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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11 00:22조회 89댓글 1소야
유설은 고작 다섯 살 되던 해에 에프 그룹으로 내려왔다. 에프 그룹에서 유설은 료가 담당했다. 유설이 처음으로 에프 그룹으로 내려왔을 때 료는 집앞 쓰레기장에서 썩은 빵이나 질겅거리던 중이었다. 세상은 저출산이다 인구수가 떨어지고 있다고들 난리인데 에프 그룹에서는 어디선가 항상 사람이 내려온다. 유설은 무려 에이 그룹 출신이었다.


A → F
사유: 선천적 심장 기형


동봉된 의사 소견서를 읽어보니 유설의 심장병은 생각보다 심각한 듯싶었다. 일상생활 못 하는 건 당연하고 오래 걷는 것도 제대로 못 할 거라고. 솔직히 어려운 단어가 너무 많아서 제대로 이해는 못 했는데, 시한부란 거 그거 하난 알아들었다. 언제까지 살아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유설 같은 중증 심장 기형이면 이십 년 사는 것도 기적이랬다. 개도 아니고 고작 이십 년도 못 사는 건 뭐야. 에이 그룹같은 곳이랑은 다르게 에프 그룹은 하루에도 몇백 구씩 새 시체가 생긴다. 그냥 쓰레기장에 갖다 버릴까 고민하다 시체 썩은 내가 나는 건 싫어서 료는 유설을 키우기로 했다. 그렇게 결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유설이 눈을 떴다. 제 앞에 료가 있었다.


- 너 심장병이라면서. 길어야 스물을 못 넘길 거야.

유설은 그 말 듣고도 고개만 갸웃거렸다.

- 하긴 너같은 어린애가 뭘 알겠냐.

자기도 어리면서 료는 그렇게 말했다.


유설은 태어나고부터 줄곧 병원에서만 살았어서 아픈 게 당연한 건줄 알았다. 너 심장병 있어, 그 말만 골백 번은 들어서 이젠 심장이란 단어만 들려도 그게 제 이름인 줄 알고 뒤를 돌아봤다. 오늘도 심장병 하는 소리에 유설은 두 눈 크게 뜨고 료를 바라봤다. 료는 유설의 코앞에 와 있었다.


유설은 심장이 아픈 대신 감각이 좋았는데, 특히 소리를 정말 잘 들었다.


쿵쿵. 쿵쿵. 머리에서 료의 심장 소리가 울렸다.

유설은 료의 심장 소리가 정말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유설이 평생 들었던 심장 소리라곤 제 것밖에 없어서 그랬다. 모든 사람이 자기처럼 곧 끊어질 것 같은 심장으로 살아가는 줄 알았다. 그래서, 유설은 자기가 아픈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료는 자길 바라보는 유설의 측은한 눈빛이 왠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왜 그렇게 봐. 하고 묻자 유설은 아니에요. 하고 대답했다. 료는 유설이 생각보다 말을 잘 한다고 생각했다.


처음 만난 것치고 유설은 지나치게 태연했다. 료는 왜 본인이 더 긴장하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사기 같은 범죄를 저질러서 에이 그룹에서 단번에 에프 그룹으로 내려온 사람들은 마치 죽기라도 한 것처럼 괴로워했다. 진짜 자살하는 사람도 흔치 않았다. 에이 그룹을 경험해본 적은 없지만, 오다가다 전광판으로 본 뉴스에서 에이 그룹은 마치 꿈에서만 그리던 태평성대처럼 보였다. 료는 그런 곳에서 에프 그룹으로 내려왔다면 자기라도 콱 자살해버릴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유설은, 얼굴을 찡그리곤 두 손으로 코를 막았다.


- 여기 더러운 냄새가 나요.


에프 그룹에서는 역겨운 냄새가 났다. 집에서 냄새가 난다고는 생각해본 적도 없어서, 료는 뭘 해줄 수가 없었다. 그래서 허둥지둥 손부채질만 했다. 냄새가 더 심하게 났지만 유설은 그냥 가만히 바람만 맞고 있었다. 시원해요. 추워요. 그렇게 불만만 늘어놓고는.


흩어지는 기억이 있었다. 유설은 얼마 전 꾸었던 환상을 떠올렸다.


