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낭만은 헐값에 팔렸다 #1

설정
2025-09-12 19:44조회 44댓글 0세리아
덜컹. 다르르륵.



- 변환
기억 > 백금화 17개



코인 변환기에서 황금빛 코인이 몇십 개 터져나온다. 잭팟이다. 난 누가 훔쳐갈세라 백금화들을 게걸스럽게 주머니에 쓸어담았다. 금화도 아니고 무려 백금화 열 일곱 개라니. 이 정도면 일반 평민들의 반 년치 봉급과도 맞먹었다. 헉 할 정도로 많은 돈은 아니었지만 고작 ‘일반 평민’에도 속하지 못해 발버둥치는 나에게는 생전 처음 보는 돈이었음이 자명했다. 변환기 위에 뜬 금액대로라면 정말 우주에 가는 것도 더이상 허황된 꿈이 아니었다.



이 각박한 세상에서 ‘정보’는 어떻게든 돈이 된다. 그 정보는 어떤 종류로든 사고 팔렸는데, 이를테면 오늘 내가 판 기억이라던지 모 유명 연예인의 전화번호라던지 하는 것들이 있다. 보통은 이런 자잘한 것들이 주로 거래되는 정보들이고, 특별대우받으며 백금화 몇백 개도 우스울 정도로 비싸게 거래되는 품목은 대부분 명예라던지 지위, 유전자와 같이 노력으론 쉽게 바꿀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러니까, 보통 백금화까지 거래된다는 건 그냥 좀 귀한 물건은 아니라는 뜻이었다.



가끔씩 돈 많은 부자들이 별것도 아닌 물건으로 경매장에서 다툴 때를 제외하면 마켓에서 온전히 제 값 주고 팔긴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변환기로 정보를 변환하는 것보다는 마켓에 팔릴 때까지 올려놓는 게 거의 두 배는 더 이득이었는데, 그럼에도 변환기를 쓰는 경우는 딱 세 가지 있었다. 첫째, 별 가치도 없는 정보라서. 둘째, 이렇게라도 사치 한 번 부리고 싶어서. 셋째, 그런 거 생각 할 겨를도 없이 돈이 너무 급해서. 내 경우는 예외.



백금화 열일곱 개짜리 거래를 왜 변환기로 했는가 하면 내 기억이 그렇게나 가치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어서였다. 경매나 마켓에 올리자니 아무도 안 살 것 같고, 변환기는 고장 난 것마냥 화면에 멋스러운 백금화 열일곱 개 띄워 놓고. 변환기에 오류가 날 일은 없으니 정말 내 기억이 그 정도로 가치 있다는 건데,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사람들이 백금화 열일곱 개 주고 추억 하나 살 일은 없어 보였다. 얼굴이나 아이큐 같은 것들은 제 값이 그대로 경매에 표기되지만 기억 같은 경우에는 좀 복잡했다. 대통합 이론의 완벽한 이해라던지 수영 잘 하는 법 같은 정보는 명료하고 직관적이다. 그러나 단순히 누군가의 ‘추억’이 담긴 기억이라면 표기하기 애매하다. 구매 전까지는 그 기억을 완전히 열어볼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누군가에겐 정말 소중했던 팔린 기억은, 마켓 한 구석에 외로이 자리잡아 변환기 에이아이가 평가한 사랑 별 네 개, 감동 별 세 개 반짜리 추억이 되어 팔릴 때까지 기다리는 신세가 되는 것이다. 누가 그 기억을 백금화까지 들먹이며 사려고 하겠어. 난 평생 변환기에게나 고마워해야할 것이다.



도대체 ‘어떤 기억’을 팔았길래 팍팍한 변환기 거래에서 백금화 열일곱 개를 얻을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평생 알 수 없겠지만, 평생 궁금증 갖고 사느냐 그게 아니라면 평생 꿈을 이루느냐 하는 문제에서는 어쩌면 당연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당시 내가 어떤 마음으로 이 기억을 팔길 결심했는지는 모른다. 어쩌면 돈 때문이 아니라 그저 기억을 잃고 싶다는 그 소망 하나만으로 행동을 감행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분류: 기억 (203-44-1)
판매 가격: 백금화 17개 (30% 부가세 별도)
총 평가: ★★★★☆
“멸망한 세계에서 가장 붕괴한 사랑은 세상의 시선에 얽메이지 않았다”



내 기억이었던 것을 향한 잔혹할 정도의 무미건조한 평가는 이미 기억을 전부 잃은 내가 읽기에도 가슴이 답답해서 백금화 열일곱 개를 꽉 쥐어도 마냥 웃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별 네 개 받은 사랑 이야기의 주인공이라기엔 난 아직 사랑의 의미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애송이여서 멋쩍게 웃곤 애꿎은 변환 창만 휘저었다. 썸네일에 콕 박힌 누군가와 내가 언젠가 영화에서 봤던 커플처럼 무척이나 애틋해 보였다.








그 낭만은 헐값에 팔렸다
#1.
댓글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