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어의 손은 물이 새지 않는다 [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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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01 22:00조회 65댓글 4빙화
BL / 급전개 주의





인어의 손은 물이 새지 않는다



다이아에게 바깥세상에 대해 알려주기 시작했다. 어느 날은 지리, 어느 날은 동물, 또 어느 날은 나라ᆢ. 다이아는 예상과 달리 내 말을 순순히 잘 따랐다. 이야기가 만족스러워서 그런 걸 수도 있다만, 어쨌든 잘 듣는 게 어디야. 수조에 기대 다이아와 말을 주고받는 시간이 길어졌다. 인어와 노닥거리냐며 규씨에게 좀 깨지긴 했지만 뭐, 그리 상관할 건 아니었다.

다이아는 여전히 예뻤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야기들에 눈이 더 빛나니 전보다 더 예뻐진 것 같았다. 이야기는 어느샌가 주제에서 벗어나 나에 관해 얘기하며 끝난다. 다이아는 웃음이 많아졌고, 나도 그에 따라 웃는 일이 많아졌다. 한 달 전과 비교하면 엄청나게 큰 변화였다. 어떤 날은 다이아가 먼저 질문을 던질 때도 있었다.


"우리 결혼하면 안 돼?"
"갑자기?"
"응. 난 너 좋은데."
"저번에 말했지 않나? 대한민국은 호모포비아가 많다고. 그놈의 유교 사상이 머릿속에 딱 박혀서 동성 결혼이 합법이 아니라고 이 자식아."

말하면서 파일철로 다이아의 머리를 딱 소리나게 쳤다. 다이아는 작은 외마디 비명을 지르곤 복수를 하겠답시고 수조 안의 물을 내 쪽으로 튀겼다.


"그만, 그만. 미안해 내가."
"얼마나 아픈지 알아?"
"엄살은. 근데 너 날 사랑하긴 해? 결혼은 좋아하는 게 아니라 사랑해야 하는 거야. 그리고 애초에 인간이랑 인어랑 결혼을 어떻게 하냐?"
"지금 엄청나게 사랑하는데.. 내가 초반에 널 끌어당긴 게 뭔 뜻인지 아직도 몰라?"

말문이 막혀 멀뚱히 서 있다가 다이아가 대화의 주제를 바꾸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대충 어떤 뜻인지는 알았는데. 이렇게까지 진심일 줄은 몰랐지.
다음날, 더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내가 생각을 해봤는데,"
"또 이상한 망상 했으면 거기서 그만둬."
"나 바깥에 나갈래."

뭐? 나 백수 되라고? 아니 내 말 좀 들어봐 이 인간아! 다이아가 저를 째려보아도 이미 머릿속은 충분히 어지러웠다. 다이아는 꼬리로 물을 세게 치며 말 좀 들어보라고 소리를 냈다.


"아니, 나 나가서 인간 될 거야!"
"뭐?"
"인간 돼서 너랑 결혼할 거라고!"
"그게 대체 무슨 소리야?"

미간이 좁혀졌다. 내 손안에 물과 함께 머물던 다이아가 빠져나간다. 인어와 다르게 인간의 손은 물이 샌다. 인어는 인간을 언제든지 떠날 수 있단 말이다.


"안돼. 너가 가면 나 잘려."
"그 이유로 반대하는 거 아니잖아. 널 버리고 갈까 봐 그러는 거 다 보여. 나 너 안 버려. 내가 널 어떻게 버려? 바다로 돌아가서 문어 마녀한테 소원 빌 거야. 인간 돼서 꼭 돌아올게. 약속해."

어린 시절 읽은 인어공주의 인어는 인간이 되면 목소리를 잃었다. 다이아를 바라보자 어떤 뜻인지 알고선 걱정하지 말라 했다. 요즘 시대가 이런데, 그냥 돈만 주면 다 된다고. 그래도 당장 다이아를 내보내는 건 어려웠다. 사실 다이아는 우리 회사에서 불법으로 포획된 인어다. 만약 고발하고 잘린다 해도 마땅히 일할 곳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생각할 시간을 구했다.




