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은 악몽으로 가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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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0-04 18:51조회 25댓글 1필견
언제부터인가 밤에 잠들지 못했다.

누운 시간은 늘 정해진 대로 12시. 처음엔 30분, 1시간, 2시간, 그리고 현재 5시간... 분명 피로에 지쳐 쓰러졌는데, 그때부터 정신이 말짱해지더니, 정신의 세계는 파도처럼 밀려와 날 가둬버린다.

그리고 오늘도 쉽게 잠들지 못했다. 세상에 쉬운 게 없다는데 설마 잠드는 것조차 힘들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렇다고 밖으로 나가기엔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날 바닥으로 끌어당긴다. 침대에 누운 육체는 중력에 이끌려 납덩이가 됐다. 뇌와 연결된 수많은 신경이 갑자기 TV가 퍽소리를 내며 끊기듯,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만 같이 아슬아슬 유지되고 있다.

‘내일은또 몇 시에 일어날까? 해는 떠 있을까? 아니면 또 밤일까?’

등에서 식은땀이 났다. 안색이 창백해지는걸 느꼈다. 초조해져 갔다.

순간, 느닷없이 어둠이 무서워졌다.

‘어쩌면 내일 눈을 뜨지 못할 수도 있겠다. 마음 의준비는 해둬야 하는 걸까? 가족들에겐 말 한마디도 남기지 못했는데, 아직 보지 못한 영화가 많은데...’

잡념은 비의 가시처럼 쏟아져 나를 물들이길 멈추지 않았다. 사고가 무너졌고, 파편은 사막의 모래처럼 요동치며 흩날렸다. 목이 막혀 신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이럴 땐 옳은 걸 분간하기 어렵다. 나는 어딘가로 손을 뻗으려 애썼다. 하지만 몸뚱이 중 유달리 비약한 팔은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휴대폰을 보고 싶지 않았다. 지식보단 뇌파를자극하는 요소들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또 뇌는 더 자극적인 걸 원하게 된다. 답답한 이 조바심을 달래줄 마약 같은 사건들. 그것들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등바등했다. 문득 전두엽이 아파졌다. 눈은 침침했고, 눈꺼풀은 쓰라리고 무거웠다. 폐로 깊어진 숨이 내 상태를 조롱한다. 침대의 뿌리가 나를 양분 삼아 생명을 연장하는 것 같다. 그런 기간이 모두 끝나고 내일 눈뜨면 관 속에 있을 것 같은 기분에 빠져들었다. 그래서 지금은 이 순간이 빨리 끝나길 바랐다.

똑바로 누운 몸의 허리뼈가 바스러질 듯 시려와, 몸을 한번 뒤척였다. 무릎과 무릎이 닿은 뼈가 그리고 골반에 지속적인 통증이 발생했다. 그 재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을 여러 차례 뒤척인다. 육신은 낡아져만 갔고, 고통은 삶을 동반한다. 낡아서 더 빠르게 소모되는 몸뚱아리를 다시 길들이기 위해선, 휠씬 큰 노력의 기다림이 필요하다. 그건, 내일은 똑바로 살자 다짐해도 지금의 삶을 끊어내고 습관을 들이지 않는 한 불가능에 가깝다. 머리로는 수십 번도 더 알고 있는 것들이지만, 다음 날이 되면 까맣게 잊고, 밤에 다시 떠올리기를 반복한다. 그러다 눈치채면, 이 어긋나 버린 찰나에 길들어 있다. 마치 환각에 걸린 것 같다. 그럼 그제야 그것들이 나와 같은 공간에 있다는 걸 인식한다. 거북했지만 나는 그것을 좇을 수 없다. 그래도 사람으로서의 미련스러움 때문에 악수하진 않는다. 많은 것이 예전과 또 달라졌다. 어리지 않은 숫자만큼 더는 행복이나 불행이나 운명같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위해 나를 소비하지 않는다. 한편으론 세속적으로 되어 움츠러들고 있는 것이고, 다른 한편으론 점점 수동적이고 메말라 가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만족했다. 정신론은 과거면 충분하다. 그래서 낡은 것들을 속아내고 버리기를 반복했다. 여기엔 사람 관계도 포함되어 있다. 어차피 스스러웠다. 그럼 나에게 진짜 필요한 것들을 찾고 또 찾는다. 그러면 틀어막혀버린 나의 어리석음을 꾸짖고 가엾어 할 수 있는 건 무엇인가? 불평은 또 침묵을 낳았다. 답을 알고 있지만, 그걸 택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애초에 사색이란 건 있는 것들의 사치이다. 지금까지 이에 대해 비난을 하는 사람은 아직 가장 밑바닥까지 가본 적이 없는 존재들뿐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그걸 향유라 이름을 붙이고 소비로서 유혹하며 빼앗아 가기를 얼마나 반복해왔는지 모른다. 하지만 인제 와서 비판한다고 뭐가 달라질까? 결국 내게 필요한 건돈인데...

심경이 부족한 지식으로 과열되어 서로 자기가 잘났다고 떠드는 꼴을 보자 하니, 애써 감춘 근심이 갑갑함을 못 이기고 이부자리를 벗어나 커튼을 젖히고 봉쇄한 창을 열었다. 달도 없는데, 해는 아직 들지 않았다. 바람이 슬쩍 아카시아 향을 선물로 들고 흘러들어왔다. 추위가 가시고 아주 따뜻해진 걸 보니 5월이 다 되었다. 봄바람에 현기증이 나서였을까? 창밖 세계가 어쩐지 많이 낯설게 느껴졌다. 이 시간엔 불빛을 머금은 집이 없다.

