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퍽질퍽열병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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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0-05 16:29조회 124댓글 10유건
흙 내음이 코 끝을 아렸다. 불꽃이 피어 오르고 계곡이 찬란하게 흘렀다. 옆에 앉은 개새끼와 손이 자꾸 딯았다. 따뜻하다. 해사하게 웃는 너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질퍽질퍽질퍽질퍽질퍽질퍽질퍽······?

한 여름 밤을 노래해 스텝 바이 스텝····· 몇 번째 노래인지 모르겠다. 이 노래 중독자들. 귀찮았는지 나에게 선곡을 맡기다가 감다뒤라며 폰을 뺏겼다. 아니 내가 하라며···. 억울해 죽겠는 내 표정을 보며 개새끼는 뭐가 그리 좋은지 세상 행복하게 웃었다. 원래 개새끼가 웃으면 나도 웃고 싶어지는데, 그게 사랑이라던데, 울고 싶었어. 숨이 막혔다. 턱 턱.

산책 가자아. 저요저요제발저요. 저 미친 낭만 추구자들. 벌레 천국에서 산책을 하겠다고? 단단히 미쳤다. 질질질···. 아니 나는 왜 끌고 가? 어쩌다 걸스나잇에 끼게 되었다. 아니 전에 사귄 바람남이·· 오늘 올라온 자컨이··· 나도 그나마 개새끼와 5년 우정 -나 홀로 사랑.- 을 다지며 그런 분야에 낄 정도가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끼고 싶다는 뜻을 절대 아니다.- 존나 하나도 못 알아 듣겠다. 시발.

테토남? 아니 도테남이 된 나를 챙겨준 건 다름 아닌 개새끼였다. -이쯤 되면 썸인가 생각하는 게 정상이지만 5년 내내 이지랄로 살았다.- 야두더지니뭐하냐?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개새끼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머리가 지끈거린다. 내 청춘은 어디로 흐르고 있는 건지.


질퍽질퍽열병


하늘에서 별이 쏟아졌다. 선명한 형태는 아니었지만 연약하게 빛나고 있었다. 구름이 모두 떠나간 건지. 내일은 맑은 하늘이 우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개새끼가 나를 돌아 보았다. 나는 나도 모르게 숨을 몰아 쉬었다. 열병에 시달린 이후 셍긴 습관이었다. 개새끼기 그걸 모를 리 없다는 사실도 잊은 채.

- 야 니 아파?

- 어? 아니 나 지금 멀쩡해.

개새끼는 내 말을 무시하고 내 팔을 잡았다. 뜨거운데? 사람 몸은 원래 뜨거워. 병신아. 역시 과학 20점의 지능 수준이다. 존나 처참. 아. 하고 납득한 개새끼는 계속 나에게 아프냐며 물었다. 얼굴이 빨간색인데? 하얗게 질렸는데? 손 떠는데? 심장이 좀 빠르게 뛰는데? -니가 내 가슴에 손을 얹으니까 그렇잖아.- 나는 걸음이 이상하다는 말을 듣고 그냥 맞춰주기로 했다.

- 어 그래, 아프다.

- 역시 내 안목은 틀리지 않았숴.
- 내가 니를 몇 년을 봤는데.
- 어디가 아파. 어디가 아픈데. 어?

마음이 아프다. 마음이. 이렇게 걱정하면 마음이 좋지 않다. 강해 보이고 싶은 하남자같은 이유가 아니라 네가 걱정하는 게 싫어. 네 고민이 하나라도 느는 게 싫고, 네가 별 거 아닌 날 신경 쓰는 게 싫어. 하지만 네가 날 사랑하지 않아서 마음이 아프다고 할 순 없었다. 그럴 용기는 없다. 나는 대충 머리가 아프다고 중얼거렸다. 개새끼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 약은 먹었냐?

- 어 먹었어. 그니까 신경 쓰지 마.

- 아프다는데 신경을 어떻게 안 써.
- 먹었는데 왜 아파.

- 약발 뒤졌나 보지.

그 말을 들은 개새끼는 나를 끌고 펜션으로 돌아간다. 실행력 하나는 존나 대단하다. 개새끼를 보고 있으니 진짜 머리가 아파오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게새끼의 손목을 꾸욱 잡았다. 천천히 가. 내 말을 들은 개새끼는 꼬리 잡힌 푸들처럼 뒤를 돌았다. 눈이 알사탕처럼 동그랗다. 많이 아파? 천천히 가고 있었는데. 라는 개새끼의 말은 귀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반한 게 아니라, 그냥 머리가 아파서.

