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결말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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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14:14조회 52댓글 3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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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요. 너는 네 죽음에 대해 생각해본 적 있어? 죽은 뒤에 어디로 갈지 상상하는 것들 말야.



요즘 내 제일 큰 관심사는 한요였다. 며칠간 내내 한요랑만 붙어있었으니 당연한 말일지도 모르겠지만. 해피 엔딩을 만들기 위해서는 마지막 주인공의 죽음이 외로워선 안 되니까 그냥 친한 척만 해 주려고 했는데 어쩌면 실은 진짜 조금 친해져 버렸을지도 모른다.


보통 고독사로 종의 멸망을 달리하는 행성은 본인의 삶과 죽음에 대해 필연적으로 깊게 생각하게 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한요가 평범하게 대답할 리는 없다고 생각했지만.


- 아니?


그렇게 말하고 한요는 다시 하던 일을 이어 하기 시작했다. 한요는 이상할 정도로 비현실적이다. 비현실적이기도 모자라서 논리적이지도 않고, 가끔 보면 생각도 없어 보였다. 이 각박한 세상에서 어떻게 인류의 마지막이 되었는지도 의문이다. 난 기가 차서 다시 물어봤다.


- 한 번도?
- 한 번도.


독백이라도 나와줬으면 좋겠는데 하필 이럴 때에만 글자들은 조용했다. 한요는 뜨개질에에 집중 중이었다. 손재주도 안 좋으면서 하는 건 많았다. 한요가 뜬 초록색 목도리는 여기저기 실밥이 풀려 있다. 목에 매면 따끔거리겠어.


- 아놔! 또 풀렸네. 이거 어떡하지.


한요는 죽음 같은 철학과는 거리가 멀다. 어쩌면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고 싶어하는 걸지도 모른다. 다만 반대로 창의적이고 자연적인 것들에는 관심이 많았다. 꽃을 키우는 것이 대표적이다. 꽃들은 가능성이 많고 예측 가능하지 않고 매우 자연적이었다.



- 그렇다면 만약에.



한요의 반응을 끌어내기 위해 가끔씩 사용하는 단어가 있다. 그게 만약에. 한요는 만약에, 하는 단어만 나오면 재미있는 게임이라도 시작된 것처럼 눈을 빛냈다.



- 무슨 짓을 해도 특정한 날짜에 죽게 되는 사람을 보면 넌 어떻게 할 것 같아?



한요의 손이 풀렸다. 한요가 놓친 실이랑 바늘이 바닥에 마구 나뒹굴었다. 한요는 멀티가 안 된다. 하나에 몰두하면 하나는 완전히 잊는다. 그 바보같은 모습이 가끔 귀여울 때도 있었다.


- 그 사람이랑 나랑 무슨 관계인데?


이건 좀 어려운 질문이다. 난 한요를 쳐다보다가 손을 꿈틀거렸다. 음, 가깝다기도 좀 그렇고 멀기에도 좀 그런 사람인데. 그렇게 말하자 한요가 미간을 찌푸렸다.


- 그게 뭔 소리야?
- 복잡한데.
- 무슨 사이길래?


다시 생각해보니 먼 사이보다는 가까운 사이가 맞는 것 같다. 지금까지 어떻게 보면 동거 중이기도 하고, 그것도 며칠 동안이나, 어쩌면, 내 진짜 형체에서는 느껴보지도 못한 어떤 감정 같은 것을 느꼈을지도 모르고, 그동안······ 아, 아니, 아니다.


- 그냥 너랑 내 사이라고 하자.
- 그게 뭐야.


한요가 웃었다.


- 그렇다면 그냥 버리고 오면은 안 되겠네.
- 그냥 버리고 올 생각이었어?
- 나랑 상관도 없으면 그래야지. 운명에 순응해.
- 잔인해!


한요는 제 죽음을 저렇게 쉽게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까. 무거운 소재인데 너무 이야기처럼 가볍게 얘기한 것 같아 조금 미안해졌다. 심장이 조금 저릿하다.


- 그런 거면 어떻게든 도와야지.


나도 모르게 발을 헛디뎌 넘어졌다.


- 담, 담아! 괜찮아?


내가 바보같이 넘어져도 웃으면서 놀리지 않아줘서 좋다.


- 바보야. 조심하면서 다녀.


진짜 걱정받는 한요의 절친한 사람이 된 것 같아서 좋다. 외계에서는 익숙하지 않은 ‘감정’같은 것들이 뇌리를 덮친다. 어색해. 어색해. 모든 게 어색했다. 심장이 뛰는 감각이나 온 몸을 마비시키는 한요 같은 것들이.


그러니까.


모르는 사람이라면 그냥 지나칠 죽음이

내가 됐을 때 진심이 되는 게 좋았다.


주먹을 꽉 쥐었다. 이야기의 ‘결말’이란, ‘끝’이란, ‘엔딩’이란. 그렇게 쉽게 바꾸려 들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우주 연방은 그렇게 쉬운 상대가 아니다. 우주 연방이 ‘끝’이라 하면 그것은 끝이었고, 우주 연방이 ‘배드엔딩’이라 하면 그건 배드엔딩이었다. 우주 연방에게서 얻은 죽음은 바꿀 수 없는 것이었다. 그렇게 한요는 죽는다.


고작 십 일이 남았다.


우주 연방의 말단 9급 공무원 가지고는 작은 행성의 방대한 운명을 꺾을 수 없다.


미안해, 한요.


난 널 구할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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