에이 그룹에는 수면기가 있다. 수면기를 이용하면 고작 두 시간만 자고도 열 시간 잔 것처럼 말끔한 정신으로 돌아다닐 수 있었다. 에이 그룹의 모든 사람이 반쯤 의무적으로 수면기를 사용했고 에프 그룹으로 내려와 아홉 시간이나 줄창 자 버린 유설은.


- 잠을 잤는데 고래가 나는 걸 봤어요.


처음으로 꿈이란 걸 꿨다.









그리고 십오 년 뒤. 너무 전개가 빠른 거 아니냐고 묻는다면 그냥 유설의 체감 성장 속도가 그만했다고 알려주고 싶다. 눈 한 번 감았다 떴는데 일 년이 지나 있었다고. 아마 잠을 일 년 내내 자서 그런가 보지. 갈수록 눈에 띄게 희미해지는 게 꿈이라면 기억이랑 비슷하잖아. 어쨌거나 유설의 병세는 십오 년 동안 호전되질 않았고 이십 년 살면 기적이래, 하는 이십 년째를 얌전히 흘려보내는 중이었다. 에이 그룹에서처럼 죽기 전에 사진 찍고 관 놓을 장소 마련하고 그럴 여유는 없었고 굳이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유설이 에이 그룹에서는 영정 사진이란 게 있었다고 그래서 병원 환자들이 자주 그걸 찍으러 갔었다고 료에게 털어놓자 료는 화가 난 표정으로 유설의 팔목을 세게 잡곤 어디론가 걸어가기 시작했다.


- 료. 어디 가.
- 영정 사진 찍으러.
- 그게 무슨 소리야?


료는 대답하지 않았다. 유설은 뾰로통한 얼굴로 잡힌 손목을 바라봤다. 어릴 적부터 유설은 말이 없는 편이었다. 손목, 아픈데. 유설은 굳이 말하지 않고 료 뒤꽁무늬를 졸졸 쫓았다. 료는 끝까지 손목을 놓아 주지 않았다.


료는 집앞 거대한 쓰레기장으로 갔다. 에이그룹산 직행 쓰레기통이었다. 여긴 다른 곳과는 다르게 멀쩡한 음식이나 물건들이 자주 떨어져서 마을에서 제일 인기 있는 쓰레기통 스팟 중 하나였다. 꼭두새벽부터 굶기 직전인 사람들이 먹을 것이 있나 눈에 불을 키고 쓰레기장을 마구 뒤지는 중이었다. 료는 그런 사람들 틈에 껴서 같이 쓰레기장을 뒤지기 시작했다.


료는 항상 그랬다. 필요한 게 있어서 이거 필요해 저거 필요해 하고 말하면 대답 없이 이 쓰레기장으로 와서 그걸 찾을 때까지 몇 시간이고 돌아오지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이런 곳에 멀쩡한 카메라가 있을 리 없잖아. 에이 그룹에서도 카메라는 비싼 축에 속했었다. 유설은 료가 뭘 하려는 건가 흘겨보다가 저 멀리에서 하늘에 구멍이 뚫리고 음식물 쓰레기가 한가득 떨어지는 걸 발견했다. 집에 비상식량이 어느 정도 있긴 했으나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게 먹을 것이었다. 저렇게 거대한 음식물덩어리에서는 가끔 먹다 만 음료가 발견되기도 했다. 몇 달만에 음료를 먹을 생각에 침이 고였다. 료가 물건을 찾는 데 집중하는 사이 유설은 누구보다 먼저 음식물 쓰레기장으로 향했다.


내려온지 얼마 되지 않아 썩지도 않고 곰팡이도 없는 음식들이 꽤 많았다. 냉동식품 같은 건 필요 없지만 빵이나 밥, 운이 좋게는 포장도 뜯지 않은 라면이나 과자를 발견하면 그날은 그걸 먹는 날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배불리 잠에 들 수 있을 것이었다. 유설은 쓰레기장 위를 돌아다니며 먹다 만 소세지, 속살이 함께 잘려나온 사과 껍질과 테두리만 남은 식빵 조각을 찾아 주머니에 넣었다. 심지어는 포장지가 멀쩡한 마카롱 세트 박스까지 발견했다. 안엔 색색깔의 작은 마카롱 다섯 구가 있었다. 료는 키가 크니 세 개를 주고 남은 것은 내가 먹어야지. 유설이 그런 생각으로 기분 좋게 쓰레기장에 도착했을 때 료는 거기 없었다. 거대한 쓰레기장에서 길을 잃었나 주변을 둘러보다 도저히 찾을 수가 없어서 쓰레기 산더미에서 내려왔을 때에야, 쓰러져 있는 거대한 나무 옆에 주저앉은 료가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는 게 보였다.


