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curious.quizby.me/Yeah…나는 기억을 포기했고, 포기한 기억은 꾸준히 휴지통에 쌓여 흐르고 넘쳤다. 그 다음 봄이 오기까지 일기에 수없는 문장과 그림을 그렸다.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매일 밤 노력하며 썼건만 결국은 이미 버린 기억만 그리워졌다. 대실패다.
천야의 목소리를 늘 상기하다 까먹는 순간이 오면, 두려워서 손을 떨지 아니할 수 없었다. 얼른 카세트 테이프를 오디오기에 넣고 스피커 바로 앞에 귀를 댄다. 희미한 소음 사이로 어렴풋이 들리는 천야만의 독특한 음색. 눈물 겨워 손으로 눈을 살짝 가리면 보일듯한 아득한 천야의 실재가 보고 싶었다.
- 새청아, 나와서 진지 들어.
안전함이 오히려 불안함으로 번져갈 때의 기분이 어떤지 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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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으로 사람을 구하러 온 구명보트가 섬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고 돌아갈 때, 여느 사람은 누구나 다행이라고 생각하겠다만 천야는 달랐다. 섬 바로 앞 해변가에서 누군가는 멀리서 오는 보트를 보고 기쁨에 겨워 바다에서 환호성을 지를 동안 배는 두 팔 벌린 그 누군가를 깔아 뭉갰을 거라고.
늘 남들과는 다른 생각을 가진 천야가 좋았다. 영원히 이 꿈에서 깰 수 없다면 그것마저 누군가에게는 기쁨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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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청아, 요새 기분은 어떠나.
어제, 엊그제, 사흘 전 저녁에도 물어본 것 같은 질문을 또 들으니 속에서 신물 맛이 혀에 끼쳤다.
- 똑같아.
화의에게 할 수 있는 말에도 선이 있다. 그 선을 넘으면 불편해지는 것은 화의가 아니라 자신이기 때문에 더욱 말을 아낀다. 최소한 천야를 찾기 전까지 그러고 싶었다.
- 지구 어딘가에 천야가 있기는 한 걸까.
- 네가 기억하는 그 기억에서 네가 살았던 곳은 먼 옛날이야. 천야는 이미 죽고 없겠지.
그래, 안다.
- 나 노래나 들을래.
안 그래도 조용한 일상에 조용한 음악은 구역질난다. 시끄러운 펑크나 들으며 집 안을 배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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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가 깨질 듯이 진통 알약을 씹어 먹었을 때, 또한 그것을 씹어 먹는 것이 아니라 물을 사용해 통째로 삼켜야 한다고 처음 들었을 때 가장 비참하다고 느꼈다. 내가 스물 가을에 겪은 일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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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으면 끝인데, 생전에 내가 죽어도 꼭 네 곁으로 돌아가겠다 약속했던 것이 떠올라 가슴이 괴로웠다. 고작 손가락 걸기뿐인 허접한 약속이 뭐라고 이 야밤에 심장을 울리게 만드는지. 하늘과 육지의 연장선에서 이미 그것은 너무나 평행한 직선이라 만날 수 없던 것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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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기 시작했던 것은 나이가 스물 지나 스물넷에 다다랐을 때다. 처음 잡아본 자판기와 펜이 지나치게 어색해서 잡는 법으로만 하루를 태운 적도 허다하다. 결국 세상에서 가장 괴이한 종이책을 출간했다. 누군가에게나 처음의 실수는 늘 있다는 천야의 말에 깊은 감동을 받아 밤에 몰래 눈물을 흘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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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어린 시절은 폐장한 놀이공원과 같다. 다 쓰러져가는 폐가에, 더러운 오물이 뒤섞여 흑색 분위기를 자아내지만 오물들은 내게 전부 우울, 공상과 기쁨, 정신병이 섞여 만들어진 겉껍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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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위에 뜬 구름이 동그랬다. 그 어디 하나 각져 있지 않은, 폐장한 놀이공원 위에 뜨기엔 역시 어울리지 않는 모양새였다.
사진 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