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0-08 21:55•조회 31•댓글 2•Garri
비리의 처음은 늘 사소하고 조잡한 이야기로 시작 된다. 자신이 악마인 걸 보자 마자 드러내는 일은 악당인 강자들 입장에서도 리스크가 크다. 영웅한테 당할 위험도 높고, 일단은 자신이 평범하고 순진무구한(그러나 돈은 많은) 약자와 강자의 중간선임을 알려야 한다. 그러고 나면, 일부 사람들은 이 존재를 더 이상 악이 아닌 도울 수 있고 도움 받을 수 있는 존재로 보게 된다. 이 때를 틈 타서 거래를 제안한다. 네 놈이 나의 범행들을 치워 주기만 하면 나는 네 놈이 갈망하고 있을 돈을 주도록 하지, 악당의 제안은 달콤하다. 악당은 정의가 갈망하지 않는 걸 현실이 갈망하는 것과 거래하자고 한다. 돈은 재력을 부르고, 재력은 힘을 부른다. 내가 강자가 되가면서 알게 된 사실은, 강자에게 필요한 건 정의가 아닌 재력이라는 건데, 이 재력을 충족 시킬 존재가 내 눈앞에 있다는 사실인 거다. 강자들은 돈이 많다. 그 돈으로 사치를 부리든, 부패를 저지르든, 사회를 조작하든, 정치에 관여하든,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그저 저 사람처럼 나도 성공하면 될 뿐이지, 나도 저 사람처럼 돈 많으면 될 뿐이지, 다. 이 제안은 매우 솔깃하다. 경찰이나, 시민이나, 모두 같은 인간인데 경찰이 어떻게 더 절제력 있나. 군인이면, 나라를 위해 자신의 몸을 쉽사리 바치는 존재인가? 의사라면, 환자의 건강과 의학 발전을 위해 본인의 사익을 포기할 수 있는 존재인가? 그 반대다. 자신의 목적인 목숨, 권력, 성공, 영향력, 돈을 위하여 일을 하는 데 그 일의 숭고한 목적은 그와 반대 되는 희생정신, 정직, 도덕, 사랑, 정의인 것이다. 그렇기에, 나 또한 이 악당의 제안에 수락이라는 답을 하거 싶었다. 예, 예, 예, 예, 맞아요, 제가 바로 그 희대의 부도덕한 부패 경찰입니다, 제가 당신이 질러 버린 한여름 밤의 실수(고객님은 범행이 아닌 실수를 저지른다)를 치워 드리고 다시 가족 앞에 떳떳해지도록 하겠습니다(가족이 있다면), 돈만 주세요, 당신에게 명예와 생존을 드릴게요, 내가 수락한다.
그때가 바로 나의 죄악이 걸음마를 때던 때이다. 악당에게 당하던 약자는 곧 약자의 언어를 짓이기고 강자를 띄워 주는 또다른 악당이 되어 버렸다. 내가 걷는 길마다 핏자국이 난다면, 이는 내가 자른 약자들의 혀와 정의의 심장에서 나온 피일 테다. 뜨거운 피를 식히기 위하여 바람이 나오는 신발이 생기면 참 좋겠다. 뜨거워서 신발이 닳을 것만 같으니까. 내가 죽인 인간의 정의가, 윤리가, 도덕이, 나에게 위협을 가할까봐 두려우니까. 내가 밟은 길마다 약자의 시체가 놓여져 있는데, 내 구두의 굽은 강하기에 그들을 제대로 뭉개고 있다. 나는 약자였다. 아버지에게 대항조차 하지 못하고 숨 죽여서 고통의 시간이 끝나기를 기다리던, 무언가를 가리려는 듯 소매가 유난히 긴 옷을 입던, 보드카 병만 보면 동공이 커지면서 보드카 병으로부터 도망치려하다 넘어지던, 겨울에 많이 보이고 봄에는 잘 못 보던 소년은 결코 강자가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약자다”라는 표현은 틀렸다. 모든 사치스러운 상점들이 VIP로 삼고, 경찰서에서 보기만 해도 허리를 궆이고 무릎을 꿇어야 하며, 말 한 마디로 모든 더럽고 천박한 인간의 본성이 난무하는 범행들을 단숨에 어쩌다 난 사고 1으로 위장하기도 하는, 원한다면 더럽고, 죄질이 나쁘고, 반성의 기미가 안 보이고, 사람이 죽는 일에 대하여 무감각하며, 부도덕적임과 도덕적임을 구분하는 데 문제가 있지만, 돈 하나는 많은 이를 선량하게 바꾸고, 또 원한다면 매사에 성실하고, 사회에 기여하고, 정직하고, 도덕적이며, 실수를 저질러도 바로잡으려 하고, 자신이 한 사소한 실수에 반성하며, 저지른 범죄라고는 어린 시절 동생에게 내뱉은 잡다한 욕설들이 전부인 청년을 앞의 부도덕한 인간으로 탈바꿈할 수 있는 인간은 약자가 아니였다. 나는 악행을 방관하는 일이 특기인 뒤에 서 있는 악당이었다. 뒤에서 모든 일이 벌어지는 걸 관찰하고 방관하고 돈으로 심판하는 인간이었다. 강자이다. 강자일 테다. 강자일 것이다. 강자로 지낼 것이다. 지금처럼, 앞으로, 여전히, 계속. 내 돈과 힘이 남아나는 이상, 나는 강자일 것이다.
