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컥. 또각또각또각. 스르륵. 누군가 이리로 다가오고 있다. 전화기 너머로 신호음만 반복되었다. 제발, 제발 좀 받아라•••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때 문 너머에서 말소리가 들렸다.
—어. 지금 나가려고. 약 사다둔다는 걸 깜빡했지 뭐야. 애는 아직 자. 응. 글쎄, 잘 모르겠네. 허. 당신은 왜 나한테 화를 내고 난리야? 나도 지금 충분히 바빠 죽겠다고!
그 뒤로는 듣지 못했다. 무슨 말을 했을까. 나에 대한 이야기일까? 엄마는 왜 목소리를 높인 걸까. 설마 또 밤마다 아빠에게 맞는 건 아니겠지? 아닐 거야. 엄만 강해. 정신 똑바로 차려야지.
문득 휴대전화를 들었다. 전화는 끊겨 있었다. 분명 끊음 버튼을 누르지 않았는데••• 그렇다면 상대쪽에서 눌렀다는 말이 된다. 아, 확인했구나. 곧 전화를 걸어주겠거니, 하며 고개를 돌렸다. 지금은 아무와도 대화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콱 죽어버릴까? 엄마는 아마 울지도 몰라. 아빠는, 글쎄. 잘 모르겠다. 감각이 무뎌진다는 건 그럴 만한 일을 수도 없이 많이 겪어보았다는 것이다.
폭력은 위험하다. 내 동생 윤이는 폭력으로 죽었다. 학교폭력이였건 가정폭력이였건 그 애가 죽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시기는 내가 가장 우울했던 시기이기도 했다. 다 죽여버리고 싶었고 같이 죽어버리고 싶었던 비참한 한때. 그러나 윤이만은 살길 바랐다. 날 두고 먼저 가버리면 안 되지. 적어도 나보다는 네가 오래 살아야 할 거 아니야. 이 등신같은 놈. 다음에 보게 되면 머리통을 깨버릴 거야.
마음속에 다들 꿈 하나쯤은 품고 살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내게는 그 무엇도 없다. 꿈? 그것도 형편이 넉넉할 때나 마음껏 꿀 수 있는 거지. 꿈을 꾸는 것에도 여러가지가 필요하다. 작은 울타리 안에서 평생을 살아 바깥 세상은 꿈 꾼 적도 없는 사람이 바로 나라면, 그리고 내 동생이라면 어떻겠는가. 즉, 꿈을 꾸는데도 지식과 배경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게 없는 사람들은 꿈을 꿀 수 없고 말이야. 알기나 할까, 비참함에 모든 걸 헤치고 싶은 마음.
다들 비극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 비극에서 멀어질 수 없다고 하면 어쩌려고? 멀리서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다면 어떡할 건데? 그런 것도 책임지지 않고 명언이랍시고 끄적거린 말들은 내겐 그저 지워야하는 존재일 뿐이다. 꿈도 꿀 수 없는 사람이 비극을 어떻게 희극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런 말들을 하며 잘난 척하는 사람들은 한 순간에 동생을 잃고 나뒹구는 심정을 알까.
내 상황을 아는 자들은 늘 나를 동정하고, 연민어린 시선들을 주며 희망을 가지라고 등을 두드리곤 한다. 되지도 않는 희망 가져서 뭣 하려고. 희망은 되레 독이 되기도 한다. 불필요한 희망이 사람을 제일 힘들게 만들기에. 그건 기대이다. 기대를 하면 언젠가는 실망하기 마련이다. 나는 뼈저리게 느꼈다. 동정은 속에서 끝나야 한다는 것을. 겉으로 동정을 내뱉는 순간 동정받는 사람이 얼마나 비참한지는 직접 겪어 봐야만 알 수 있다. 그 더럽고 절망적인 감정을.
내게 필요한 건 부질없는 꿈이나 동정 따위가 아니라 구원이다. 어째서 가진 자들만이 구원의 손길을 베풀 수 있는 건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버린 내 동생처럼 그것들도 사라질 수 있는 건지. 고요하게 내려앉은 눈송이가 밉고 미운 날 밤이면 나는 몸을 둥그렇게 말고 아랫목에 누워 잠을 청한다. 조금이라도 조용해질 수 있도록. 네가 아무 걱정없이 사라져버릴 수 있도록.
https://curious.quizby.me/tCk7…+(덧)
어느덧 11월에 접어들었습니다. 그간 다들 안녕하셨는지요. 정말 오랜만에 올리는 글인 것 같은데도 날짜 수를 세어보면 그리 오래 되지도 않았어요. 날씨가 많이 춥던데 따뜻하게 지내셨으면 좋겠네요.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