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이에요!! 기억하실 리는 없겠지만 앞으로 활동 열심히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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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EOVV - TOXIC
기말 D–4.
교실의 칠판에 적혀 있는 그 글자들이 마음속에 닻을 내린 듯 무겁게 가라앉았다. 모두 얼굴이 어두운 것이 학원의 다른 아이들도 나와 같아보였다. 나는 문득 그 애를 보았다. 학원에서 준비한 기말 예상 문제집이 어려웠는지 머리를 감싸쥐고 있었다. 대신 풀어주고 싶었다. 이런 생각들을 남몰래 간직해온지도 벌써 몇 달이 지났다. 나와 달리 그 애는 내 머릿속을 떠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벽시계의 초침은 빠르게 움직였고 나는 그것들을 놓치지 않고 눈에 담았다. 내가 기다리는 시각은 8시 30분 00초였고, 지금 시각은 8시 29분 46초, 47초, 48초...
마침내 8시 30분 00초. 쉬는 시간이었다.
나만이 30분을 기다린 것은 당연히 아니었다. 8시 30분이 되자 아이들은 마치 짜기라도 한 듯 모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애들이 달려간 곳은 창문이었다. 일기예보에 오늘 첫눈이 내릴 거라 나와있던 탓이었다. 가장 처음 창가로 달려갔던 아이가 창문 너머의 세상을 보고는 소리쳤다. 눈 내린다!
***
그 다음부터는 너나할 것 없이 다들 학원 건물 밖으로 뛰쳐나갔다. 보통 첫눈은 조금만 내리던데, 이번엔 아니었다. 꼭 마지막인 것처럼 펑펑 내렸다. 나도 모르겠다. 첫눈을 보니 왜 그렇게 신이 났는지. 꼭 어렸을 때로 돌아간 것처럼 그랬다.
여기 있는 얘는 눈을 뭉쳐서 눈사람을 만들었고, 저기 있는 쟤는 눈을 뭉쳐서 얘를 공격했다. 그럼 얘는 하던 공예를 그만두고 쟤에게 반격을 날렸다. 끼어들 체력은 없었기에 나는 그냥 벤치에 우두커니 앉아 그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고 있자니 꼭 내가 애들의 보호자라도 된 느낌이었다.
그 애 역시 자기 손바닥보다 조금 큰 크기로 눈을 뭉쳐 다른 애들에게 던지고 있었다. 그 모습들이 이상하게 평화로웠다. 분명 싸움인데도.
추위에 코랑 귀가 빨개졌는데도 학원에 다시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학원은 히터 때문에 따뜻하겠지만 여전히 싸늘할 것이다. 이곳만이 따스했다.
지금의 흔적을 너무 남기고 싶었다. 책을 읽던 중 마음을 파고드는 문장에 형광펜으로 밑줄을 직직 그어놓는 것처럼. 이 순간이 책이라면 얼룩덜룩해지도록 이 페이지를 칠해놨을텐데. 그런 생각이 들자 나는 홀린 듯 핸드폰을 꺼냈다. 가장 빠르고 명확한 방법이었다. 찍으면 가장 예쁘게 나올 법한 곳으로 핸드폰 카메라를 요리조리 돌리며 뛰어다녔다. 그 모습을 본 내 친구가 내게 사진을 보여달라며 다가왔다. 사진을 본 친구는 진짜 잘 찍었다며 나를 요란스레 칭찬했다. 그 소리를 듣고 그 애가 다가왔다.
***
잘 찍었는데?
그 애가 그렇게 말하며 휴대폰 액정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어쩐지 부끄러운 맘이 들었다. 그냥 대충 찍은 건데, 조금 더 잘 나온 사진을 보여줄 걸 그랬나.
그 애는 내 사진을 보았고 나는 그 애를 봤다. 심장이 자꾸만 진동해서 그 애를 쳐다보는 것조차 고역이었다. 몇번을 포기하려고 했던 마음은 눈처럼 펑펑 내렸고 이제는 잠겨 죽을 것 같았다. 그 애를 좋아한다던 친구의 메세지가 자꾸만 떠올라 미칠 것 같았다. 이건 폭설이었다. 그만 내리라고, 다 녹아버리길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래왔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리고 또 사랑스러운 첫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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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 바탕
큐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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