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curious.quizby.me/Soyy…아, 신이시여. 하나님 부처님 얄라신이시여. 제 탄신일이 이 주가 남아 미리 소원 하나를 빌 예정인데 부디 가엽게 여기시어 들어주시옵소서. 하나님 부처님 얄라신이시여. 제발. 제발.
올해 생일엔 죽을 용기를 선물로 주세요.
그건 내 첫 번째 자살 계획이었다.
죽고 싶은 소년과
살고 싶었던 소년이 있었다.
W. 소야
타닥 탁 하는 소리는 전조증상이다. 라이터가 켜지는 것처럼 하늘에 불이 붙는다. 씨발. 또 우박이야 우박! 비명과 함께 몰려 있던 사람들이 벌떼같이 흩어졌다. 뛰지도 않았는데 숨이 턱끝까지 차올라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왜 나한테만 중력은 다섯 배 정도 강한 건지 발 하나 바닥에서 떼놓는 것도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우박이 돌덩이처럼 떨어지고 둔탁한 충격이 덮치고 나서야 난 겨우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흰 우박이 반으로 갈라지고 머리에서는 검은 핏물이 흘렀다.
우박은 이 주일에 한 번 꼴로 내린다. 쓰라린 자연재해는 예고도 쉽지 않았고, 이 주에 한 번이라는 비전문적인 우박 측정법은 사실처럼 전해져왔다. 그러니까 이틀만에 다시 우박이 내릴 거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난 우박이 내리면 죽을 거야.
어제 그렇게 일기를 썼었는데.
이 주 정도로 어립잡고 있던 난 이틀만에 죽을 결심을 끝낼 위인은 못 됐고. 우박 맞고 죽을 거라는 내 다섯 번째 자살 계획은 그렇게 망가졌다.
인생사 세옹지마라더니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었다. 난 두꺼운 처마 밑에 서서 우박이 쏟아지는 꼴이나 구경했다. 어느덧 시계는 세 시 십 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세 시에 병문안 약속이 있었으니 이미 늦은 셈이었다. 오늘은 날이 아닌가. 우박까지 쏟아진 날에 병문안에 갔다간 괜히 불운이나 옮길 것 같았다. 아무래도 병문안은 다음으로 미루는 게 좋을 것 같다. 날짜를 미루려면 한참이나 기다려야 한다는 걸 알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 병원은 규모가 아주 컸고, 입원한 사람도 많았고, 그래서 항상 인력과 자원 부족에 시달려 예약이 아주 밀려 있었다. 죽기 전 마지막으로 엄마 얼굴은 보고 가고 싶었는데 아마 다시 예약하려면 이 주 정도가 걸릴 것이다.
그렇다면 이 주 뒤에 죽자.
오늘은 또 그렇게 일기를 쓰게 되겠지.
내 여섯 번째 자살 계획은 허무할 정도로 쉽게 쓰였다. 마지막으로 엄마를 본 다음 스펙타클하게 얼어 죽을까. 그게 아니면 평범하게 목이나 멜까. 브로커한테 죽여달라고 부탁하는 건 얼마 정도가 들까. 뭐 그 정도까지만.
주변에는 우박을 피해 건물로 들어온 사람들로 즐비했다. 모두가 우박이 그치길 기다리고 있었다. 난 주위를 훑어봤다. 숨죽여 우박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각양각색의 사람들, 서로가 오늘 처음 보는 사이인 사람들이, 같은 장소에서 자연재해를 맞았다는 기막힌 우연으로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리고 죽자 죽자를 울부짖던 내 옆엔 휠체어를 끈 남자 한 명이 있었다.
왠지 뒷모습이 익숙해 그 남자를 빤히 쳐다봤다. 그는 엄마가 다니는 병원복을 입은 채 몸을 들썩이고 있었다. 내 눈치를 읽은 건지 그 사람은 갑작스레 고개를 휙 돌려 날 마주보더니 눈을 크게 떴다. 비쩍 야위었는데도 꽤 잘생겼다고 생각하는 것도 잠시.
- 어, 당신, 서한결 맞죠?
- 내 이름을 어떻게 알아?
- 저 미주 아줌마랑 603호 같이 썼던 사람인데.
그 말을 듣자 머릿속에 한 사람이 스쳐지나갔다. 삼개월 전 엄마가 제대로 걸어다니고 말도 할 줄 알았던 시절 2인실 병원에서 함께 살았던 잘생긴 남자의 이름이.
