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전 세리아 🦈
https://curious.quizby.me/Seri… 연쇄 폭발의 첫 시작은 요란한 떨림이었다. 바깥에서 시작된 폭발은 그저 무의미한 메아리처럼 진동하다, 우주선 내부의 매질을 타고 겨우 자그마한 소음을 남겼다. 그건 우주선의 진동에 비해서는 아주 미세한 파동이었다.
그에 의해 잠에서 깬 나는 뒤이어 밀려오는 굉음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위잉 하며 울리는 기계음 때문이었다. 그것은 지구에서나 듣던 일반적인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 같다가도 그것보단 조금 더 시끄럽고 괴기한 것이, 전쟁 때에나 들리는 공습 경보 같기도 했다. 탁자 위의 물건들이 바닥으로 쏟아졌다. 애초에 제대로 서 있는 탁자조차 몇 개 없었다. 나는 바깥에서 누군가의 외마디 비명을 들었다.
“제임스.”
내가 최대한 침착하려 노력하며 말했다. 그러자 일 층 침대에서 제임스가 비틀거리며 고개를 내밀었다.
“이게 무슨 일인가요?”
내가 묻자 제임스는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와는 달리 제임스는 우주에서만 10년 이상 산, 지구의 중력 범위를 벗어나본 적도 있을 정도의 베테랑이었다. NASA의 우주비행사 중에서도 가장 유망하고 경력 있는. 그런 그마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도 잘은 모르겠는데, 인공지능 조종에 문제가 생긴 것 같아요. 에블린을 불러서 확인을······ 으윽.”
우주비행선이 한 번 더 휘청였다. 제임스는 그만 균형을 잃고 머리부터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제임스, 괜찮아요?”
제임스가 간신히 고개를 끄덕였다.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발생했다는 건 분명했다. 나는 사다리를 세게 잡고 제임스의 도움을 받으며 이 층 침대를 겨우 내려왔다. 어디선가 폭발하는 소리가 들리며 우주선이 한 번 더 심하게 기울었다.
그때, 왜인지 몸이 가벼워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귀가 멍해지며 어디가 앞이고 어디가 뒤인지, 어디가 위이고 어디가 아래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내가 의도한대로 내 몸이 움직이질 않았다. 팔을 허우적거리고 있는데, 누군가 내 팔뚝을 잡았다. 제임스였다. 그제야 옆을 봤다. 제임스는 허공을 날고 있었다.
“자기 중력 장치가 고장난 것 같아요.”
설마 중력이 사라진 건가. 처음 느껴보는 무중력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벽에 고정되어있는 몇몇 가구를 제외하고 모든 것이 유체를 따라 배회하고 있었다. 꽉 막힌 차도처럼 앞길이 보이지 않았다.
“우현, 무중력 훈련 해본 적 있어요?”
“······아니요.”
“절 따라오세요. 일단 로비로 나가봅시다.”
나는 허우적거리며 제임스의 도움을 받아 겨우 이동했다. 급하게 뛰어나온 로비에는 우리보다 먼저 도착해 있던 사람들 몇몇이 소란스럽게 떠들어대고 있었다. 크건 작건에 관계없이 아무렇게나 널부러진 물건들이 마치 우주에 수놓은 별처럼 보였다. 웃기게도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다.
로비 중앙에선 에블린이 온갖 기계를 만지고 있었다. 에블린 옆에 선 앤디도 얕은 지식으로 에블린을 도왔다. 움직임이 자연스러운 걸 보니 NASA에서는 아직까지도 무중력 훈련을 필수적으로 시키는가 보다.
“제임스, 우현. 인공지능이 고장났어요. 어제 저녁 4차 자체 업데이트 도중에 오류가 생긴 것 같은데, 그거 때문이에요. 아까 폭발이 있었죠. 엔진이 하나 터진 거였어요. 무엇보다, 저기······.”
에블린이 설명하다 말고 손가락으로 우주선 바깥을 가리켰다. 우리 우주선의 로비에는 우주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거대한 투명 벽이 있다. 그곳으로 조심스레 눈동자를 옮겼다. 바깥에서 거대한 소행성이 빠르게 회전하며 이곳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때였다. 사이렌 소리가 옅어지며 인공적인 목소리가 스피커로 우주선 내부에 울려퍼졌다.
― 소행성이 이상 궤도에 진입합니다. 주의하십시오. 충돌합니다. 충돌합니다.
