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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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8-16 23:33조회 65댓글 2시원
저는 투명 인간입니다.
오늘로 3443일째네요.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었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저는 아직도 그게 의문입니다. 세상은 저를 보지 못합니다. 고로, 궁금해하지도 않네요. 이번 생에 행복하게 살기는 글렀습니다. 썩 기분이 좋지는 않습니다.

어제는 거리를 거닐다 한 사람을 봤습니다. 조금은 희미했습니다. 저는 그 사람과 눈을 마주친 것 같았습니다. 도대체 누구일까요? 꼭 만나보고 싶습니다. 어쩌면 저와 같은 사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3444일째입니다.
오늘도 거리에 나가 걸었습니다. 무려 여섯 시간이나요. 무척이나 덥고 습했습니다. 얼마나 걸었을까, 유독 뚜렷이 윤곽이 보이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저는 그 사람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습니다. 그 사람은 저를 똑바로 바라보았습니다. 분명해요. 저를 본 것입니다. 솔직히, 조금은 놀랐습니다. 내일 그 사람을 저의 집에 초대하기로 했습니다. 기대됩니다.

3445일째입니다.
그 사람을 만나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레’라는 예쁜 이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레도 저와 같았습니다. 자신은 2311일째라고 했습니다. 이레는 참 특이한 아이였습니다. “투명해지는 건 기회야. 마음껏 자유로워질 수 있잖아.”라는 말을 했거든요. 저는 다시 친구가 생긴 걸까요? 저는 누군가에게 기억되었습니다. 또,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투명 인간일까요? 머릿속이 복잡합니다. 한 번 더 이레를 만나보고 싶습니다.

하루가 지났습니다.
아, 저는 더 이상 투명 인간이 아닌가 봐요. 이레를 만나러 가는 길에 저의 그림자를 보았습니다. 그 아이를 위한 붉은 히아신스 꽃을 샀습니다. 그런데, 만나지 못했네요. 시들기 전에 어서 주고 싶었습니다. 어디로 가버린 걸까요.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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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붉은 히아신스의 꽃말은 '기억'이라고 합니다 😉
https://curious.quizby.me/Si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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