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 (1) "시원섭섭하다"

12월 26일, 꿈 같았던 크리스마스 날이 지나고
다시 학교에 왔다.
그날 내가 하윤이에게 고백을 했지만 아직 확실한 대답을 못 들었다.

그리고 오늘은 마니또 공개날이다.

교실은 오전부터 떠들썩했다.
칠판 맨 위에 크게 쓰인 글씨.

〈마니또 공개!〉

그리고 조례시간, 선생님께서 교실로 들어오셨다.
그런 뒤 각자 이름 옆에 마니또의 이름을 적어나갔다.

정준호 → 김시연

"야야야야야!! 뭐야 이거!!!!"
시연이의 목소리가 제일 먼저 터졌다.

"정.준.호. 너, 나 맞았네!!"
준호가 내 뒤에서 느릿하게 고개를 들었다.
김시연이 김준호 쪽으로 다가왔다.

"뭐, 왜. 놀랐냐?"

"놀랐지!! 너가 내 마니또 아니라며?!
나 진짜 완전 헷갈렸거든??!  아니 근데 진짜, 너였다고?
그러면 그 젤리, 편지, 초콜릿도 다 너였어?"

"어."

"...말을 왜 이렇게 싸가지 없게 하지?
마니또 끝났다고 이제 앞으론 안 챙겨줄거야?"
시연이 삐친 듯 말하며 고개를 홱 돌렸지만,
귓불이 빨개졌다.

"그럼 너는? 너도 내 마니또였네?"
준호는 앞에 자기 이름이 적혀져 있는 칠판을 슬쩍 보며 말했다.
정준호 → 김시연
김시연 → 정준호

"서로 챙긴 거였네."

"아 뭐야.. 맞네..."

시연은 그 자리에서 얼굴을 감쌌다.
"아 진짜 쪽팔려!! 진짜.. 나 그냥 자퇴할게?"

준호는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니가 말했잖아. 진짜 내가 니 마니또면,
너한테 좀만 더 잘하라고."

시연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준호는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진짜 나니까
앞으로 더 잘해줄게.”

그 말에 시연은 멈췄다.
고개를 천천히 들었고, 눈이 흔들렸다.
그리고, 말없이 웃었다.


"이서준!! 너가 김하윤 마니또였어??"

현우가 내 쪽으로 종이를 들고 왔다.
"봐봐! 하윤이 옆에 네 이름 적혀있어!"

나는 들릴랑 말랑 한 작은 목소리로 작게 말했다.
"응.."

"근데 김하윤도 니 마니또였냐?"

나는 얼른 칠판을 봤다.
김하윤 → 이서준

그 순간, 숨이 멎는 줄 알았다.

"뭐야... 너... 진짜 나였어...?"

하윤은 내 옆에서 조용히 웃었다.
"응."

"말하지.."

"그럼 재미없잖아."
하윤이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나는 말이 막혔다.
무슨 감정인지 설명하기 어려웠고,
그냥 지금 이 순간을 오래 붙잡고 싶었다.

교실 전체가 아직 북적이는 사이,
나는 창가에 서서 교실을 슬쩍 둘러보았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시연과 준호는 여전히 실랑이 중이었고,

나는 그 복잡한 틈에서
하윤과 눈이 마주쳤다.

그 애는 수줍게 웃으며 입 모양으로 말했다.

"고마워."

그리고 나는,
이 게임이 끝나서
'시원섭섭하다'는 말을 몸소 느끼고 있었다.

___

26화 (2) "좋아했거든. 처음부터."

그 시각 교실 한쪽에서
공개된 마니또 리스트를 확인하던 이보민이 멈춰 섰다.

"...어?"
보민이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내 마니또, 민규였어…?"

그 목소리에 내가 고개를 돌렸을 때,
수현이가 이미 보민이 쪽으로 다가가 있었다.

"보민아."

보민이는 고개를 들었다.
"응?"

"고마웠어."

교실 한쪽 빈자리.
둘은 나란히 앉았다.
왁자지껄한 교실이었지만,
그 자리만은 조용했다.

"너가 내 마니또였어? 그리고.. 나는 현우 마니또였어.
근데... 사실은 너를 더 많이 챙겼어."

보민이의 눈이 살짝 커졌다.

"왜?"

수현이는 고개를 숙였다가
잠시 뒤, 조용히 입을 열었다.

"좋아했거든.
처음부터."

보민이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사실...
너가 받은 핸드크림도, 핫팩도, 노란색 메모지도 다 나였어."

수현이의 목소리는 살짝 떨려 있었다.

"근데 그러다 보니까,
정작 내 진짜 마니또였던 현우를 거의 못 챙겼어.
그게 계속 미안했어."

"..."
보민이는 조용히 수현이를 바라봤다.
어딘가 복잡하면서 멍하게 얼굴로.

"..그래서 오늘 말하고 싶었어.
마니또 게임은 이제 끝났지만,
내가 너를 챙긴 건.. 게임 때문이 아니었다는 거."

보민이의 입술이 아주 조금 떨렸다.
그리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완전 몰랐어.. 난 너가 내 진짜 마니또인줄 알았어."

수현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 더더욱 몰랐어. 너가 나를 좋아했다는 걸."

보민이는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그 표정에는 놀람과, 따뜻함과, 약간의 감동이 섞여 있었다.

"그동안 고마웠어.
진짜 많이."

"나도. 앞으로 더 가까이에서 챙겨주고 싶어.
그래도 될까?"

"...응..!"
떨리는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였지만
명확하고 단호한 한 마디였다.

크리스마스 날이 지나고
서로를 향한 마음이 조용히 닿았다.

게임은 끝났고,
드디어 서로를 향한 진짜 마음들이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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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악 닭살 돋는다... 이제 곧 이 소설도 끝나가는데 저도 시원섭섭하다는 말을 몸소 느끼고 있어요.. ㅎㅎ 27화가 마지막이랍니다 :)
팬아트 그려주신 익명분! 너무너무 감사드립니다💜💜 너무 이뻐요!
마지막에서야 공개하는 관계도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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