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2호, 문 열어주세요! 0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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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22 21:37조회 26댓글 1설꽃비
@ 설꽃비 _ 25 / 07 / 22



문 앞에서 들리는 누군가의 발 소리와 무언가를 붙이는 소리에 나는 숨이 막혔다. 분명히 그건 혜림이였다. 홍혜림이 다시 내게 와줬다. 이렇게 생생하게 떠오를 줄은 몰랐는데... 그 애의 손, 글씨, 숨결까지도.

"혜림이야...?"

나도 모르게 나는 벌써 현관문 앞까지 걸어간 상태였고, 드디어 혜림이에게 사과할 수 있다는 허튼 생각이 들었다. 문을 열기 직전, 가슴이 뛰었다. 지금이 아니면 다시는 기회가 없을 것 같았다. 처음으로 남 앞에서 그리운 너의 이름을 불렀다.

"혜림, 혜림아...!! 혜, ...어?"

당황스럽다 못해 창피하기까지 했다. 근 4년간 이토록 심장이 크게 뛴 적은 없었다. 얼굴이 실시간으로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문 밖에 있는 사람이 나보다 크고 훤칠한 남자라는 걸 확인하자마자 나는 반사적으로 문을 쾅 닫았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쓰러질 듯 힘들었다. 그래, 혜림이가 올리가 없지. 혜림이는 날 싫어해... 혜림이는, 혜림이는 나를.

"미안해요. 혹시 시끄러웠어요? ...지금 늦었으니까 얼른 주무세요. 좋은 밤 되세요."

그 사람이었다. 아직도 문고리에 있을 차가운 떡이 생각났다. 그 남자의 따스한 목소리가 날 위로하기라도 하는 듯 들렸다. 최근엔 아침마다 들려오던 그의 시덥잖은 이야기들이 기다려져오기까지 했다. ...이상한 남자다.

다시는 그 죄책감을 느끼고 싶지 않았다. 문을 살짝 열어 그가 없음을 확인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내는 비닐봉투도 여전히 있었다. 소리가 최대한 안나도록 비닐봉지를 집어 어서 집 안으로 들어와 숨을 골랐다.

"...차갑다."

오랜만에 먹은 음식이였다. 차가웠고, 딱딱했다. 그럼에도 좋았다. 자꾸만 미소가 나오려는 것을 겨우 막아냈다.

***

밤 중에 이런 소리가 들려왔다.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그보다 작게 났던 바스락바스락 비닐소리. 아무래도 그녀같았다. 설마 떡을 받아준걸까. 정말 그런거라면...

설렘에 가득 찬 채로 문을 열고 나설 채비를 했다. 밖으로 한 걸음, 두 걸음을 내딛은 순간. 602호의 문고리에 걸려있던 떡이 없어졌다. 만세...!! 속으로 기쁨의 탄호성을 내질렀다. 어제 봤던 쪽지에 대한 기억은 죄다 잊어버린 듯, 방긋방긋 웃으며 이담은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지하철 안은 늘 그렇듯 복잡했다. 그 안에서 이담은 지하철 속 들려오는 박자들에 맞춰 고개를 흔들었다. 귀에 꽂은 이어폰에서도 통통 튀는 리듬의 노랫소리가 옆 사람들의 귀까지 어렴풋이 들리는 듯 했다. 아직도 문고리에 걸려있던 떡이 없던 602호의 문이 생생하게 기억났다. 지하철 안에서도 이담은 피식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출근길 속 지하철 사람들과 이담은 마치 다른 세계 속 사람들 같았다.

'다음에는 인사하면 받아주실까.'

기대 가득한 내일을 향해 오늘도 이담은 여전히 달린다. 602호 너머, 아직 모르는 그 사람에게.



By. 설꽃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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