- 이유담?
- 기억하시는구나!
귀엽게 잘 생겨서 내 취향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잊을 수 있었는지. 이유담은 고작 삼 일동안만 엄마랑 같은 방을 쓰다 병세가 악화되어 중환자실로 옮겨갔던 사람이었다. 난 그때 중환자실로 옮겨간 것이 얼마나 심각한 일인지 몰랐고, 얼마 전 엄마가 급하게 수술하고 중환자실로 이송된 이후로 이유담이 얼마나 아픈 사람일지 어림짐작할 수 있었다.
이미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유담은 몰라볼 정도로 살이 빠진 것을 빼면 아주 건강해 보였다.
불과 삼 개월 전에 중환자실로 입원했던 사람이었다. 그것도 만성 백혈병으로. 백혈병이 이렇게까지 쉽게 나을 수 있는 병이었나? 아니, 어쩌면······ 그냥 건강해 보일 뿐인 건가?
- 저 건강해 보이죠?
내 생각을 읽은 것처럼 유이담이 그렇게 말했다.
- 근데 사실 이 주 뒤에 죽거든요.
우박이 처마를 깨며 쏟아지는 소리가 숨 막히는 공기 속을 파고든다. 미래를 확신하는 듯한 어투에 숨이 막혔다. 제 운명을 가장 잘 아는 것은 본인이면서 이유담은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헤실헤실 웃기만 했다.
세상에는 남은 인생이 주어진 사람들이 있었다. 몇날 며칠 죽는다는 예언같은 그 말이 명제인 사람들이 있었다.
이 주. 왜 하필 이 주였을까.
- 이 주 동안 장기가 하나둘씩 죽을 거래요. 많아야 이 주 내에 다장기 부전으로 심정지 사망한대요. 저 죽는대요. 죽어요. 근데.
죽기 싫으면 어떡해요?
두 눈에 짙게 패인 절망을 느끼며 난 엄청난 모순을 느꼈다.
이 주. 우연찮게도 겹쳐버린 날짜는 누군가에겐 쉬이 고칠 수 있는 것이었고 누군가에겐 자석처럼 붙어버린 운명이었다. 다섯 번째 미뤄왔다면 그만 죽을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가도 막상 하루하루가 죽을 만큼 힘들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짧은 충동은 창문을 열고 뛰어내리게 만들지만.
아무래도 난 이유담보다 먼저 죽어야겠다. 죽고 싶은 사람에게 자원을 낭비하기엔 세상이 지나치게 좁았고. 살고 싶은 사람이 있는 세계에서 죽음을 원하는 사람은 어쨌건간에 삶을 원하는 사람보다는 먼저 죽어야 마땅할 것 같았다.
그럼에도 난 이유담보다는 오래 살아야겠다. 미래를 원함에도 죽음을 앞두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 한 제멋대로 죽어버리는 건 야비하다. 자살은 살고 싶은 사람을 기만하는 행위다. 난 내게 주어진 삶을 악착같이, 마치 진심으로 살고 싶은 사람처럼 살아가야 했다. 그래야 할 것 같았다.
- 한결 씨, 이 주 뒤에 죽겠다면서요.
- 그걸 어떻게······
- 혼잣말하셨던 거 다 들었거든요.
이유담은 얇은 손가락을 휠체어 위로 튕기며 장난스레 말했다.
- 누가 더 오래 살지 내기할래요?
그건 왠지 답이 정해진 내기인 것처럼 들렸다.
- 벌칙은요?
- 천국에서 엉덩이 춤 추기.
고작 이 주 동안만 더 살면 된다. 사실 천국이란 게 있는지도 확실하지 않고 죽은 다음에도 엉덩이 춤을 출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하등 바보같은 내기에 응할 이유는 전혀 없다. 그럼에도 이유담은 전혀 질 사람의 눈빛이 아니어서.
- 그래요.
난 내기에서 지고 싶다고 생각한다.
- 희망은 없겠지만
하늘이 파랬던 언젠가 그랬듯이
숲은 다시 나무를 되찾을 것이고
하늘에서 비가 내리는 날이 올 것이고
여름도
종말한 여름도 다시
- 왜 더 안 읽어?
- 그러게, 뒷 내용이 생각이 안 나.
이유담이 어깨를 으쓱였다. 제일 좋아하는 시를 읊어주겠대서 듣고 있었는데 이유담은 다 읽지도 않고 중간에 멈췄다. 뒷 내용이 궁금해서 물었으나 이유담은 그냥 상상하라고 했다. 상상이 사실보다 더 좋을 때도 있다고.
