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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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0-11 21:12조회 32댓글 2Garri
비극이 잔뜩 담긴 희곡은 역겨운 미래를 달릴 젊은 이들을 위한 것이고, 희극이 잔뜩 담긴 희곡은 곧 있으면 죽을 노인들을 달래는 것이었다.
그것은 벌써 황혼을 좇는 노인이기에, 희곡에는 희망이 담겨져 있었다. 전부 나아질 거야, 너는 선해, 선해, 선해, 선해, 선해, 선해, 선해, 선하다고, 너는 천국에 갈 거야. 희곡에는 제대로 된 노래와 제대로 된 내용이 없었다. 이야기가 눈물을 찢고 웃음만을 추구하는 게 문제였다. 그것은 황혼의 강한 빛에 눈이 부셔서 유일하게 볼 수 있는 선택지인 이 역겹고 달콤하지만 너무나도 빛이 안 들어오는 이 연극을 계속 볼 수 밖에 없었다. 이 연극의 배우들은 전부 눈을 뜨지 않았다. 입꼬리만을 씰룩 거리면서 춤을 추었다. 가끔 입을 열어서 고음을 부르고는 하였다. 본래의 악보와는 다르게 3옥타브 시가 마지막을 장식하지 않았다는 점 빼고는 전부 괜찮은 노래였다. 가수가 목이 쉰 것만 제외허면 말이다. 희곡의 이야기는 없었다. 위로를 돌려서 말하는 것이지, 하나의 소설처럼 쓰일 게 아니었다. 그저, 해와 달이 번갈아 가면서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다. 해는 선함, 달은 폭력이라는 젊은 이들의 희곡과는 다르게 죽음과 어둠을 부르는 달은 고요와 평온으로 해석하였다. 노인들은 해가 될 수 없었지만, 달은 될 수 있었다.
이곳은 연극에 몰입한 배우들이 자신의 인생을 연극으로 불 태우기 위한 장소였다. 더 이상 노인들을 달래는 데 노력하지 않았다. 예술 혼과 예술가답지 않은 목적이 곁들여진 모습에 그것은 인상을 저절로 찌푸렸다. 예술가를 그것은 증오하였다.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인간의 감정들을 팔레트에 박제한 이들이, 악보에 박제한 이들이, 그리고 복잡한 물결과 동작에 박제한 이들이, 자신의 예술혼을 목적으로 그것이 사랑하는 이들을 해치는 걸 그것은 참지 못하였다. 그것의 딸이 연극에 강제 배우로 섭외 되어 죽을 때까지 같은 대사 같은 동작 같은 표정만 반복하는 걸 그것은 잊지 않았다. 여전히.
그것은 계속 연극을 보다가, 순간 희곡의 절정에서 자신의 딸이 나오는 걸 보고 이 연극에 대한 분노가 쏟아져 나와 버릴 듯 하였다. 자신의 딸의 몸에는 여러 개의 칼집들과 수십 개의 눈알들이 있었다. 눈알들이 그려진 딸의 몸은 하나의 예술이 되어 버렸다. 남을 해치는 그 예술 말이다. 예술 혼을 핑계로 인간들을 몰살한 그 예술 말이다. 자신의 딸을 잡아 놓고서 이상한 대사를 시켰다. “아… 그대를 사랑하는 제 잎사귀가 꺼진 것을 제 눈으로 여겨주시오”, 저게 무슨 소리인가? 그것의 자식에게는 잎사귀와 2개 이상의 눈이 없었다. 전부 딸을 납치해 놓고서 하는 이상한 짓거리들이었다. 딸을 잡아 놓고서, 쇠사슬로 묶고서, 그 사이 삐져 나온 드레스에 가위로 구멍들을 숭숭 내고, 딸의 온몸 구석구석에 눈알들을 그리고, 일부 마음에 안 드는 눈알 그림들을 지우지 않고 그 부위에 칼집을 내어 버렸다. 그것은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였다. 자신의 딸을 저리 만들어 버린 놈들을 응징하고 싶었다. 응징하고 싶었다. 응징하고 싶었다. 응징하고 싶었다. 오직 응징만이 그것의 머릿속을 내맴돌았다. 황혼에 가기 전에 딸의 진실 된 목소리를 한 번 듣고 싶었다. 신식 문화라는 연극이 그려 낸 최절정의 비극을 그것은 파괴허고 싶었다. 파괴해야 한다. 파괴할 것이다. 파괴한다. 그리고, 파괴 되었다.
쿵!
그것이 제 본모습을 드러 내었다. 검은 몸에 1879003개의 눈알, 짐승이었다. 그것은 이제 이 연극을 벌인 무대를 짓이겨 놓고, 연주자들과 배우들을 잡아 먹고, 희곡의 작가를 불러 그 작가의 포효하는 예술혼을 먹는다. 모든 인간들이 그것의 딸을 보면서 창의적이고 영감이 가득한 이야기가 나올 것이라 하였지만 결과는 결국은 파괴였다. 파멸이었다. 종말이었다. 사랑과 애정과 집착과 예술의 종착지였다. 그것이 그것의 딸을 구하기 위하여 무대를 휩쓸 때, 모든 배우들과 연주자들이 같이 휩쓸려 나갔다. 이 모든 원흉이 된 희곡을 쓴 작가를 그것은 잡아 먹었다. 희곡을 쓴 작가는 “이별이 불러 내는 파멸과 이에 따른 사랑의 공허니, 뭐니”를 이야기하였다. 그것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모든 일들을 벌였다. 이는 이유가 아닌 요란한 합리화에 불과하였다. 그것은 포효하였다. 분노를 드러냈다. 딸을 데리고 도망치기로 하였다.
그것은 더 이상 천국에 갈 수 없었다. 죽인 인간이 많았으니까, 그것이 찢은 인간들의 구멍 난 혼이 외쳤다. 예술을 그것이 망쳤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폭력이 예술은 아니라고 말하였다. 둘은 계속 싸웠다. 결국, 그 누구도 천국에 환영 받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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