"송씨, 결과가 이게 뭐야? 인어랑 놀아나면서 이딴 식으로 할 건가? 오늘부로 해고일세."

불법을 하도 많이 저지르는 곳이라 정당한 해고 사유 그딴 건 바라지도 않았다. 퇴직 연금? 어차피 주지도 않는데 왜 있는 거지. 이딴 마인드로 사무실 짐을 간단히 챙기고선 다이아에게 달려갔다.


"다이아, 이거 입어."
"뛰어 왔어? 자켓은 또 왜? 뭔 일이라도 있어?"
"여기서 나가고 싶다며, 빨리 입어."

진짜? 진짜지?? 사랑해! 다이아는 환히 웃으며 자켓을 몸에 둘렀다. 다이아를 수조에서 꺼내 타칭 공주님 안기 자세로 들었다. 다이아는 신나서 꼬리를 붕방 흔들어댔다. 그래서 더 무거웠다.


"으 얼마나 먹은 거야. 이 돼지 인어."
"돼지라니! 말이 심하시네. 꼬리가 무거운 거거든!"
"목에 팔 둘러, 안 떨어지게."
"헉 방금 좀 설렜다."
"뭐래."

그렇게 긴 연구관 복도를 하염없이 달렸다. 다이아는 몇 번이나 내 손에서 미끄러졌지만 그럴 때마다 수없이 고쳐 잡았다. 이젠 내 손의 인어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인간의 손은 물이 샌다던데 뭐 어때, 인어가 그 아래를 받쳐주고 있는데.



"가기 싫다.."
"너가 먼저 간다며. 빨리 가, 가서 인간 돼서 나 찾아와. 지금 안 가면 나 진짜 너 못 보내."
"뽀뽀해주라."

허리를 숙여주자 다이아는 바닷속에 잠겨있던 팔을 내 목에 두르곤 입술을 맞붙였다. 인어와의 키스는 짜다. 미끄럽기도 하고, 상큼하기도 하다. 확실한 건 인어의 눈물도 인간과 같이 짜단 것이다.

다이아가 바닷속으로 형체를 감춘 뒤 무거워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겼다. 두 손엔 아직도 미끄덩한 감촉이 남아있는 것 같았다. 인어와의 몇 달간 추억이 이젠 내 손에서 흘러내린다. 막아줄 인어가 없다. 흐르는 눈물을 닦지 않고 걸었다.















그로부터 1년 뒤.
작은 수족관에서 일하고 있다. 전에 다니던 회사는 내가 불법으로 저질렀던 일들로 약점을 잡을 수 있다 판단한 건지 나와 인어를 굳이 찾지 않았다. 애초에 인어는 찾을 수 없긴 했다.

그래서 인어는... 그 뒤로 소식이 없다. 그럼 그렇지. 인어에게 정을 주지 말라던 규씨의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했다. 너무 미웠다. 짜디짠 사랑을 남기곤 사라졌다. 오로지 내 마음속에만 고여있었다. 차리리 죽었다고 하면 마음이 편할까. 인어라 부고 소식도 모르네. 다른 사랑을 찾고 싶었지만, 자꾸만 다이아와 겹쳐 보여 일찌감치 포기했다. 그냥 이대로 살다 죽는 거지 뭐. 꾸밀 수조를 들고선 오랜만에 생각난 다이아를 떠올렸다.


한참 수조 꾸미기에 열중하고 물을 채우고 있었다. 앞엔 어떤 사람이 다가왔는데 저는 쭈그려 앉아 수조에만 온 신경을 썼기에 쳐다보지도 않았다. 앞에 마주 보고 앉은 사람은 신입인지 들고 있던 파일철을 옆에 내려놓고 소매를 걷었다. 희고 매끈한 피부. 지금은 딱히 도와줄 게 없는데.
그때, 그 사람은 갑자기 채워지던 물을 손으로 퍼올라 제 앞에 내밀었다. 그 손은 담긴 물이 흘러내리지 않았다. 놀라서 고갤 드니 익숙해 미운 얼굴이 있었다.





"그거 알아? 인어의 손은 물이 새지 않는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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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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