중간에 끊긴 시는 이상하게도 희망적이게 들렸다. 사라진 여름도 결국 돌아온다는 구절은 그저 계절만을 담고 있는 걸까. 이유담은, 여름을 바랄까.
- 여름이 왔으면 좋겠어?
이유담을 곁눈질하며 슬쩍 물었다. 이유담은 대답하지 않았다.
지구는 아주 오랜 시간동안 빙하기를 맞고 있다. 잿더미는 태양빛을 가렸고 어느 순간 여름이 사라졌다. 비가 내리는 날은 오지 않는다. 우박과 눈보라가 칠 때면 지구 전체가 울렁였다.
지난날 지구를 덮쳤던 빙하기는 평균적으로 십만 년 동안이나 지속되었다. 이번 빙하기가 몇 년 전부터 시작된 건지는 정확히 밝혀진 바가 없으나, 십만 년이라는 천문학적인 기간은 아득하게만 느껴졌다. 여름이 올 일은 없다고, 여름은 처음부터 우리 지구에 없었다고, 현대인들은 그렇게 믿을 수밖에 없었다. 아득한 희망은 붙잡을 때마다 꺼져만 갔으니까.
- 난 여름을 정말 좋아해, 한결아.
이유담이 동문서답했다.
- 그래서 왠지 죽기 전에 여름을 볼 수 있을 것 같아.
죽음을 일주일 앞둔 이유담은 그렇게 말했다.
차마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대꾸할 수는 없었다.
이유담은 날이 갈수록 상태가 악화되고 있었다. 이유담은 휠체어에 스스로 오르내리지도 못했다. 지난번 봤던 가발 대신 얇은 비니를 쓴 채 더 야윈 얼굴로 고작 웃기조차 힘들어했다.
얼마 전부터 이유담은 죽음을 직감했는지 이상한 서두를 붙이기 시작했다.
- 일주일 뒤에 별똥별이 내린대. 나랑 같이 보러 가자.
라던가.
- 어제 옷을 하나 샀는데 해외 배송이라 이 주 정도 걸린다더라.
같은 것들.
계획을 세워놓으면 그 자리에 꼭 자기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지.
- 이유담.
이유담은 가진 것도 많았고 가지고 싶어하는 것도 많았다.
가진 게 많은 사람들은 죽음이 더 두렵다. 시한부에게는 행복도 독이다. 이유담은 자기가 곧 죽을 거라는 사실을 믿지 않았다. 그래서 시한부랑 제일 어울리지 않은 행동같은 걸 한다. 이 주 뒤에 오는 옷을 사거나 일주일 뒤에 오는 별똥별을 기다리거나 더 오래 사는 사람이 이기는 내기 같은 것들.
삶이 고작 일주일 남은 사람이 내게 소중한 시간을 낭비해도 되는지 그렇다면 이유담에게 가장 행복한 순간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지 그런 고민들이 머리를 가득 채운다. 지난 일주일은 내 죽음보다 이유담의 죽음이 더 가까워서 전보다 더 죽고 싶었다.
내가 죽으면 네가 이기는 거잖아.
근데 엉덩이 춤은 추고 싶지 않았다.
이유담의 일주일은 죽음의 공포 따위 없었으면 좋겠다. 평생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죽기 직전까지 이어지면 그게 행복인 거잖아. 이유담은 평생 자기가 시한부인 걸 몰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 나랑 사귀자.
나도 이유담이 시한부인 걸 믿지 않기로 한다.
- 여름이 오기 전까지.
- 바보야, 여름이란 건 없어.
이유담이 오일만에 말을 번복했다.
여름이 없다는 말은 평생 사귀자는 고백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정말 여름이 없었던 것처럼 이 주마다 왔던 우박은 이틀마다 왔고 이유담은 딱 오늘까지만 살겠다 싶을 정도로 숨을 이어가고 있었다. 이유담의 폐는 찬 공기를 들이킬 때마다 얼어만 갔다.
얼마 전 의사에게 이유담의 차트를 전해받은 적이 있었다. 차트에는 이유담의 병세가 아주 세세하게 적혀 있었고, 건강할 적 찍은 증명사진과 주민등록번호가 있었다. 난 무심코 읽어나가다 멈칫했다.
이틀 뒤.
그러니까, 내기로부터 정확히 이주일 뒤가.
