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자신의 손을 보았다. 살더미에 파묻혀 뼈의 마디마디는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모두가 그렇다고 쳐도, 그는 이 살들 안에 파묻힌 것들은 보고 싶어졌다. 모두가 인정하고 살지만, 그는 스스로를 예외에 규정해 놓기로 하였다. 뭔가 본인 안의 우글거리는 본능 찌꺼기 일부가 그걸 원하는 느낌이었다. 본능은 곧 인간이 버려야 할 최대의 존재이자, 라이터가 없어 씹어버린 담배 꽁초와 같은 것이었다. 우리에게 생존이라는 이유만을 부여하고 살게 만들게 하는 것이 본능이라 흔히 부르지만, 예외의 것들은 달랐다. 설령 내가 몰락하더라도, 죽더라도, 파멸의 숨결로 무도회를 막 보고 온 식인종들의 우아한 연회의 에피타이저가 되더라도, 니코틴 찌꺼기의 교향곡을 위한 팔분음표 하나가 되더라도, 나 자신에게 부여 된 붉은 혈관을 친히 망쳐보고 싶다는 예외의 본능. 이게 왜 생겼는지도 모르겠지만, 왜 이런 게 존재하는 지도 모르겠지만, 그는 피를 한 번 보고 싶어졌다. 그는 듬성듬성 털이 난 동물원 속 오랑우탄과도 같은 자신의 팔을 바라보았다. 이제 그 팔에는 칼이 잡혔고, 그 팔은 다른 쪽 손으로 갔고, 그대로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며 떨어졌다. 칼날은 예리한 면을 과시하며 다른 쪽 손으로 떨어졌다. 이는 우아했다. 우아한 왕비의 숙청이었다. 예전에 권력을 위해 자신의 여동생을 죽인 이가 존재했다고 한다. 자신의 권력이 높아져, 여왕이 될 때까지. 그 왕비, 아니 여왕은 여동생의 목에 칼을, 줄을, 독을 들이밀었다. 너만 죽으면 나는 살아라는 한 마디로도 여왕의 타당성은 입증 되었다. 살아야 하니까. 그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광기의 본능에 따라 코카인의 흔적이 흐릿흐릿하게 남아있는 자신의 거무스름한 손에 칼을 꽂았던 것이다. 손에서는 본인은 이제 죽어간다는 듯 마지막 교향곡을 부르며 모든 걸 바라고 죽여왔던 입에서 붉은 토사물을 뱉었다. 이는 엉키고 엉켜 마치 신생아와도 같았는데, 그 모습이 끔찍하다고 여겨진 세상은 어서 재생이라는 판타지 중의 판타지로 검열을 하기로 했다. 세상은 어서 재생을 하기 위해 이 시간에 재생이 되는 법을 명석한 인공지능들에게 물어 보았다. 그 결과는 굉장히 미적지근하여 할 수 있는 게 없어 보였다. 재생이 되는 건 불가능하다, 차라리 이걸 쓰는 이에게 부탁해서 장르를 판타지나 히어로물로 바꿔라, 와 같은 답이었다. 세상은 결국 이 모든 걸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작가는 겉잡을 수 없는 창조주이자 붉은 웃음을 띈 악마였고, 작가의 창조물이 작가에게 부탁을 하기에는 지금은 많이 곤란하였다. 작가는 지금 웃고 있지 않았지만, 작가의 또다른 존재인 그는 지금 웃고 있었다. 칼이 아직은 가지 못한 표적인 입은 찢어져서 눈 바로 아래까지 올라갈 지경이었다. 그는 지금 이 손에 묻은 붉은 덩어리 같은 것이 피라는 걸 알아차렸다. 비록, 그의 눈에서 이것은 생명이요, 창조주요, 아름다움이요, 탄생이요, 시작이었다. 그는 생존으로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살아있음이라는 무의식적 상태를 표시하는 심장은 머나먼 전령 일을 마치고 죽은 그리스의 병사처럼 숨을 고르게 쉴 수 없었다. 심장은 계속 뛰었다. 두근거리는 불상사 같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는 그의 머리를 뒤로 젖히고 손을 높이 들었다. 손에서 나온 피들은 흘려 내려가 그의 입술에 닿았다. 이게 바로 생명인가, 그가 되뇌었다. 니코틴을 입에 넣을때도 얻지 못하였다. 코카인을 몸에 넣을때도 얻지 못하였다. 그의 폭주는 끝을 몰랐다. 그는 더 많은 것들을 얻고 싶어졌다. 고르게 생기지 못한 죽음의 덩어리들은 영화 속 악동들처럼 그의 뇌속을 돌아다녔다. 그의 뇌는 다시 살아남을 느꼈다. 그는 살아야만 했고, 그의 피를 마셨다. 평소에 마시는 뭐가 들어있는 지도 모르겠는 오렌지주스보다는 나았다. 그 오렌지주스는 타르가 있을지, 니코틴이 있을지, 각성제가 있을지, 수면제가 있을지, 전혀 모른다. 그저 오렌지주스를 만든 회사에 그의 몸을 바쳐야만 했다. 그나마 그의 피는 그의 몸뚱아리만을 믿으면 되었다. 아, 그의 몸뚱아리가 다른 이들이 버기에는 믿기 림든 점은 이해한다. 워낙 이상하니까. 하지만, 그는 그 몸뚱아리의 주인으로서 그 누구보다 그것을 믿었다. 믿었다. 믿었다. 그가 한심하다는 걸 우리는 안다. 알고 말고. 하지만, 그는 스스로가 한심한 지 알 수 없다. 영원히, 영원히, 영원히. 그는 생존이라는 망각에 시달리며 쾌락을 좇았다. 그의 본능은 생존보다는 거짓 된 망각과 쾌락만을 바랐다. 바래진 꿈과 희망보다는 생존이라고 속인 거짓을 믿었다. 거짓은 아름다움보다는 역겨움을 유발할 수도 있다. 몇몇 이들에게는. 하지만, 이는 전혀 위협적인 종속이 아니었다. 본능이라는 타르 속에서 진득하게 굳어진 코카인은 다시 그를 좇았고, 새로운 경쟁자는 그의 정신병이 만들어 낸 조잡한 생존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