내 첫 고객의 이름은 이반 로마노프였다. 이반은 조직 폭력배였는데, 스스로는 스스로가 넘버 원이 비밀스럽게 총애하는 그림자 넘버 투라고 자부하였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가 스스로에 대한 사치와 허풍을 떨어대어도, 그가 조직의 광대 인형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음을. 그는 사실 조직에서 바지 사장처럼 앉혀 놓고 범죄를 저지르게 하는 것이다. 힘이 과시 되지는 않지만, 손이 더럽혀 지고 죄질 나쁘다고 여겨지고 걸렸을 때 제일 검사에게 유리한 범죄들은 전부 이반에게로 간다. 검사를 위한 범죄의 뷔페는 이반에게로 간다. 이반은 검사를 위하여 자신의 살이 되어 버린 범행들을 몸에서 끊어낼 것이다. 그 범행은 살인(한 건 뿐이었는데, 이는 존속 살인으로, 제 아버지였다. 나는 아버지에게 당한 것이 많기에 정상적인 부성애를 생각하지 않고 그의 범죄를 눈 감아 주었다), 시체 유기 및 시체 훼손(10건은 족히 넘었다), 폭행(개수가 기억 나지는 않는데, 한 번은 일방으로, 나머지는 쌍방으로 폭행을 하였다), 등이 있었다. 그외의 것들은 내가 빠르게 눈 감아 주었기에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가 말했던 내용들을 빼 주기가 제법 힘들었기에, 기억하는 것이다. 고통은 여전히 기억이 난다. 그 난잡함과 의심과 의문과 불편함과 더 이상 범죄에서 나올 수 없다는 자괴감과 정직하지 못하다는 양심의 가책과 다시 경찰로 돌아와 그를 빼주기 위한 혼신의 연기와 뻔뻔함이 나와 동료들의 땀 한 방울에 섞여서 사건을 간단히 기록해 둔 종이에 부딪혔다.
이반 로마노프의 부모는 돈이 많았다. 이반의 말로 이반이 죽인 이반의 아버지께서는 투자를 취미로 둔 말단 은행원으로 소박하게 살아가셨는데, 자동차 산업에 거액을 투자하신 뒤, 어마어마한 돈을 벌고 졸부가 되셨다. 졸부인 만큼, 다른 부자들처럼 행동하지 못하고 어딘가 서민적인 행세를 하셨다고 한다. 그래서, 다른 부자들보다는 주변 이웃들이나 가족에 더 신경을 썼다. 가족을 사육하는 데 신경를 많이 썼다고도 덧붙였다. 그만큼, 자신의 멋대로 행동하는 아들을 억압하고 자유로 떠나는 아들을 포획하는 데 큰 신경을 쓰셨다고 이반은 틱틱 대면서 말하였다. 이반과 제법 친해진 듯하여, 자신감이 붙은 나는 내 이야기를 하였다. 숫자에 관심을 보이는 이반을 위해 내가 맞은 멍의 횟수와 어머니가 마신 보드카의 횟수와 내가 소매를 걷지 못하야 흘렸던 땀의 횟수를 말해 주고 싶었지만, 정확한 횟수가 기억이 안 났다. 그래서 그저 사건들을 뭉텅 뭉텅 잘라내어 말하였다. 이반은 내 이야기에 대하여 신경을 끄고 다시 제 아버지를 죽인 일은 자유를 찾는 새의 비상이었다고 스스로의 행동을 정당화하였다. 이반은 자신이 죽인 아버지의 돈으로 여유롭게 살아갈 수 있었지만, 이반이 아버지를 죽일 정도의 패기로 한 짓은 조직 폭력배가 되는 일이었다. 조직 폭력배는 이반의 눈에서는 자유이자 영광이자 영예이자 명예였다. 훗날, 손자에게 보여줄 수 있는 표창과 같은. 이반은 아버지의 돈을 내게 건내 주면서 내게 뒷처리를 부탁하였고, 나는 당연히 뒷처리를 하였다. 사실상, 약자에서 강자가 된 이반의 아버지가 일궈 놓은 모든 돈들의 대다수가 그처럼 약자에서 강자가 된 내게로 가고 있는 셈이다.
나는 비리 경찰로서 일을 괜찮게 하였다. 내가 근무 중인 곳은 범죄가 유난히 많은 도시였고, 경찰을 중 제일 뒤를 잘 봐주는 이는 나 뿐이었다. 나는 그 누구보다 태연하게 동료들의 의심을 재우고, 처리하고, 선량한 시민이 범죄자일 증거를 찾고, 범죄자가 선량한 시민일 증거를 찾는 데 능숙하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일을 처리하기 힘들었다.
“내가 사람을 다른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죽여 버렸다”
“……”
“이번에도 뒷처리가 가능한가?”
그리고, 조사 결과 그 다른 사람들 중 한 명은 내 구세주이자 가족이 될 사람인 안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