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여름이 되고팠다.
한순간 떠오르는, 가슴 한편이 시큰거리는 그런 여름이 되길 바랐다. 쪄 죽을듯한 더위에 허겁지겁 입에 욱여넣은 아이스크림이 머리를 울리는 것처럼, 한순간 행복하다가도 금방 괴롭게 만드는 기억이 되고 싶었다.
너에게 나는 별것도 아니었단 걸 안다. 잠깐 내렸다가 사라지는 소나기처럼, 여름날 길게 내렸다가 돌아오지 않을 장마처럼. 아주 잠깐 신경이 쓰인다 한들 그 잠깐이 지나고 나면 네 기억 속에서 난 이미 지워진 뒤라는 것 또한 아주 잘 안다. 아주 잘 알기에 고통스러웠다.
새삼 느낀 것이 하나 있었다.
너와 나는 사는 세상이 달랐다. 내 세상엔 네가 반을 넘게, 어쩌면 그보다 더 많은 양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네 세상에 나는 없었다. 네 세상은 나의 것보다 더 밝고, 더 시끌벅적했다. 그 속에 내 자리는 당연하게도 없었고, 내 자리 대신 수많은 사람이 너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 그런 네가 부럽다가도, 그 사실에 서러워지곤 했다. 내 작고 초라한 세상엔 네가 다인데, 내 전부인 네 세상엔 내 자리조차 없다는 것이.
그럼에도 난 너에게 모든 것을 주었다. 내 작은 세상 속 작은 너에게 모든 색을, 모든 향을, 모든 기억을 주었다. 내 세상이 흑백이 되더라도, 내 세상이 향기 없는 모란꽃이 되더라도, 내 세상이 오직 너뿐만이 되더라도 네가 웃어준다면 그걸로 족했다. 네가 웃어준 기억으로 나는 살아갈 수 있었다.
너는 너를 닮은 것들을 사랑하더라. 행동 하나하나에 사랑스러움이 배어 나오는 건 모두 네가 사랑하는 것들에 의해 나온 것들이었고, 작은 행동에도 다정함이 묻어나오는 것들 또한 모두 네가 사랑하는 것들에 의해 나온 것들이었다. 네가 사랑하는 것들을 나도 사랑해 보려 했으나, 너와 나 사이엔 아주 길고 굵은 넘을 수 없는 선이 있었기에 네가 사랑하는 것들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네가 아주 사랑스러운 것들을 사랑한다는 것쯤은 쉽게 알 수 있었다.
내가 준 새콤달콤 하나에도 미소 지으며 고맙다 말하는 너는, 내 인사 하나에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는 너는, 가끔 사소하고 시답잖은 이야기를 건네주는 너는. 그런 너는 내 여름이었다. 여름날 벌컥벌컥 급히 들이마셨던 얼음 가득한 레모네이드 같은, 나의 여름. 자연스레 얼굴이 구겨질 만큼 시지만 한 편으로는 달콤하고, 더위가 싹 가실 만큼 시원하지만 한편으로는 머리가 깨질 듯 아픈 그런 여름. 너는 나의 그런 여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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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이 든 여름 - 서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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