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0-05 22:26•조회 22•댓글 0•여우비
*이번 회차는 전 회차와는 다르게 또 다른 주인공인 ‘너’의 시점으로 쓰였습니다.*
너와 나는 어디부터 어디까지 연결되어 있을까. 여름아, 난 늘 네가 내 친구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해. 너도 그렇게 생각할까? 그랬으면 좋겠다. 사람들은 참 이상하지. 여름은 사계 중 가장 뜨겁고 더운 계절인데, 사람들은 ‘여름’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시원하다’라는 생각을 해. 모순적이라고 생각해 보지 않았니? 하긴, 너는 그런 것들에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았으니까. 지금은 모르겠다. 나는 네 곁을 떠난 지 너무 오래라서 이젠 네가 느껴지지 않아. 예전엔 우리가 멀어진다고 하더라도 너의 생각을 다 읽을 수 있을 것 같은 꿈만 같은 생각을 하곤 했어. 이렇게 멀어지니 그럴 수 없다는 게 더 실감났지만 말야.
난 아직도 네가 같은 모습으로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을 것만 같아. 항상 한결같이 내가 상상하는 모습으로. 교복셔츠 맨 위 단추는 항상 풀어 놓은 채로 늘 헐겁게 넥타이를 메고 닳은 실내화를 신고 다녔던 너 말야.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은 없지만 가끔씩 그때가 그리워져. 물론 나는 그때부터 더는 살 생각이 없었거든. 넌 몰랐겠지만 조금 깊이 생각해 보면 내가 왜 그랬는지도 알 수 있었을 거야. 네가 특별히 똑똑하다거나 눈치가 빠른 건 아니니까 지난 일이라고 여겼으면 좋겠어. 아니, 아예 나같은 건 잊어버리고 새 삶 살았음 좋겠다.
내가 이렇게 편지를 쓸 때마다 드는 생각이 뭔지 알아? 난 아직 살아 있구나. 이렇게 오른손에 연필을 들고 글씨를 끄적거릴 만큼 생명력이 있고 생동감이 있구나. 네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 듣는다면 미쳤다고 생각할지 몰라. 그러나 너만큼은 알 거라고 생각해. 나는 너무 비겁한 사람이라서 내 감정을 제대로 형용하는 것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지만, 너라면 충분히 날 대변해 주고도 남을 거란 생각이 자꾸만 들어서.
잘 살고 있겠지? 아직 죽진 않았을 거야. 네가 언젠가 나한테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지? 우린 서로 먼저 죽는 사람이 나중에 죽는 사람을 마중해 주자고. 만약 나중에 죽을 사람이 영영 오지 않는다면 영생을 얻어 잘 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자고. 그렇지만 인간은 수명이 정해져 있으니 우린 꼭 죽어서도 다시 만날 거라고. 그날따라 네가 상상을 참 많이 하더라고. 그 말을 들었으니 난 아직 네가 죽지 않았다고 굳게 믿고 있어. 영생을 얻는다면 과연 좋을까? 글쎄. 나는 솔직히 별로일 것 같아.
얼마 전에 형을 만났어. 알아. 형은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래 맞아. 어쩌면 현실보다도 행복한 꿈속에서 말야. 형은 기억과는 조금 달라져 있었어. 형제로서, 가족으로서 이런 말 하기가 좀 그렇지만 솔직히 예전에 우리 형, 좀 불쌍해 보였거든. 늘 인간관계에 치이고 공부에 치이고 피곤함에 치여 살아서 더 그랬던 것 같아. 그런데 오랜만에 본 형은, 그야말로 눈이 부시더라. 항상 굽었던 등을 곧게 피니까 키도 훨씬 커 보이고, 늘 초점 없던 눈에 생기가 도는 거 있지. 이런 점들이 날 더 괴롭게만 만들었어. 만약 형이 살아서 이런 모습을 일찍 가졌더라면, 하는 생각이 자꾸만 머릿속을 헤집어서.
형은 늘 그 시간에 멈춰 있잖아. 고등학교 3학년에. 내가 그 해 죽기로 결심한 것에는 특별한 이유가 없었는데, 알고 보니 형도 딱 내 나이 때 죽어버린 거야. 우연인지 운명인지 간에 잔인하지 않아? 같은 모습을 한 형제가 모두 같은 나이에 죽어버렸다는 게. 너무 어두운 이야기만 한 것 같아서 조금 걱정이 돼. 너를 웃게 해 줘야 할 텐데 말야. 아닌가. 어차피 이 편지는 네게 닿을 일이 없을 테니.
여기서 이만 말은 줄여야겠다. 중간고사 시즌일 텐데. 물론 넌 성인이겠지만. 오늘은 편지가 짧아서 미안해. 길게 길게 쓰고 싶은데 갈수록 짧아지는 것만 같아. 진심이 전해지는 편지는 길든 말든 상관이 없다던데, 그게 사실이라면 좋겠다. 오늘은 정말 진심들로만 꾹꾹 눌러 썼거든. 연필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
난 네가 참 좋았어. 그리고 지금도 물론. 잘 자.
⇒
자꾸자꾸 업로드하는 텀이 길어지네요. 요즘엔 글이 잘 안 써지더라구요.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