더 깊게 관찰한다. 낯선 고요함에 열기가 점잖게 가라앉았다. 이상했다. 가령 무슨 일이라도 벌어진다면, 그걸 누군가 목격하는 건 내일이나 될 것이다. 운좋아서 바로 눈에 핀다고 하더라도 사람이 경험할 충격에 온갖 잡다한 신경이 다다른다. 타인이지만 사람으로 귀결되니까. 아픔은 잔잔히 퍼져나가기 마련이다. 그럴때면 나는 가장 사랑하는 이들의 슬픈얼굴을 떠올린다. 그럼 적극성도 이내 가라앉는다. 저 차가운 땅바닥을 나의 피로 따뜻하게 적신들 그게 얼마나 갈까? 살아있는 것들은 차라리 꾸지람을 듣고 하루를 사는 게 더 이득이다. 삶에 이익 만을 따지는 게 분명 좋은 일은 아니겠지만, 맛이 가버려 판단조차 불가한 사회의 이성이란 무릇 그런 거니까. 배고픔에 사활을 걸다 보면 인간의 탈을 쓸 필요가 없다는 걸 알게 된다. 그때부턴 시나브로 양심이 깎아지며 잔인함과 마 주하고 후회하고 패배를 외면하려 버둥거리다가 끝엔 타협한다. 하지만 나쁜 건 아니다. 사실 그런 게 있었던가?

다시 침묵한다. 이럴 땐 내가 혼자인 걸 다행이라 여긴다. 시대가 나아졌다면, 그래. 왜 날 이대로 내버려 두는가? 약에 손을 뻗으려다 관둔다. 뇌세포가 파괴될 공포 때문이다. 산송장으로 늙는다는 건 으레 그렇다. 내가 없다.

갑자기 서러웠다. 감정이 북받쳐서 눈물이 핑 돌고 그런 건 아니다. 체면치레할 정도의 존중은 어떻게든 남겨둔다. 그래도 이건 잘했다. 살짝 조소를 띄어 자기를 칭찬하다가 다시 관두었다. 누가 어찌 보면 미쳤다고도 할 수 있지만, 알다시피 나는 혼자다. 이건 그냥 허무하기 때문이라 애써 변명한다. 깨어있는 건 줄곧 부러움을 낳았다. 그리고 또 하나를 새겨졌다. 이젠 놀랍지도 않다.

이윽고, 창밖이 푸르게 변하는 걸 목격할 때 즈음 나는 다시 이불로 도망갔다. 밤이 햇빛에 파스텔로 물들어 가는 모습은 날 계몽할 무언가다. 그럼 때가 5시 즈음이 된 걸 감각으로 알 수 있다. 천지가 개벽할 시간에 잠이 밀려들고, 마음이 술렁인다. 적막을 깨고 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들린다. 커튼콜의 단 하나의 박수 소리. 타이밍이 늦은 걸 보니 오감이 제대로 발휘되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다시 촉각을 곤두세울 일은 아니다. 그렇게까지 문제 아닌 문제에 신경쓰다 보면, 정녕 원하는 일에 의욕이 떨어져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하기 마련이다. 흥미란 그런 것이다. 올바른 방향대로 나아가는 것과 다르게 우릴 쉽게 휘두른다. 그래서 아둔하게도 깨 어져 있는 것이겠지. 하지만 이제 슬슬 세상과 잠시 작별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의사가 필수라고 말하는 하루 중 7~8시간. 물론 꿈속에선 그 정도의 시간은 아니다. 더 빠르고 그래서 더 허망하다. 다시 현실로 오면 잊힐 것들을 위 해 8시간을 소비한다는 건 부조리함의 비극이지만, 그래도 눈을 감는다.

어둠이 다시 내게로 온다. 이 어둠은 밤과는 다른 사유의 세속이다. 환영 인사는 없지만, 조금 우스광스러울지라도 축복할 순 있다. 꿈을 꾸지 않는 게 좋다고는 하지만, 그 정도 위로가 있기에 떠돌 수 있는 이도 있다. 이건 어디까지나의 학적인 접근, 과학적인 접근, 이성적인 접근들이 아니기에 상상하다 보면 결국 사람을 위로하는 건 애달픈 허상뿐이란 결론에 이른다. 그런데도, 그건 내게 아무리 변했어도 변하지 않는 어수룩함이며, 꼭꼭 담아둬야 하는 서글픈 양식이다. 잘 설명할 수 없어 얼버무리고야 말았기에 더 그러했다. 왜냐하면, 오늘날 내게 가장 중요한 건 돈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얼마의 시간이 지나, 눈꺼풀에 햇빛이 와닿았다. 커튼을 다시 원상복구 시키는 걸 까먹었지만 상관없다. 실로 노곤해졌다. 살아났다는 환희의 슬픔과 갈피를 잡지 못한 고독의 기쁨이 서로를 부르잦으며 애무한다. 손가락, 발가락 마디마디의 인식이 사라져 간다. 그럼 미적지근한 몸은 부유하고, 히스테릭한 머릿속 이백지가 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 늘어진 의식이 멀어져 간다.

그리하여, 오롯이 꿈이 자유의 손길로 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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