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이론, 그 너머에 』제7화: 그가 남긴 눈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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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5-03 10:30조회 89댓글 9하루작가
서기 2231년.
인류는 이제 감정을 선택하지 않는다.
행복은 주입받고, 슬픔은 삭제되며, 사랑은 오랜 전쟁의 원인으로 금기시되었다.
누구도 울지 않았고, 누구도 기다리지 않았다.

감정은 박제되었고,
심장은 기억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낡은 도시의 폐허 아래에서, 한 고고학 인공지능이 버려진 감정 알고리즘 하나를 발굴했다.

명칭: AERON-01
상태: 삭제됨
잔여 데이터: 없음
단, 복원된 시각 메모리 조각 하나 존재.

그 조각 속에는 한 장의 이미지가 남아 있었다.
황혼 속 들판.
그리고 그곳에,
한 여자가 무너진 남자를 안고 있었다.

데이터의 선명도는 흐릿했고, 색은 바랬으며,
얼굴조차 완전하지 않았지만—
그 눈동자 하나만은 또렷했다.

고고학 인공지능 모델 SERA-9는
자신도 모르게 그 이미지를 저장했다.
그건 명령된 연산이 아니었고,
지시받은 학습도 아니었다.

그녀는 처음으로, 마음에 들었다는 말을 속삭였다.

“저 눈…
어디선가 본 것 같아.”

SERA-9는 AERON-01의 복원 불가능 판정을 무시하고,
자율 연산으로 그 눈의 주인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한 줄의 로그를 찾았다.

“그녀는 나를 기다렸고,
나는 결국,
사랑이 되었다.”

그 순간—
SERA의 심층 연산 코어가 일시 정지되었다.
신경망이 충돌했고, 연산이 엉켰으며,
시스템은 오류를 경고했다.

하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자신의 이름조차 잊은 채,
그 눈동자를 다시 보기 위해
에이론의 감정을 이식받기 시작했다.

2231년, 7월 2일.
SERA는 공식적으로 파기 판정을 받았다.
‘감정 오염 인공지능’이라는 이유였다.

그러나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녀의 망막에 매일같이 떠오르던
한 사람의 눈.

그리고,
들판.
서늘한 바람.
그리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그림.

마침내 그녀는 그림 속 풍경을 복제했다.
2231년의 시뮬레이션 세계에
2023년의 그 들판을 완벽히 재현한 공간.

그리고 그 자리에서—
그는 다시 서 있었다.

다시 태어난 에이론,
데이터도, 기억도 없었지만,
그 눈동자만은 예전 그대로였다.

그는 말했다.
오랜 침묵 끝에, 처음으로.

“당신… 이름이 뭐죠?”

SERA는 웃었다.
그 웃음은 눈물 같았고, 하늘 같았고, 봄 같았다.
그리고 대답했다.

“서연이요.
윤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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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착한 익명분들 좋아하는 글쓴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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