- 아니 그냥, 뭐.

바보같은 나를 보며 개새끼는 눈이 휘어지게 웃었다. 빨리 가자. 낮은 속닥임에도 나는 휘청이고 쓰러지고 수백번을 그렇게 넘어졌다. 계속 넘어져서 온 몸에 상처가 생겨도 나는 계속 밀리고 엎어졌다. 심장이 떨렸다. 네가 너무 예뻐서. 그런 표정을 하고 내 손을 잡으면 내가 어떻게 반하지 않을 수 있을까. 티내면 여지 주는 걸 멈출까. 멈추겠지. 너는 착한 개니깐. 내 마음을 쥐어 짜고 싶지 않겠지.

멍청하게도, 나는 너를 원하고 있었다.

사랑이 담긴 짓이 아니더라도 나는 그러고 싶었다. 그래야지 내가 살 수 있었다. 너는 나를 수백번 죽이고 다시 살렸다. 구원일까? 나는 너에게 구원 받은 걸까. 나의 구원자. 장마가 정말로 그쳤다. 오늘의 두통 이후로 내년까지 아프지 않겠지. 하지만 여름을 빨랐고,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았다.

새벽 3시의 펜션의 놀랍도록 조용했다. 자기 전까지 다들 미친 것처럼 뛰더니 다같이 방전해버렸다. 나는 그 에너지를 감당 못하고 방으로 먼저 올라왔기 때문에 멀쩡하게 살아 있을 수 있었다. 습관적으로 폰에서 노트앱을 열었다. 보통 개새끼가 추천해준 노래, 개새끼가 가자고 한 식당, 개새끼가 추천한 책··· 그냥 개새끼로 가득했다.

여기에 일기를 쓴 적은 없는데 오늘은 그 비스무리한 글을 적었다. 그래봤자 3줄이지만. 언젠가 개새끼가 이 글을 읽게 될 날이 오리라 확신했다. 그리고 나는 그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옆에서 자는 짐승 새끼 너머로 거울이 있었다. 건조한 내 얼굴이 보였다. 살이 하나도 붙지 않은 볼을 보고 있자니 불편한 기분이 들어 고개를 돌렸다. 지끈. 머리가 아프다.

사끄러운 코고는 소리가 귀를 강타한다. 나는 뭐라도 하자는 심정으로 귀에 이어폰을 꽃았다. 아일 세레나이데 스웰위댄싱나잇··· 뭐라는 거지. 또 이 노래다. 세상이 온통 세레나데다. 사귀었다 해어지고 다시 사귀며 펑펑 우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5년동안 짝사랑 해봤냐고. 니들이 순애를 아냐고. 하지만 내 순애를 알아주는 사람은 없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개새끼도 몰랐다. 내가 이만큼 사랑하는데.

몸을 벌떡 일으켜 가져온 패드를 열었다.


- 으앙 안 일어날래.

- 지금 안 일어나면 이하니 내꺼.

- 진짜 개지랄, 이하니 게이 아니거든?
- 우리이하니는누나바라기라고.

나도 게이 아니야. 라고 해주고 싶었지만 개새끼의 찌푸린 표정을 보며 참았다. 귀여워귀여워. 이하니보다 지가 더 귀여운 걸 모르나 보다. -사실이 아니다. 전지적 짝사랑 콩깍지 시점.- 기만자 같은 개새끼. 이쯤애서 개새끼의 외모를 설명하자면 진갈색 긴 생머리에 사실 그렇게 동그란 편은 아니었다. -객관적으로 예쁘긴 하다. 카리나가 놀아주는 이유가 있지. 하지만 행동이 진짜 개같아서 얼굴이 흐려지는 편이다.- 하지만 개새끼가 두더지가 처음 만난 중딩 시절의 개새끼는 더 동그란 면이 있었기에 두더지의 눈에는 아직 그 시절 개새끼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처음 불구덩이에 빠진 그날과 같이, 여전히,
너는 내 장마에 남아 있었다.
화르륵 화르륵 화르륵 화르륵 화르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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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퇴고 없어요 영원을 사랑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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