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0-03 22:10•조회 65•댓글 1•파락
12시를 향해가는 날카로운 시곗바늘에 쫓겨 따뜻하거나 어리석은 마음 전부 도려진 피투성이의 몸이 되어서야 끝내 비참한 왼발에 유리구두가 들어맞았다.

무엇도 잘라내지 못하는 나약한 마음으로 한결같았다면 좋았을 텐데. 환상이란 환상 그 자체로 남아 있는 쪽이 낫다는 걸 왜 몰랐을까. 그렇게 후회를 입에 달고 살면서, 겨우 시간을 돌려 과거에 닿아도 변함없이 동경에 손을 뻗다 지금을 영원히 반복할 것이다. 굳이 내가 아니더라도 다들 삐끗해 나락한 순간을 살아가고 있다는 게 미치도록 안타까워서.

계단이 대체 얼마나 있는 거야.

욕을 내뱉다 치맛자락이 발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윽, 가위라도 있었더라면.
울렁이는 시야와 저릿한 발목을 무시하며 일어나 다시 달렸다. 아아, 무엇보다도 역겨운 마법 주문—아르케. 액자 속에서만 행복할 수 있다는 건 정말로 한낱 동화책의 삶과 다름없다는 것을 수백 번째 다시 실감하게 했다. 분명 뿌리부터 썩어빠진 자들은 탑의 정상에서 수 세기가 지나도 변함없이 더러운 이데올로기로 가련한 소녀들을 짓누르겠지. 티아라가 씌워진 후에야 깨달아 도망쳐 보아도 이미 늦었다.

포상의 베일을 두른 은빛 드레스와 유리구두 이 모두 무책임하게 신이 버려두고 간 잔여물의 등을 떠미는 재촉. 차라리 새까만 먼지에 둘러싸여 우물 안 개구리인 채 어린 마음으로 환상을 그리는 편이 기뻤으리라, 신데렐라는 후회했다. 그러나 심장을 조이는 가쁜 숨 뒤에는 역행의 페이지가 아니라 현실의 자각만이 이명이 되어 안 그래도 복잡한 머릿속을 눈치 없게도 괴롭혔다.

머리로는 아무리 발악해 봤자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이해해도, 너덜너덜해진 몸은 자꾸만 달아나려 했다. 그렇게 하면 언젠가는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는 듯. 얻는 것 없이 체력만 닳아갈 뿐인데도.

이상향을 바라는 면도 여전했다. 레지스탕스. 혁명. 대충 그런 거. 세계의 변환점. 계속 소망을 갈아 끼우는 걸 보니 마음은 크게 성장하지 못했음에 분명하다.

지금이라도 내가 바라는 왕자님이 나타나 날 구해줬으면 좋겠어, 그런 끝없는 욕심. 백마를 타고, 반짝이는 옷과 허리춤의 멋진 칼보다도 더 빛나는 자유로운 의지로 모든 족쇄를 끊어주기를. 가슴을 조이는 답답한 드레스를 찢고, 헝클어진 머리에 무거운 티아라 대신 마거릿의 화관을 씌워주고, 함께 사랑을 나눌 수 있다면 기쁠까. 누구라도 좋으니 이 액자를 깨 나를 해방시켜줄 자는 정말로 없는 거야? 그래. 그런 사람이 있었다면 진작에 달랐을 거다.

비참한 처지를 곱씹을 때면 몇 번이고 계속 눈물이 흘렀다. 이제는 전처럼 슬프지도 않은데. 허무해진 마음이라면 쉽게 수긍하게 될 줄 알았지만, 내 욕심이 짜증나 게도 꽤나 단단한 모양이다. 눈가를 닦으며 구두 한 짝이 벗겨졌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내가 될 순 없나?

남은 한 짝의 구두를 벗었다. 반짝이는 유리 속, 일그러져 보이는 내 모습에게 마지막으로 조용히 키스하곤.

쨍그랑!
사방으로 튀긴 투명한 스파크가 심장 깊은 곳을 찔렀다. 상처 틈에서 흐르는 뜨거운 피는 불꽃이 되어 나약한 살을 녹였으며, 서서히 상처가 아물어 흉터로 단단해진 마음은 울다 지쳐 잠들었던 날의 꿈에서 본 것과 같았다. 역겨운 압박을 찢을 수 있는 칼날.

온몸이 떨렸다. 다만 눈동자만은 일말의 흔들림도 없이 앞을 향했다. 12시 정각으로 오히려 한 발짝 가까이 다가가 그 뒤에서 내일의 자정에 두려워하는 그들에게 조금은 어색한 말투일지라도 말했다, 함께 춤출까요.



-



https://curious.quizby.me/8UaM…
댓글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