유설은 료와 멀리 떨어져 있는 곳에 앉았다. 도끼를 들고 있는 걸 보아하니 옆에 나무는 료가 그런 것 같았다. 손에 들고 있는 건 얇게 자른 나무의 단면과 빨갛게 물든 아파리 몇 개, 그리고…… 공업용 테이프?


방해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도저히 물어보지 않고는 못 견디겠다. 유설이 자리에서 일어나 료가 있는 곳을 향해 걸어갔다.


- 잎이 빨갛네.


료의 어깨 너머로 나무 판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료는 낙엽을 잘게 부숴서 나무 위에 어떤 모형을 그리고 있었다. 생긴 게 마치 사람 얼굴 같았는데, 영정 사진을 찍어준다는 게 설마 이런 거였던 건가. 료는 놀란 낌새도 없이 대답했다.


- 가을이잖아.
- 내 얼굴 저렇게 빨갛게 칠해도 돼? 난 초록색이 좋은데.
- 네가 몰라서 그런데, 넌 빨간색이 어울려. 가을도 그렇고.
- 그래도 난 초록색이 좋은데.
- 나도 초록색이 더 좋아.


그게 뭔 소리야. 유설이 볼에 공기를 넣었다. 료는 그런 유설 머리 쓰다듬어 주려다가 손에 잔뜩 박힌 나무 껍질 보고 그냥 다시 작업에나 집중하기로 했다. 그깟 나무 껍질이 뭐라고. 유설이 투덜거리면서 잘린 나무 밑동에 앉았다. 료는 그냥 바닥에 철푸덕 앉아 있었다. 날 위해 저렇게까지 해주는데 나무 밑동 정도는 양보해야 하지 않나, 고민하던 유설은 머리도 안 쓰다듬어 주는데 알 게 뭐야 싶어 그냥 얼굴에 철판 깔았다. 작업은 길게도 이어졌다.


그리고 그 긴 작업 중에 료는 유설을 아주 자주, 길게 쳐다보곤 했다. 이 얼굴을 똑같이 나무 판자에 담겠다는 듯이. 아니 어쩌면 그냥 유설이 죽기 전에 이 얼굴을 최대한 많이 바라봐 두겠다는 듯이. 말라 빠진 낙엽이 가루가 되어 나무 밑동에 색칠되었다. 그건 서서히 유설의 얼굴을 닮아 가고 있었다.


료는 다 만든 작품을 바닥에 정성스레 내려놓고 공업용 테이프를 꺼내 그림이 망가지지 않도록 판자에 붙였다. 이걸 왜 가져왔나 했더니 이럴 때 쓰려고 그랬구나. 적당히 고정된 판자가 유설을 닮았다. 빨간 색 유설. 낙엽 같은 유설. 료는 자기가 만들어놓고도 맘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여름에 만들 걸’ 하고 중얼거렸다. 그러면 초록색 유설이 만들어졌을 거라면서.









스물을 넘기기 힘들겠다는 의사의 말은 마치 어떤 명제처럼 느껴졌다. 넌 스물을 넘지 못해. 그렇게 낙인찍은 것처럼 가을이 채 지나기도 전에 유설은 부쩍 야위어갔다. 죽음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둘 중 누구도 입에 꺼내지 않았지만 막연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있잖아. 료. 에이 그룹에는 작은 나무 한 그루조차 없었어. 미관상 예쁘지 않다고 다 넘어트려 버렸거든. 밑 등급의 도시로 내려갈수록 나무와 온갖 잡초들이 많아서 역설적으로 모든 그룹 중에 에프 그룹의 공기가 제일 맑다고 해. 그래서 내가 스무 살까지 살았던 걸지도 몰라. 어떻게 보면 나한테 좋은 환경으로 잘 떨어진 거지.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

하하. 난 에프 그룹이 좋았던 거 같아. 여긴 진짜 별이 보이잖아. 에이 그룹은 인공 빛도 심하고 공기질도 안 좋아서 가짜 하늘을 씌웠어. 천장, 돔 말이야. 밤마다 밝게 빛나긴 하는데 그게 진짜 별인지 그게 아니면 또 다른 인공 빛인지 알 수가 없어. 여긴 그런 게 없어도 은하수가 보이더라. 가짜 따위랑은 비교가 안 돼.

