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열리고 내가 세상에 태어날 적,
인연 있는 이들은 붉은 실로
서로를 이어 내린다 하였도다.
그 실은 눈에 보이지 아니하나,
손끝마다 매달려 서로를 잊지 못하게 한다 하였노라.
허나.. 그대여. 내 손을 더듬어도
닿지 아니하는 이 허무는 무엇이 더뇨.
그대의 손길은 내 눈물을 닦아 주었으되,
다른 손끝은 차디찬 검을 놓지 아니하였도다.
이는 마치 따스한 봄볕 속에 숨은 서리와 같으니,
한 손은 살리고 한 손은 죽였도다.
나는 그대의 품을 믿었거늘,
그대의 시선은 끝내 나를 향하지 아니하였으니,
아아, 허망하도다.
빛나던 우리의 날들,
찬란히 흩어져 산산이 부서지고,
이제는 한 줌의 재가 되어 바람에 흘러가 버렸구나.
옛날 하늘에 걸린 별빛도 새벽이 오면 꺼지듯,
저 붉게 타던 기억 또한 어둠에 잠겨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리라.
그대의 고운 얼굴에 흐르는 피를 보노라면,
이는 꽃잎 위에 흩뿌려진 비처럼 덧없고,
내 마음 또한 갈기갈기 찢겨 바람결에
흩날리는 갈대와도 같도다.
허나 이 어리석은 손은 끝내 그 피를 닦고자 하니,
그것이 남은 마지막 인연이요,
꺼져가는 등불의 마지막 불씨이리라.
그대의 입술은 내 상처 난 목소리를 잠시 어루만졌으되,
눈길은 언제나 먼 곳을 향하였노라.
마침내 그대는 나를 남겨 두고 아득히 사라지니,
이는 바다 끝을 향해 떠나는 배와 같고,
남은 나는 물가에 선 그림자일 뿐이었노라.
아아, 붉은 실은 신의 장난이었는가.
손과 손을 이어 주리라던 인연은
칼끝 아래 잘려나가 버렸으니,
그대는 세상에 죽었고, 나는 그대를 잃었노라.
이제는 돌아올 수 없도다.
다시는, 다시는 돌아올 수 없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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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殘照: 잔조
⇒ 저녁 하늘에 남은 빛, 사라져 가는 마지막 빛
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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