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누군가의 누군가"

다음 날 점심시간, 급식을 다 먹은 뒤 교실 안엔 사람이 많이 없었다.
서서히 피곤해질 시간. 누군가는 엎드리고, 누군가는 간식을 먹고, 숙제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방송실에서 틀어주는 점심시간 노래가 흘러나왔다.
나는 가만히 창밖을 보다가, 어느새 정준호와 김시연 쪽으로 시선이 옮겨졌다.

"야, 이거 네가 한 거지?"
김시연이 갑자기 책상 서랍에서 무언가를 꺼내더니,
앞자리 앉아 있는 정준호 책상에 툭 하고 올려놨다.
김시연이 자주 들고다니는 작은 젤리 봉지였다.

"뭐래. 내가 왜."
준호는 당황한 듯 눈썹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표정은 늘 그렇듯 시큰둥했지만, 손끝으로 책상 모서리를 툭툭 두드리고 있었다.

나는 그걸 봤다.

"네가 어제도 내 필통에 젤리 넣었잖아."
"그건 그냥 떨어진 거 아냐?"
"뭐래."
시연이 작게 비웃었다.
"젤리가 어떻게 딱 맞게 내 필통에 떨어져? 심지어 닫았었는데?!"

"모르지? 그걸 왜 나한테 물어! 니 마니또한테나 가서 물어보세요!"
준호는 언성을 높이며 말했다.

"킥. 너 맞구나."
시연은 씨익 웃으면서 말을 던지곤 뒤돌아서 갔고, 준호는 대꾸하지 않았다.
김시연은 웃는 얼굴이었지만, 어쩐지 진심을 숨긴 것처럼 보였다.

그 장면이 그냥 장난 같다가도,
나는 괜히 둘을 다시 떠올리게 됐다.

"근데 진짜로 마니또면 안 들키게 조용히 하지 않냐?"
민규가 옆에서 물어왔다.

"그러게. 누가 저렇게 티내면서 챙겨줘?"
강수현이 이어서 말했다.

"....아닌 척하는 게 더 티나는 걸 수도 있고."
나는 별 뜻 없이 말했지만, 내 말에 민규가 살짝 웃더니
"뭐야~ 너 누구 챙기고 있냐? 누군데?" 하고 놀리듯 물었다.

나는 대답하지 않고, 그냥 고개만 돌렸다.

교실은 별일 없는 것 처럼 조용했지만,
어딘가엔 아주 작은 감정들이 생기고 있었다.
누군가는 들키지 않게,
누군가는 일부러 더 티 내면서.

그리고 나는 오늘도 하윤이를 두세 번쯤 바라봤다.
마니또는 마음을 숨기는 게임이지만,
어쩌면.. 나는 들키고 싶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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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티나지 않게, 들키지 않게"

오늘 수업이 끝나갈 무렵, 종례를 시작하기 전,
나는 슬쩍 가방 안에 손을 넣었다.
오늘도 아침에 사온 작은 과자 하나.
이번엔 음료도 같이.
조금 더 티 안 나게 하려고,
종이봉투에 넣었다.

하윤이 뒷자리였던 준호가 청소 당번이라 창문 쪽을 닦고 있었다.
하윤은 무리 애들과 복도에 나가있었고 하윤이 책상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자리에서 교실을 슬쩍 훑어보다가,
준호에게 가는 척하며 하윤이 자리에 종이봉투를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그리고 아무 일 없다는 듯 문 옆 창문에 기대어
준호와 아무 의미없는 대화를 시작했다.
그 때 하윤이가 교실로 돌아왔다.
나는 준호가 하는 얘기는 한 귀로 듣고 윤서아가 하윤이한테 하는 말은 한 귀로 들었다.

"야 너 진짜 뭐야. 또 뭐야 이거?
너 인기 많나봐?! 오늘도 진짜 마니또 맞지 이거?"

"어, 뭐야?"
하윤이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거 봐봐! 어제는 초콜릿이더니, 이번엔 과자랑 음료까지?
절대 이거 그냥 마니또라서 챙겨주는 건 아닌 거 같은데~ 진짜 누구냐고."

"진짜 모르겠는데... 이 정도면 좀 감동인데? ㅎㅎ"

하윤이는 웃긴 웃었지만, 표정은 진지했다.
나는 그걸 봤다. 손끝으로 음료를 살짝 만지작거리던 손,
입꼬리 근처에 걸린 미묘한 웃음.

아닌 척하면서도 고마운 표정.

그 순간, 민규가 툭 하고 내 어깨를 쳤다.
"야, 이서준. 너 내 말 듣고 있는 거 맞냐?"

"...어? 뭐라고?"

"너 내말 듣고 있었냐고! 뭐 봐?"

"그냥... 아무것도 안 봐.."

나는 창밖을 바라봤다.
겨울 햇살이 유리창 너머로 반짝이고 있었다.
이 계절이 지나면 이 게임도 끝나겠지.
그때까지 난 계속 내 마음을 선물 안에 담을 생각이었다.

티 나지 않게.
들키지 않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