이유담의 생일이었던 것이다.
그제야 모든 게 이해되기 시작했다.
생일과 별똥별과 소원과 희망들이.
- 일주일 뒤에 별똥별에 소원을 빌 거야.
케이크 앞에서 소원 빌고 싶다는 뜻이었어?
- 어제 옷을 하나 샀는데 해외 배송이라 이 주 정도 걸린다더라.
씨발, 누가 수의를 해외 배송으로 사?
이유담은 죽음 같은 거 회피하고 있지 않았다.
내게 제 죽음을 알려주고 싶지 않았던 것뿐이었다.
이유담은 날 좋아한다.
이유담은 내가 자기보다 오래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근데 이유담.
왜 여름은 없다고 그랬던 거야?
- 오늘 밤을 넘기기 힘들 것 같습니다.
인력 부족에 시달리는 의사가 바쁜 듯 다급하게 말했다. 그걸 나도 듣고 내 옆에 누운 이유담도 들었다. 이유담은 여전히 바보인 척 눈만 꿈뻑꿈뻑. 살아 있는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이유담의 심장이 뛴다. 두 시간만 지나면 이유담의 생일이었다.
이유담은 이제 말도 잘 못한다. 누워서는 손 하나 까딱하는 것도 온 힘을 다해야 했다.
이유담이 숨을 몰아쉬며 한 마디 한 마디 겨우 뱉었다.
- 그, 래. 한결, 아. 네가, 이겼어.
그 말 뱉는 것만 꼬박 삼 분이 걸렸다.
- 내일, 별, 똥별.
이유담이 필사적으로 날 바라보며 말했다.
- 응.
- 나, 곧 죽을, 지도 모르니, 까. 미리, 소, 원 빌어도, 돼?
- ······응.
이유담은 내 대답을 듣곤 아주 오랜 시간 두 눈을 감고 있었다.
난 쿵. 쿵. 방 안을 가득 울리는 이유담의 심장 박동 소리에만 온 집중을 다했다.
- 빌었어.
이유담의 눈은 이 주 전과는 다르게 텅 비어 있었다.
난 왜인지 반년 전 내 생일에 빌었던 소원을 떠올렸다.
올해 생일엔 죽을 용기를 선물로 주세요.
죽음이 두렵지 않은 사람은 없다. 자신이 시한부임을 필사적으로 무시했던 이유담은 나랑 같은 소원을 빌었을까?
얼마 지나지 않아 이유담의 생체반응이 서서히 느려지고 그렇게나 바빠하던 의사들이 이유담 병실에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할 때 난 극도의 두려움을 느꼈다. 그게 얼마만큼이든 이유담보다는 아니었겠지만.
이유담의 심장 박동 소리가 하늘을 뚫을 것처럼 빨라진다.
- 한결아.
- 응.
이유담도 안 우는데 내가 울고 있다. 이유담은 억지로 내 눈을 피하면서 평소처럼 별 거 아니라는 표정으로 말했다.
- 헤어지자.
그러니까.
그 순간 바깥에서 뭔가 쏟아지는 소리가 들린 건 빌어먹을 필연이었다고.
- 비?
대기하던 의사 중 한 명이 무심코 소리쳤다.
비가 오고 있었다.
- 여름이 왔어.
왜 하나같이 말도 안 되는 일은 전부 일어나는지.
눈앞이 흐려서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이유담의 심장 박동이 끊겼다. 의사들이 달려들어 재세동기를 켰지만 심장은 돌아오지 않았다. 의사들은 놀라울 정도로 이유담을 쉽게 포기했고 난 주저앉아 우는 수밖에 없었다.
- 0시 8분 사망하셨습니다.
그건 내 사망 선고같이 들렸다.
이 주 뒤에 죽자.
오늘은 일기장에 그렇게 적어넣었다.
무균실에서 본 엄마의 상태는 생각보다 좋지 않았다. 의사는 엄마 같은 사람들을 일컬어 시한부라고 말했다. 죽음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었고 난 준비도 없이 죽음을 맞이했다. 자살과는 또 다르다.
여섯 번째 결심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다만.
이유담 없이 살 수 있을지.
엄마의 죽음은 언제 찾아올지.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할지.
그중 어느 것 하나도 쉽지 않아서 모든 고민을 들고 가야 할 이 주는 마치 십만 년처럼 길게 느껴진다.
올해는 여름이 올지도 모른다고
그런 소문이 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