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채꽃밭 어딘가에 있을 너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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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8-31 01:21조회 38댓글 1유하계
지직, 지지직...

- 난 다시 태어나면 꽃으로 태어나고 싶어.

"...뜬금없네."

나지막이 내뱉은 말.
노을 빛에 아름답게 빛나는 해영의 눈과 오똑한 코가 아름답다. 그런 해영을 이진은 가만히 바라보다 특유의 나긋나긋한 어조로 말한다.

- 꽃은 다들 예쁘다고 여기잖아.
다음 생에서라도 예쁘단 소리 듣고 싶어.

너도 못생기진 않았는데. 라고 말하려다 되려 삼킨다. 해영은 화제를 돌리려 해보았지만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대화의 주제가 떠오르지 않았기에, 가만히 이진의 눈치를 볼 뿐이다. 그 때 이진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 너는 무슨 꽃 좋아해?

"유채꽃."

돌아온 대답은 단답. 이진의 생긋 웃는 소리가 귀를 찌른다. 다시금 치직이는 소리가 진해진다. 치지직거리는 소리가 들려올 때면 해영은 옆에 앉아있을 이진을 바라보려다, 이내 시선을 거둔다.

- 그럼 나 다음 생엔 그 꽃으로 태어날래. 너가 나 찾아와줘야 된다?

"그래서, 유채꽃은 됐냐?"

해영의 눈 앞엔 유채꽃밭이 펼쳐져있다. 다시 지직거리는 기계음이 울리더니, 쿠당탕하는 소리와 함께 고장난 기계처럼 휴대폰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다. 해영은 조용히 휴대폰을 집어들곤 녹음본을 멈춘다. 해영의 옆엔 언제나 웃어주고 있어야 할, 유채꽃을 보며 어린 아이처럼 미소짓고 있어야 할, 이진이 없다.

해영은 그렁그렁한 눈을 쓱 닦고, 떨리는 목소리로 혼잣말하듯 말한다. 덤덤한 어조이다.

"이 중에 널 어떻게 찾아. 마지막까지 귀찮게 한다, 너도 참. ...아씨."

짜증나게도 눈물이 흐른다. 함께 한 세월이 얼마인데 이렇게 매정하게 자신을 버리고 제 손으로 떠나버린건지, 그럴거면 왜 녹음본은 남겨둔건지, 녹음본 이름은 왜 또 하필 좋아해인건지. 궁금한 것들 투성이에다 이진에게 전하고 싶은 얘기도 많은데 이제 더 이상 해영의 이야길 들어줄 이진은 없다.

"최이진. 듣고 있냐? 미안해서 어떡하냐, ...친구로서 진짜 고마웠어. 자주 올게. 나중에 또 봐."

언제나 하굣길 헤어질 때면 하곤 했던 말.

"내일... 보자."

머뭇거리며 전한 내일 보자는 말은, 이진에게 들릴리 없다.

___

몇 년쯤 지났을까.
고작 한 여름밤의 달콤한 추억으로 남은 내 16살의 아른거리는 우정의 주인공의 얼굴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그간 새로운 여자들을 많이도 만나고 헤어졌다. 모두 다 그다지 매력적이라고 느낀 사람은 없었다. 일도 나름대로 열심히 했고, 내 주제에 꽤나 괜찮은 대학을 나왔다. 그런 내가 돌연 교통사고로 죽을 줄이야. 것도 음주운전자 차량한테. 억울해 죽겠는데 눈 앞에 그림자가 드리운다.

어쩌면 내가 그토록 보고싶었던 얼굴. 계속 기다려왔던 얼굴이였을지도 모른다. 내 눈 앞에는, 온통 새까만 옷을 입은 최이진이 있다. 그리고 우습게도, 난 그 애의 얼굴을 보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승사자는 죽은 자가 미련을 가지지 않도록 생전 가장 좋아했던 사람의 얼굴로 찾아온다.'

"...나 너 좋아했구나."

비가 추적이는 씁쓸하면서도 끈적이는 여름 날, 나는 도로 한가운데 피 웅덩이에서 너와 눈을 마주쳤다. 그게 너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그 얼굴이 좀 반가웠다.

___

ep.13

By. 유하계
새벽에 즉흥적으로 쓴 글...
갑자기 날라가서 두 번 썼어요

큐리어스: https://curious.quizby.me/Yu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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