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앉은 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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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0-09 12:27조회 54댓글 1해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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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에 잔잔한 바람이 스쳤다. 온 세상이 잠든 것처럼 고요한 온기, 그것이 가라앉은 것만 같았다. 떠들썩한 시간을 지나고 나서야 담담한 파도를 맞이하는 듯 스치는 바람 소리가 전부였다.

갈 곳 없이 배회하며 걸었다. 터벅, 터벅. 고요한 분위기를 내젓는 발소리가 적막을 가득 채웠다. 나는 이 분위기에 익숙해지려 침묵을 지켰고, 주변의 소리는 더욱 커진 것 같았다. 근처 어딘가에 자리 잡고 있을 바다 속 맞부딪힌 파도 소리가, 바람에 잔잔하게 흔들리는 풀잎의 냄새가. 올곧은 방향에 나를 향하고 있었다.

도착한 곳은 풍겼던 냄새의 근원지, 녹색빛이 감도는 들판이었다. 쉽게 다닐 수 있는 곳이지만, 찾은 이유를 묻는다면 그것에 답할 만큼이나 뛰어난 정답을 생각해두지 않아 내놓지 못할 것이었다. 그저 본능에 이끌린 들판을 찾은 것이었고, 저 나무는 한결같게도 거대하게 자리 잡고 있었으니. 햇빛과 공명하여 흐르는 빛의 물결이 눈에 띄었다.

그 들판에 앉고 나니 고요한 세상이 훤하게 보였다. 적막, 그리고 아무 것도 없는 듯 공허를 걷는 듯한 느낌. 익숙해지려 해도 시도의 성취감을 얻을 순 없었다. 주변을 떠도는 공기가 무슨 소용이냐며 떠들썩하게 가득 채우는 많은 목소리들은 내 귓속에서 한없이 맴돌았다. 더 이상 얻지 못할 것을 찾는 듯, 남긴 미련을 반복적으로 재생하듯.

옆을 둘러보니 예측할 수 없을 시간동안 이 자리에 있었을 벚꽃잎 하나가 놓여 있었다. 주변은 온통 녹색 염료로 덮인 듯 하나의 색깔인데도, 저 벚꽃잎 혼자 고유의 모습으로 내 눈에 띄었으니.

- 너도 고요한 이 곳에 혼자구나.

벚꽃잎을 조심스레 손에 올렸다. 지금껏 보았던 벚꽃잎들과의 차이점은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흔하디 흔한 꽃잎, 그럼에도 지금 이 순간 속에서는 여운 깊게 남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간 끝에 바람이 불어왔다. 그것이 손을 스치고 곧이어 그 바람은 벚꽃잎에 닿았다. 나는 살랑살랑 불던 공기에 꽃잎을 실었고 그것은 바람을 따라 날았다.

- 바람 속에서라도 자유롭게.

혼잣말을 작게 중얼거리며 떠나가는 그 모습만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고요한 바람 속 날아드는 꽃잎, 바라보며 이 세상의 생각에 다시 한번 잠기기에 충분했다.

나는 몸을 일으켜 언덕을 내려갔다. 녹색 들판을 지나치고, 여러 생각에 잠긴 채. 세상은 여전히 고요했지만 오늘도 하루를 보낼 뿐이었다. 그 이상의 거창한 이유 따위 없었고, 이 나날들은 영원해도 좋을 것 같았다.

_ 고요한 세상의 싱그러움은 여전히 입 안에 맴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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