사람들에게도 들리지요. 마을 사람들은 이제 이 북소리에 이성이 빠지고, 감성이 자리잡게 되어요. 감성은 이제 노래를 세 번, 친절하게 듣지요. 처음에는 호기심, 다음에는 동정, 마지막에는 어리석음으로 듣죠. 노래는 길지도 짧지도 않은 인간이 집중할 수 있는 최대한의 시간만을 할애합니다. 그 시간 동안 당신은 인류라는 거대한 선과 악이 엉킨 집단을 들었다 놓았다, 반복하죠. 매가 토끼를 잡듯이 놓았다가 날아서 둥지까지 가기 위해 매가 날듯이 들죠. 마을에서 온 인간들은 본인이 매가 잡은 토끼인 줄도 모르고 당신의 말대로 행동하죠. 당신에게 돈을 주고, 의미 없는 시덥지 않은 마을에 개혁을 일으키고(사실상 개혁이라기 보다는 당신에게 더 큰 이익이 가게끔 체제를 바꾸는 것이죠), 당신을 도와주게 되죠. 아프고 다치고 눈이 먼 이방인은 몸조차 제대로 가눌 수 없다, 너무나도 가슴 아픈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그게 거짓이라는 걸 아는 이는 아무도 없죠. 당신의 거짓은 노래가 되는 동시에 그림자가 되어 사람들을 가두죠. 사람들은 스스로의 얼굴을 칼로 자르고, 팔을 농기구로 긋고, 다리를 하늘에서 떨군 바위로 으깨죠. 배는 벌써 동정으로 터지기 직전인데, 그 동정으로 채운 배는 허기가 지기 마련이죠.
당신은 이제 이백번째 날을 겪었어요. 이백번째 날, 당신은 당신의 까닥대는 손가락으로 본인이 번 생명과 욕망의 덩어리인 곡식들을 세요. 곡식 한 가마니, 두 가마니, 세 가마니, 잠시 뜸을 들이며 네 가마니, 다섯 가마니, 여섯 가마니, 일곱 가마니, 여덟 가마니…. 육십팔 가마니. 너무나도 많은 곡식들에 거짓으로는 멀었다는 눈이 휘청거렸죠. 눈알은 이제 다시 흔들리고, 욕망은 어서 눈알을 사로잡았죠. 장님 연기는 욕망 앞에서 흔들렸죠. 지금은 집에서 몰래 곡식을 세는 게 아닌 사람들이 건내준 곡식들을 직접 세는 것이었습니다. 연기를 위해 손을 더듬으며 곡식들을 짚었지만, 이 행동조차도 거짓이기에 어색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의심보다는 동정을 하였지만, 마음 속 의심은 의심답게 노란 꽃으로 자라났죠. 노란 꽃은 노랗게 피어나는데, 동정이라는 독은 땅에 스며들기 힘들었습니다. 곡식들을 짚는 저 모습은 어색하였고, 아무리 보아도 눈알은 생명이 깃들었습니다.
당신은 이제 사람들의 의심을 늦추려고 하였지만, 인간은 선한 동시에 과격할 정도로 화가 많아서, 더이상 당신을 믿을 힘이 남아나지를 않았어요. 당신이 아무리 해명을 해보아도, 감정이 깃든 도화지에는 반박이 깃들 수 없었죠. 당신은 이 마을의 이장에게로 갔어요. 과거와는 다르게 당신의 다리에는 풍요의 살이 깃들었죠. 이장에게 가서 당신은 스스로에 대해 해명을 하였어요. 그런데, 눈이 멀었는데 어찌 이장을 알아보죠?
당신은 다시 당신의 마을로 내쳐졌어요. 이 마을의 선함을 당신에 의해 꺼졌어요. 오색빛깔 개들이 춤추는 땅을 떠나서, 풍요로운 땅을 떠나서, 당신의 기아가 깃든 대기근의 마을로 가지요. 저들이 당신의 마을의 곡식을 세금으로 앗아갔고, 당신은 저들의 곡식을 동정으로 앗아갔죠. 서로가 서로의 곡식을 가져가고 놀았지요. 힘을 질끈 쥐고서 곡식을 가지고 줄다리기를 하였지요. 줄다리기는 가칠지만 재미있는 놀이였지요. 그 동시에 사람을 죽이는 놀이였지요. 그 동시에 오색빛깔 종이들을 위에 얹은 줄을 쓰는 놀이였지요. 이는 아름다우면서도 화가 나는 색이였지요. 눈알도 같이 매단 놀이였지요. 곡식을 위해 싸우지만, 결국은 곡식을 잃는 놀이였지요. 기아가 뒤에서 쫓아오는 놀이였지요. 생존에 관한 나약한 놀이였지요. 감정적인 놀이였지요. 당신이 이긴, 아니 이겼던, 이겼었던 한때 이겼었던 놀이였지요. 웃음이 낭자하는 승자들과 죽음이 낭자하는 패자들의 놀이였지요. 거짓을 연주하는 왠지 모를 죄책감을 욕심으로 덮는 놀이였지요. 당신은 이제 이 세상에서 실패한 패자로서 눈을 감고 세상을 떠날 거에요. 거짓은 다시 무덤에, 구덩이에, 땅바닥에, 혹은 바다에 묻혀요. 당신은 세상 속에서 눈을 감아요. 아니, 감아야 해요. 감아야 해요. 감아야 해요. 꼭 감아야 합니다. 꼭 감아야 해요. 꼭 감아야 해요. 꼭, 꼭, 꼭. 당신이 거짓을 노래하는 연주자여서요? 아니에요. 단순히 그것만은 아니에요. 당신은 연주에 성공하였지만, 듣는 이들의 마음을 결국은 놓쳤기 때문이에요. 표면적이였죠. 당신은 실패했기에 이제 눈을 감아야 합니다. 다시 눈을 감으실 거에요. 이제 기아는 없어요. 생명도 없어요. 그 잘난 생명은 축복을 자주 잊어버렸고, 실수로 축복 받지 못한 이들은 기아에 시달려요. 하지만, 그 망각조차도 이제는 없어요. 눈을 감으면 아무것도 볼 수 없거든요. 아마. 저야, 눈을 감은 적이 없으니까 모르죠. 그냥 그렇데요. 저기 있는 흰 인간 말에 따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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