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감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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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16 18:00조회 45댓글 0해나
청춘이 다 무슨 소용이냔 말, 가끔은 정말 그 말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부지런히 파랗게 번지던 시간들은 어느새 손바닥 위에서 부서져 내리고, 그 마지막 빛을 붙잡고 있겠다며 허둥대던 우리의 숨결은 지금 와선 모두 흩어진 먼지처럼 희미하기만 하다.

푸르던 하늘도, 맹세를 섞어 입맞춤을 나누던 그 시간들도 달이 차고 기울면 결국 솜사탕의 부스러기처럼 사라져 버렸다. 한때는 혀끝에서 달콤하던 것이 어쩌다 이렇게까지 씁쓸해졌을까.

그래서일까. 청춘이 왜 이리 아픈지, 나는 아직도 그 이유를 모른다. 모두가 아픔을 숨기고 사랑이라는 연극을 해내는 건지, 아니면 아픔을 감당해야만 비로소 사랑이 가능해지는 건지. 그 둘의 경계는 늘 새벽 안개처럼 흐릿해서 손을 뻗으면 흩어지고, 가까이 다가서면 시려왔다.

내가 사랑했던 것은 퀴퀴한 냄새가 밴 매트리스도,
빛이 다 빠진 벽지 무늬도 아니었는데 왜인지 그날의 공기만은 자꾸 목울대를 타고 올라와 날 역명하게 만든다. 이 감정은 무엇인가. 그리움?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연정? 혹은 잊지 못해 매달리는 나 자신의 어리석음인가.

어른들은 말한다.
지나고 나면 모든 고통도 청춘이라는 이름의 추억이 된다, 라고. 그러나 나는 그 말이 늘 잔인하게 느껴진다. 난 내가 견뎌냈던, 숨 한번 제대로 쉬지 못하고 바닥에 엎드렸던 그 밤들을 영원히 잊고 싶지 않다. 그 시간을 기억해주는 누군가가 없었다면 적어도 나는 나 스스로를 기억해야 하니까.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던 아득한 순간들을 내가 나마저도 잃어버리는 날이 올까 봐 두렵다. 왜 우리는 그렇게 아팠던 시간조차 끝내 사랑하게 되는 걸까. 청춘은 참 부당하다. 미워해야 마땅한 기억조차 마치 반짝이는 유리 조각처럼 손에 쥐여주지 않나.

우매한 늙은이들은 청춘 뒤에 숨어
불행을 동경하듯 말한다.
“그땐 힘들었지만, 그래도 좋았지.”
청춘이라는 작사는 우리를 자꾸만 속였다.
아름다움 하나에 마음이 멎을 만큼 흔들리게 하고,
서슬퍼런 새벽 두 시에 온몸이 갈라지는 고통을 겪으면서도 결국엔 어떤 장미 한 송이를 끝내 끌어안도록 만들었으니까.

무섭다.
내가 사랑한 것이 기만은 아니었을까.
영원할 줄 알았던 분향의 한 조각이었을까.
빠져나오려 발버둥쳤던 애트리스의 큐리한 냄새,
그것조차 청춘이라 불리게 되는 날이 온다면…
그건 너무도 잔혹하지 않겠는가.

그러니 부디, 내가 벗어나고 싶어 몸부림치던 그 시간들을 청춘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으로 포장하지 말아주세요.

나는 아직도 청춘이 두렵다. 다시 그 안에 가둬질까 봐, 다시 그 푸른 감옥을 사랑하게 될까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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