그 이후로는 계속 충돌합니다, 라는 말만 반복해 들렸다. 인공지능이 저렇게 확신해서 경고하는 거면 피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뒤늦게 로비에 도착한 KARI 소속 승무원들은 커다란 소행성을 보고 기겁했다. 제이크와 앤디는 무중력 훈련을 하지 않은 탓에 거꾸로 서 있는 한국 승무원들의 몸을 돌리느라 고생하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제임스는 홀로 조종실로 향했다. 우주 조종 인공지능이 생긴 이후로 우주선을 조종하는 법을 배우는 사람은 완전히 사라졌다. 그러나 제임스라면 왜인지 이런 것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어떻게라도 그를 도우고 싶어 익숙하지 않은 몸으로 그의 뒤를 쫒았다. 조종실에 들어가자 무언가 타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곳은 바깥보다 훨씬 큰 사이렌 소리로 가득 차 있었다.
형식상으로만 존재했던 수동 조종 시스템으로 조종 기능을 변환했다. 자동 조종 인공지능의 전원이 꺼지며 요란하게 울리던 사이렌이 한번에 멈췄다. 제임스는 심호흡하곤 조종기를 잡았다. 그러곤 우주선의 이동방향을 완전히 반대로 돌렸다. 관성 때문에 몸이 잠시 뒤로 밀렸다. 제임스는 개의치 않고 다시 조종을 이어갔다. 하나 터진 엔진 때문에 방향 전환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결국에는 성공했다. 그는 복잡한 수동 시스템을 하나하나 조종하는 통에 여유가 없어 보였다. 나는 제임스의 뒤통수에 대고 물었다.
“제가 도와드릴 건 없나요?”
“우주선의 가속도를 최대한으로 올려줘요.”
기다렸다는 듯 대답이 들려왔다.
“네!”
엔진의 출력을 가장 높였다. 인공지능을 꺼 뒀기 때문에 엔진이 터지는 일은 없었다. 점점 속도가 올라가고, 제임스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제임스의 표정을 보니 어느 정도는 안정된 게 맞는 듯 보였다. 그러나 여전히 바깥에서는 소행성 충돌 경고음이 계속해서 흘러들어오고 있었다. 내가 조심스레 물었다.
“제임스. 잘 된 건가요?”
“적어도 아까보단 좋은 상황인 것 같습니다.”
“······충돌 가능성은.”
“충돌은 무조건 해요. 무조건. 피해를 줄이는 것이 관건입니다. 아마 조종실 반대 편, 우주선 후면이 완전히 박살날 거예요. 그래도 당장 죽는 것보단 이게 낫잖아요.”
“그렇게 된다면 당장 죽지는 않는 건가요?”
“그런 셈이죠. 저희 우주선은 방과 방 간의 통로에서 우주선 붕괴 방지 시스템이 잘 자리잡아 있어요. 붕괴 위험이 있는 방들의 통로에 셔터를 내려둔다면 우주선 내부는 그대로 보존할 수 있을 거예요.”
제임스가 파란 빛이 도는 홀로그램을 몇 번 터치하니 조종기의 모양이던 홀로그램 판이 우주선의 평면도 모양으로 바뀌었다.
“충돌 지점은, 아마 이쯤.”
우주선의 후면. 그곳엔 식량 등 자질구레한 것을 보관하는 창고와 대부분의 엔진들, 엔진 제어실, 의료실, 동면실 등이 자리잡고 있었다. 하나같이 조종실만큼 중요한 우주선의 원소이지만 그럼에도, 제임스는 이를 희생시키는 것이 승무원을 지구로 귀환하게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임을 알고 있었기에 극단적인 선택을 감행할 수밖에 없었다. 제임스가 결심한 듯 단호하게 말했다.
“우현, 도움이 필요해요.”
제임스에게 모든 걸 떠맡길 순 없었다. 나도 그를 돕고 싶었다.
“말만 해요.”
“우선, 로비로 나가 에블린에게 중력을 복구해달라고 요청해줘요. 한수와 제이크와 당신은 동면실에서 동면기를 뜯어 가져와주시고, 나머지 분들에게는 창고에서 최대한 많은 물건들을 로비로 가져오라고 전해줘요.”
“알겠어요!”
“충돌 예측 시간이 14분밖에 남지 않았어요. 5분이 남았을 때 방송할테니 모든 사람과 함께 조종실로 돌아와요. 저는 이곳에 남아 있을 테니까요.”
제임스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제임스는 내게 무언의 눈빛을 보냈다. 신뢰가 담겨 있는 눈동자에 미묘하게 제임스의 불안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그는 베테랑이었다. 무엇보다 그는 우리의 리더였다. 조금은 불안하지만 모두가 살아남을 거라는 확신이 담긴 그의 눈동자를 보다, 나를 안심시키기 위해 억지로 지은 미소를 보았고, 이내 달렸다. 달렸다고 말하기엔 허공에 팔다리만 휘적거리고 있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