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mvi 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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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31 22:28조회 77댓글 25eo1z
더이상 물러날 곳은 없다. 회피하던가, 직면하던가. 선택지는 정해졌고, 나는 선택만 하면 끝이다. 그런데... 어째서 이렇게나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걸까. 지뢰를 밟아본 적은 수백 번이다. 나는 밟은 지뢰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 지 알고 있고, 시블도 그것을 안다. 도대체 어째서 난 발을 떨굴 수 없었던 걸까.

* 미하엘, 뭐야? 이제 와서 연약한 척은 아니지?

시블은 또다시 비아냥대며 점점 내 근처로 다가왔다. 나는 생각했다. 차라리 이 지뢰를 제대로 밟아 아담을 배신한 댓가를 치룰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다고. 나는 시블의 편에 섰더라면 안 됐다. 나는 아담을...

* 시블.

시블, 아담의 배신자. 옛적에 아담이 시블과 함께 동업을 했다는 말을 꺼냈었다. 하지만 어찌나 시블은 난폭했는지,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살인을 저지르고 다녀 시블 하나 때문에 본인도 정부에게 꼬리가 잡힐 뻔 했다고 여러 차례 말을 꺼냈었다. 그리고 시블은 흉악범이었다. 범비를 비롯한 여러 국가에서 시블의 출국을 막을 만큼이나 악명 높은 살인마였다.

* 뭘 그리 꾸물대?

나는 나의 발 밑을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없는 까만 흙 속에 있는 시블의 지뢰. 그리고, 시블의 건물. 계획적으로 추측했을 때 자신의 건물을 내가 밟은 지뢰 하나로 무너뜨릴 것 같진 않았다. 차라리 남의 건물이면 모를까. 나는 다시금 시블의 이름을 되새겼다. 여긴 시블의 건물이 아니다. 직감적으로 느꼈다. 자신의 건물이면서도 은근히 불안에 떨고 있는 저 태도.

* 여기, 네 건물이 아니구나.

이마에선 짠 땀방울들이 무수히 쏟아졌지만 앞머리 덕분인지 들키지 않았고, 사실 반은 도박이었지만 시블은 내가 던진 미끼를 제대로 물어 낚아챈 것 같았다.

* 그게 무슨 소리야? 여기가 내 건물이 아니면 어디라고.

* 거짓말은 그만둬. 네가 이런 건물에 지뢰까지 담가둘 만큼 재력과 권력에 있었나?

시블이 절대 권력자와 재력가가 될 수 없는 이유. 그것은 모두 아담이 시블보다 훨씬 월등했기 때문이었다. 업에선 아무리 동업이라 한들 수입까지 절반으로 나누진 않는다. 동업이라 하면, 나와 아담에게 있었던 정부 같은 사건 때에 같이 머리를 맞대고 고심하는 일들 뿐. 그 외엔 거의 따로 생활하기 때문에 사실상 업계에서 동업이란 것도 동업으로 보기 힘들다.

그런 시블과 아담이 동맹을 맺은 순간, 시블은 점점 아담에게 거짓말을 치기 시작했다고 한다. 금방 들킬, 아주 사소한 거짓말들. 자신이 원래 아담보다 열 배는 더 넘게 잘 번다느니, 사람들이 자신에게 청부를 하기 위해 내년 말까지 예약이 차 있다느니 그런 얼토당토 않는 유치한 거짓말들을 자주 했고, 사람을 쉽게 믿어 자신이 버려진다면 그 상대에게 살욕을 느낄 만큼 분노를 조절하지 못했다고.

그러니 그런 사기꾼에게 청부를 맡기는 사람이 있을 리가. 모든 청부는 그 세대에 그 업계에서 유명세를 떨치던 아담에게 꽂혔고, 결국 시블과 다른 어나더 레벨이 되자 아담은 시블과의 동맹을 끊고 그대로 범비로 탈주했다고 한다. 여기까지가 아담이 내게 말해준 시블과의 동맹 서사다.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시블은 동맹 도중 수많은 배신을 했고, 죄책감도 느낄 줄 모른다.

* 시블, 단도직입적으로 얘기하지. 지금 이 지뢰도 눈속임인 걸 알아.

내가 밟아본 지뢰만 백 여 종류. 그 중에선 지금처럼 가벼운 눌림의 지뢰는 없었다. 지뢰가 발동되는 탈칵, 소리도 진짜 지뢰라면 이렇게 가벼울 수가 없었겠지. 고작 이런 시시한 사기에 내가 넘어갈 것처럼 보였을까...

* 무슨...! 그렇다면 발을 한 번 떼보시지?

이 지뢰는 가짜고, 저렇게 당당히 얘기하는 것을 보면 무조건 지뢰를 제외한 다른 함정이 있다는 것인데, 그것을 찾기가 힘들었다. 주변은 온통 시블이 뿌려놓은 지독한 향수 냄새에 지금 내가 밟고 있는 것은 작지만 어쩌면 가짜 지뢰 중에서도 그나마 큰 위력을 가진 지뢰일지도 몰랐다. 머리가 점점 아파오기 시작할 때 즈음, 시블은 내 뒤를 가리켰다.

* 너... 너는...

혼미한 정신으로 뒤를 돌아보자, 그곳엔 아담이 군총을 든 채 나와 시블을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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