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6-05 20:12•조회 15•댓글 0•log
사랑한다는 말로는 부족해서, 몸으로 나의 사랑을 표현하고 싶었다.
항상 네 집에 먼저 찾아가 문을 두드리고, 동시에 네 마음도 두드린 것은 분명 내가 처음이었는데.
너는 어느 순간 다른 남자와 사랑을 나누고 있다. 내 눈 앞에서 키스하고, 온몸을 더듬고... 나는 도무지 참을 수 없다. 질투가 나서? 아니, 전혀. 내 것을 뺏겼다는 모멸감이었다.
- 내가 해수를 가졌어. 넌 패배했다고.
' 패배 '. 내가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말이자 가장 좋아하는 말. 보통 실패와 패배라는 말은 듣기엔 싫지만 말하기엔 좋은 법이다. 나는 어릴 적부터 줄곧 성악설을 따랐으니...
- 지랄하지 마! 내가 곧 다시 되찾을거야... 해수도, 이 상황도...
나는 그렇게 항상 내 자신에게 최면을 걸어왔다. 해수는 내가 되찾을 수 있다고, 단지 타이밍만 보는 것이라고...
*
- 겸우야, 나 이번에 결혼해.
해수가 내게 말한 충격적인 말은 바로 그것이었다. 청첩장과 함께 밝힌 결혼 소식. 물론 해수가 결혼을 하지 못해 불행해진다면 그건 그것대로 싫었다. 보통은 좋아하는 사람이 행복하길 바라니까.
- 아, 그래...? 그렇구나... 축하해.
축하한다는 말 빼곤 할 말이 없었다. 사실 축하하진 않았다. 나는 ' 진짜 ' 실패자가 된 것이다. 그 자식에게 해수를 뺏긴, 패배자.
- 결혼식 와줄거지?
해수는 내심 기대하는 눈빛이었고, 난 늘 그렇듯 눈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 그럼, 물론이지.
*
집에 돌아온 그날, 나는 청첩장을 완벽히 산산조각 내어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내가 타이밍만 보는 동안, 아니. 내가 병신 같이 해수를 놓치고 있는 동안, 그 자식은 해수에게 온갖 기름 발린 말로 꼬드겨 결혼까지 따냈겠지.
- 하, 씨발... 진짜 역하네.
산산조각 난 청첩장을 던져놓은 쓰레기통에서는 영문 모를 악취가 났다. 이것도 기분탓일까? 아니, 절대 그러지 않을거다.
- 윤해수, 니가 어떻게 나한테...
내가 해수에게 해준 모든 물건들만 도합해 몇 백 만원은 그냥 넘어갈 것이다. 내가 그렇게 내 모든 것을 바쳤는데, 아버지에게 내 왼 뺨까지 내어주며 그리 바쳤는데... 윤해수, 너는 그럼에도 물질보다 사랑이었단 말이지.
나는 결심했다. 윤해수 겉에서 맴돌며 둘이 이혼하는 날까지 기다리겠노라고.
*
윤해수가 결혼한지 이제 기껏해야 2년. 윤해수는 지금 온 얼굴이 눈물 범벅이 된 채 내 집 현관문을 긁고, 두드리고, 발로 차며 나를 애타게 부르고 있다.
나는 현관문 앞에 서서 윤해수만 들릴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 해수야, 어때. 5년 전의 내 기분이 느껴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