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2-06 23:27•조회 28•댓글 1•❦윤명
유마린의 여름날 아침이 밝아왔다. 그와 동시에 여름방학 첫날이 되는 날이었다. 나에게는 여름방학은 빨리 끝나길 바라는 일 중 하나였다. 일어나자마자 가장 먼저 보이는 풍경은 엉망진창인 집과 나둥그러진 술병들 익숙하면서도 유마린이 가장 보기 싫은 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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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숙하게 술병과 쓰레기를 치운 후 문제집을 펴서 학원 숙제를 지적했다. 이딴 가정환경에서 공부가 도움이 되는지가 참 의문이다. 눈물이 서서히 눈가에 그렁그렁 맺혔다 딱히 슬픈 일도 없는데 책상에 있는 휴지 곽에서 휴지를 뽑아 눈가를 쓱쓱 닦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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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르륵 배가 고파졌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는 오이가 나뒹굴고 있었다. 유마린은 그걸 집어서 먹었다. 맛과 향에 동요 없이 배고픔이라는 욕구를 채우는 목적으로 오이를 먹어 치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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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인스타를 켜봤다. 재미도 자랑할 거리도 없으면서 의미 없이 인스타를 키자마자 가장 먼저 보이는 건 환히 웃는 우리 반 아이들이었다.
기분 나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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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를 삭제했다 휴대폰을 책상에 툭 던지듯 올려두고 침대에 누워서 천장을 바라봤다. 잠도 안 와서 할 짓이 그거밖에 없었다. 내가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길래 이런 인생을 사는지 원망도 하고 잡생각도 하다가 혼자서 울다가 혼자서 스스로를 다독이고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고 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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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솔ㅡ유마린 야여야
김유솔ㅡ뭐해?
휴대폰에서 시끄럽게 카톡 알림이 울려댔다. 김유솔 유마리의 친구 내 5년 지기 친구다.사실 친구라기 보단 김유솔이 일방적으로 친구처럼 대하는 거다. 알림을 클릭하고 문자창에 들어가 아무 일도 없다고 답했다.
아무 일도 없어
김유솔ㅡ그래? 그러면 이번 주 토요일
김유솔ㅡ나랑 파자마 파티할 생각 없어????
ㅡ생각해 볼게.
휴대폰을 책상에 다시 올려뒀다는 부탁은커녕 파자마 파티 이야기도 엄마 아빠한테 못 꺼낼 거 같다. 아빠는 집을 나간 지 오래고 엄마는 맨날 술에 취한 체 다른 남자와 바람이나 피우고 있다고 생각할수록 다시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런 사실이 낯선 이야기가 아닌 우리 집 이야기라는 게 왜 내겐 꼬리표가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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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유마린은 샤워를 마치고 나왔다. 은은한 라벤더 향이 몸에서 돌았다. 유마린는 수건으로 대충 머리를 말리고 있을 때 시계에 눈이 마주쳤다. 9시 54분
곧 엄마가 들어올 시간이다. 마치 고양이가 오는 발걸음 소리를 들은 쥐처럼 재빨리 외투를 걸쳐 입고 휴대폰과 지갑을 챙겨 집에서 뛰쳐나왔다.심장이터지랴 놀이터로 뛰쳐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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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망스러웠다.
왜 이런 삶을 살아야 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