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원히 살고싶어.
너는 늘 살기 싫어하면서도
입버릇처럼 그리 말하곤 했다.
영원한 게 품아. 영원해지고 싶어.
이유를 물었지만, 너는 나도 모른다고, 참 어이없지 않냐며 웃어보였다.
한때 너는 달팽이 먹이용으로 쓰던 분필을 빤히 쳐다보며
그것이 가진 능동적인 지속성을 예찬했다.
원하면 얼마든지 무한해질 수 있는 분필이 참 부럽다나.
* 사람은 왜 변할 수밖에 없을까?
어느 날의 침묵을 뚫고 너가 물었다.
나는 잠깐의 고민 끝에,
* 변해야 변하지 않을 수 있어서.
라고 답했다.
강이 흘러야 마르지 않듯이.
너는 웃으며 그거 재밌다, 라고 했다.
여름은 네가 특히 싫어하는 계절이다.
밀도 높은 더위, 밀도 높은 습도
하늘 위를 가득 메운 햇빛은
무리의 머리 위에서 계속 넘실대고,
너는 에어컨 온도를 신경질적으로 낮추며 계속 지친다고 한다.
어쩌다 한번씩, 뭐가 지치냐고 물으면 너는,
나도 모른다고, 참 어이없지 않냐며 웃어넘긴다.
~
가볍게만 존재하고 싶다.
구겨져도 금방 필 수 있는 얇은 민소매 셔츠처럼
감정이나 특별함 없이 다려지며
옷장 속에 정렬된 여름옷들처럼
한낱 보잘 것 없던 인간을
그토록 특별한 존재로 만들어준
모든 인간적인 것들은 진하다.
그런 진한 것들로부터 벗어나고싶다.
그 진한 것들은 내 안에 기생해서 함께 살아간다.
슬픔, 연민, 기쁨, 희열. 확신, 절망감, 죄책감.
마치 나를 둘러싼 투명한 막을 허물어서
내 안으로 억지로 들어오는 기분.
하늘로 떠오르는 걸 방해받는 기분이다.
가별게만 살고싶은 마음에
나는 불멸을 꿈꾼다.
생을 아몬드 슬라이스처럼
얇게 자르고 잘라
긴 세월에 걸쳐 여유롭게,
하나씩 오독오독 씹고싶다.
그래야 내 손 안에 들어올 것 같아.
인생이란 손에 잡히지 않으니까.
그게 두렵다.
여름이 와버렸다.
녹말보다 녹진하고 진득한
그리고 너무 진해서 에스프레소처럼
물에 타야할 것 같은
그런 계절이 다시 와버렸다.
가벼워져야한다. 물에 빠지면 끊임없이 발차기를 하듯,
여름에 빠졌으니 더 끊임없이 무게를 덜어내야한다.
내게는 오랜 꿈이 있다.
모두가 잠자는 늦밤,
잠들었을 너에게
끝내 다다른 0g의 가벼움으로 날아가
함께 달의 뒷편에서 살자고 말해보고싶다.
밤이면 하늘 한가운데에 걸린 채
하얗게 질린 얼굴로 우릴 쳐다보는 달
그곳은 모든 것이
지구 무게의 1/6배.
말조차 입밖으로 나온 순간
날아가 사라져버리는
말하자면 내가 꿈꾸는 낙원이다.
모든 것이 가벼워지는 나만의 회색빛 낙원
나는 한없이 가벼운 존재가 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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