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위에 떠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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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01 14:30조회 89댓글 3세리아
커다란 등대가 바닷물을 비추니 달빛조차 보이지 않는 흑해에 하얀 윤슬이 아른거렸다. 심해까지 닿지 못한 등광은 바다 표면에서만 산란되어 푸른 빛을 냈다. 빛이 닿지 않는 어둠의 경계에서 세상과 심해는 조우했다. 모든 색을 삼킨 것처럼 검은 심해의 빛과 바다 표면에서 산란된 푸른 빛이 절묘하게 뒤섞여 바다는 짙은 코발트블루를 띤다.

항상 그랬듯이 고요한 반복으로 등광은 느릿하게 회전하며 바다를 훑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빛 속에 밀려온 거대한 그림자가 물결 따라 흔들리며 제 몸을 길게 드리우기 시작했다. 빛은 직진하니 그림자가 생겼다면 어떤 방해물이 있단 뜻이었다. 자세히 보니 어느 작은 쓰레기 같은 것이 등광에 어렴풋이 비춰지고 있었다.

난 등대 꼭대기 층으로 올라가 망원경을 들고 그 물체를 향해 영점 조절했다. 초점이 점차 선명해질수록 그 선형이 자세하게 드러난다. 해양생물이나 단순한 해양 쓰레기 같은 물건일 거라는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뒤집어졌다.

물가에 사람 형상이 떠내려오고 있었다.

시체가 떠다니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흔하진 않지만 사람의 경우도 몇 있었다. 해풍이 불고 있으니 시체는 뭍으로 흘러들어오고 있는 상태였다. 난 그대로 그 시체를 바라보고만 있다가 다시 해변으로 내려가 작은 천막 아래서 잠을 청했다. 만약 시체라면 내일 아침 일어났을 때 그대로 바다로 떠내려가있거나 해변으로 쓸려와있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게 뭐든 내 상관은 아니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본 건 해변가에 멀쩡히 서 있는 사람 한 명이었다. 시체인 줄로만 알았던 사람이 바다에 둥둥 떠선 죽지도 않고 해변까지 산 채로 떠밀려왔다는 건 제정신으론 도무지 믿기 힘든 사실이었다.

처음 들었던 생각은 물리적으로 그게 가능한가 하는 의문. 그 다음으로는 이 지독한 땅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이. 그제야 뒤늦게 찾아온 건, 처음 발견한 ‘사람’이란 동족의 친밀감이었다.

난 그간 품어온 외로움은 완전히 잊은 채 해변가를 달려나가 한껏 기대를 품고 그 뒷모습을 손으로 툭툭 쳤다. 그 사람은 뒤돌아 날 바라보더니 상기된 목소리로 물어왔다.

ここがどこか、ご存知ですか?

그건 난생 처음 듣는 언어였다. 한국어로 대답하니 그 사람도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우린 서로 해석할 수 없는 언어로 갈등하다 결국 중간점을 찾았다.

난 손으로 섬을 그리고 사람 두 명을 흉내낸다.

바닷물은 해수면을 높여 섬을 삼키고 사람들은 바다를 헤엄쳐 다른 대륙으로 살아나간다.

고민하던 그 사람은 배 모양을 손으로 그린다. 그런 게 있었으면 진작 도전했지. 이 섬에는 그 흔한 나무 하나 없었다. 엑스자 표시를 그렸다. 난 그 사람에게 수영하는 모션을 취했다. 여기까지 죽지 않고 떠내려온 것이라면 수영 정도는 당연히 할 줄 알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사람은 고개를 저었다.

泳げません。

그 사람은 수영 할 줄 몰랐다.

해수면은 하루하루 지날수록 눈에 띄게 차올랐다. 세상은 물바다로 죽어갔고 남은 건 작은 섬들이 전부. 뭍이 전부 바닷물로 덮이고 임시 천막마저 쓸려나갔을 때 우린 등대 꼭대기 층으로 올라갔다. 작은 등대는 깜빡거리며 죽어가는 불빛을 반짝. 바닷물은 코발트 블루와 반타 블랙을 오간다.

챙겨온 식량은 영원하지 않고 바닷물은 언젠가 등대마저 덮치겠지.

잠에서 깬 어느 새벽 그 사람은 멍하니 바닷물을 바라보다 날 툭툭 치곤 허공에서 팔을 휘저었다. 수영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어색한 몸짓. 난 그냥 피식 웃고 말았다.

ここへ来られたのは、私自身も知らない私の泳ぎの能力のおかげかもしれません。

그리곤 고개를 끄덕인다. 그 언어는 전혀 할 줄 모르지만 왠지 결의 같은 것이 느껴져서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 뛰어들려고?

등대 아래로 손짓하니 그가 동그란 표식을 그렸다.

어쩌면 우린 헤엄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등대는 바다를 비추고 그 사람은 그 불빛 속으로 천천히 기어들어간다. 하찮은 몸짓으로 천천히 어딘가를 향한다.

왜 그렇게 웃고 있는 거야.

점점 바다 깊은 곳으로 가라앉고 있잖아.





코발트블루 바닷빛이 아른아른.

물 위에 떠있는 것이
난지, なんじ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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