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르 마을의 따사로운 햇살은 오늘도 어김없이 반짝였다. 푸르른 나무에 내려앉은 빛이 잎 끝에서 녹아흐르고, 마을을 둘러싼 시냇물은 졸졸 소리를 내며 평화로이 흘렀다. 수도에 사는 귀족들이었다면 이 풍경을 보고 정말 아름답다며 칭찬을 늘어놓았겠지만, 클레르 사람들에게 햇빛이란 성가시고 진부하기까지 한 존재였다. 물론 아리안느도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언제쯤 여기를 벗어날런지." 아리안느가 언덕 위 나무 그늘 밑에 앉아 중얼거렸다.
한두 번 해본 말도 아닌 듯했다. 그러나 열한 살의 소녀가 할 법한 소리는 당연히 아니었다. 그렇기에 사람들 앞에서 이런 말을 하면 아리안느는 항상 비웃음을 샀다. 그 이유를 아리안느는 끝내 깨닫지 못했지만 말이다.
아리안느는 헤이튼 백작의 둘째 딸이었다. 유모 말에 따르면 몇십 년 전 헤이튼 가는 백작의 현명함으로 황제의 총애를 받아 수도에서 제일가는 가문 중 하나였다. 하지만 신하들의 모함으로 인해 깡촌인 클레르로 쫒겨나듯 오게 된 것이라고 했다.
아리안느는 그것이 못내 억울했다. 수도의 영애들은 분명 화려하고 예쁜 드레스를 입고 무도회에 참석해 춤을 추다 운명처럼 자신의 짝을 만날 것이다. 하지만 클레르의 아리안느 뮐레 헤이튼은 어떤가. 제 언니에게 물려받은 유행 지난 드레스를 입고 다니며, 무도회는 커녕 누군가의 파티에도 가본 적이 없고, 혼인은 클레르의 어느 촌스러운 남자애들 중 하나와 하게 될 자신은. 그녀는 스스로가 가여워 참을 수 없었다.
그때, 바퀴 굴러가는 소리가 아리안느의 상념을 깼다. 아리안느는 소리가 나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엔 웬 마차가 있었다. 이런 시골에 마차가 올 일이 뭐 있다고. 아리안느가 중얼거렸다. 호기심이 점점 부풀어올랐다. 결국 아리안느는 참지 못하고 마차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덜거덕 덜거덕 굴러가던 마차는 어딘가에서 멈췄다. 몇년 전 누군가가 내놓았지만 팔리지 않아 시내 한복판에 홀로 존재하는 빈집이었다. 막상 호기심에 와놓고 보니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덩그러니 서있는데, 마차의 문이 열리고 누군가 내렸다.
"누구세요?"
그는 의외로, 꽤 앳되어 보이는 남자애였다. 소년의 청록색 눈동자가 아리안느를 꿰뚫고 지나갔다. 아리안느는 어쩐지 저의 눈앞에 서있는 이 애가, 자신을 아주 바꿔놓을 것 같다는 기이한 생각을 했다.
***
소년과 아리안느는 빠르게 친해졌다. 소년은 틈만 나면 아리안느의 집으로 놀러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아리안느도 소년의 집에 가보고 싶었지만 그가 좋아하지 않는 듯한 눈치였기에 항상 제 집에서 소년을 기다렸다.
"나는 크면 꼭 수도로 갈 거야. 이런 깡시골은 질릴 대로 질렸어."
어느 날 뜬금없이, 아리안느가 씩씩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리안느의 맞은편에 앉아 티타임을 즐기고 있던 소년은 그녀의 말을 듣고는 찻잔을 내려놓았다.
"난 황실이 싫어. 있지, 원래 우리 가문이 수도에서 엄청 잘나갔거든. 근데 그때 황제가 신하들 모함만 믿고 우리 가문을 여기로 보내버렸대. 그래서 내가 지금 여기 있는 거야. 그 황제 진짜 짜증나지 않아? 완전 팔랑귀야."
황실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소년의 표정이 미묘하게 달라졌다. 그리고 아리안느의 이야기가 끝나자 허공을 응시하며 잠시 생각하더니 이내 그는 실소를 터트렸다.
"뭐야, 왜 웃어?"
"아니, 아니야. 아무것도."
소년의 답에 아리안느는 토라진 듯 고개를 돌렸다. 소년은 그런 아리안느를 바라보다 작게 미소지었다. 그러자 아리안느도 어쩔 수 없다는 듯 같이 웃었다. 소년의 심장이 조금 동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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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리:
https://curious.quizby.me/ifle…제목 짓기 귀찮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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