그깟 별 봐서 뭐 한다고.

난 에프 그룹만의 꿈이 좋았어. 미래를 말할 때의 꿈과 잠을 잘 때의 꿈, 발음이 같잖아. 나는 남들보다 하나의 꿈을 더 꿀 수 있다는 게 좋았어. 있지, 처음 꿈이란 걸 꿨을 때 봤던 고래가 아직도 잊히지 않아. 꿈의 정의가 두 개가 되어봤자 난 하나의 꿈밖에 꾸지 못하겠지만……

헛소리.

그냥 그랬다는 거야.


유설이 말하다 말고 돌아 누웠다. 안 그래도 심했던 격통이 온 몸을 찢어놓을 것처럼 세게 내리꽂혔다. 살면서 겪은 모든 고통 중에 제일 아팠다. 조금 과장하면 지금껏 겪은 모든 고통을 합친 것보다도 더 아픈 것 같았다. 신경과 신경 사이로 통각 신호가 빛만큼 빠르게 왕복했다. 그리고 그건 비단 몸 뿐만이 아니었다. 유설의 영혼이 마치 다 말라 비틀어진 낙엽처럼 잘게잘게 부서지고 있었다. 아프다고 소리치고 싶었는데 아프다는 말을 해본 적이 없어서 유설은 그저 머뭇거릴 뿐이었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료는 그런 유설의 속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유설의 머리를 얕게 쓰다듬었다. 그건 유설이 제일 좋아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유설은 난생 처음으로 주마등을 경험하게 된다. 기억도 나지 않았던 한 살 시절부터 스무 살이 되기까지, 에이 그룹에서부터 에프 그룹으로 내려오기까지, 한 사람의 짧은 생을 단숨에 내려다 보았다.


유설은 낙엽이었다. 에이 그룹에서부터 비 그룹을 지나 에프 그룹까지 살랑살랑 떨어진 낙엽. 바닥에 떨어진 낙엽 치고 오래 사는 법이 없는데 유설은 십오 년이나 더 살았으니 완전 이득이지. 낡아비틀어질뻔한 것에 료가 계속 물을 줬으니까. 처음 만난 게 료가 아니었으면 유설은 지금쯤 밟히고 밟혀서 흔적조차 남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인육 고기로 먹혀버렸을지도 모르지!


별 같지도 생각을 하다 하늘 밖을 봤다. 거대한 고래가 밤의 하늘을 배경삼아 유영하고 있었다. 우주 위로 튀어오른 고래는 작은 별 하나를 집어삼킨다. 그럼에도 여전히 검은 하늘에 찍힌 여러 개의 별빛이, 그 별빛을 아우르는 거대한 은하수의 장이 마냥 거대하게 보여서 유설은 한순간 넋을 잃고 말았다.


료는 빨간색보다 초록색이 좋댔다. 낙엽보다 건강하고 푸른 이파리를 더 좋아한다는 뜻이었다. 유설을 보면서 빨간 빛을 떠올린 건 유설이 이미 낙엽 신세라는 것을 알고 있어서. 그럼에도 여전히 료는 건장한 나무 아래 서서 다 낡아 빠진 낙엽을 나뭇가지에 매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자기를 희생 삼아.


사실 료에게 거짓말한 것이 하나 있다. 유설은 초록색보다 빨간색을 더 좋아했다. 그건 나뭇가지에 달린 이파리보다 낙엽을 더 좋아한다는 뜻이었다. 꿈도 없고 별도 없는 에이 그룹에 돌아갈 바엔 여기서 료에게 먹을 거 하나 더 가져다주는 게 더 의미 있는 일이라고, 마카롱 상자를 탁자 밑에 숨겨 둔 것은 료에게 다섯 구를 전부 다 주기 위해서였다고, 유설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아무래도 이건 마지막으로 꾸는 꿈이겠지. 안녕.
그리구 잘 있어. 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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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속에서 료와 별과 고래가 기다린다면, 정말 그렇다면 영원한 꿈도 바라 마지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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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 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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