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없음.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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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03 08:03조회 107댓글 5이한솔
...정적. 침묵. 잿빛의 땅 위에 흩뿌려진 잿빛의 공기.

그는 이미 죽어 영혼의 존재가 되었다. 모든 감각은 마비되었고, 기억은 파편처럼 흩어졌다. 과거의 그는 사라지고, 오직 '미친 광대'라는 잔재만이 남아 의미 없는 몸짓을 반복했다. 그의 영혼은 영원히 지속될 것 같은 텅 빈 공연 속에서, 무채색의 영혼 세계를 정처 없이 떠돌았다.

에러의 영혼은 움직였다. 녹슨 태엽 인형처럼 딱딱한 소리를 내며 그의 사지가 움직였다. 무표정한 가면 뒤의 눈동자는 텅 비어 있었다. 손목에 감긴 채 닳아버린 주름 장식은 의미 없는 몸짓의 궤적을 그렸고, 닳아 해진 신발은 아무 소리도 없는 발걸음을 반복했다. 이곳은 죽음이 너무나 당연해서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무채색의 세계였다. 그의 영혼이 던져진 영혼의 세계, 모든 것이 고요하고 무감각했다. 감정은 그림자조차 드리우지 않는 황량한 들판이었다. 에러는 이 메마른 공간의 일부였다. 누구도 그를 보지 않았고, 그는 누구도 인식하지 못했다. 그는 그저 광대였다. 웃음을 잃은 채, 존재하지 않는 관객을 위해 영원히 무의미한 쇼를 반복하는, 미친 광대. 그에게는 감정이라는 것이 없었다. 과거의 모든 고통도, 현재의 무의미함도 그에게는 그저 존재할 뿐이었다.

터벅, 터벅, 탕.

규칙적인 소리가 무감각한 침묵을 깨며 흩어졌다. 그의 발걸음은 잿빛 도시의 가장자리에 있는 작은 원형 극장 앞에 멈춰 섰다. 무대에는 이미 오랜 시간 켜져 있었을 것 같은, 바래고 흐릿한 조명만이 불안하게 깜빡였다. 이곳의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생명력 없는 곳이었다. 에러는 이유 없이, 그 희미한 조명 아래로 비틀거리며 걸어 들어갔다. 그가 무대에 오르자, 텅 빈 객석이 그를 맞았다. 언제나처럼, 아무도 없었다. 그는 천천히 춤을 추고, 팔을 휘두르며 공중제비를 넘었다. 아무도 듣지 않을 히스테리성 웃음만이 메마른 입술에서 흩어졌다. 텅 빈 몸짓, 텅 빈 웃음. 그것이 그의 전부였다. 모든 것은 그저 반복이었다.

그때였다.

퇴색된 조명 아래, 홀연히 무대 위에 작은 그림자가 피어올랐다. 흐릿했던 빛이 모여들어 형상을 띠기 시작했다. 에러의 기계적인 몸짓이 순간 멈칫했다. 그것은 낯선 것이었다. 이 무감각한 세계에서 그의 무의미한 일상을 깨뜨린, 유일한 이질감이었다.

그림자가 또렷해졌다. 무대 중앙에는 자신처럼 빛나던 광대가 서 있었다. 에러의 몸이 알 수 없는 떨림으로 경직되었다. 그 빛나는 존재의 주위로는 뱀처럼 구불거리는 어둠의 실타래가 꿈틀거렸다. 그리고 그 어둠 속에서 한 인물이 걸어 나왔다. 너무나 익숙해서 비명조차 나오지 않는 얼굴. 백련. 그의 입술은 에러를 향해 상냥하게 미소 짓고 있었지만, 눈빛만은 뱀처럼 냉혹하게 번뜩였다. 그 싸늘한 환희 속에는 '질투'라는 추악한 독이 잔뜩 서려 있었다.

그것은 에러가 죽은 그날 밤의 환영이었다.
환영 속 백련은 빛나는 광대에게 '색을 잃은, 시들고 매마른 사과'를 건넨 뒤, 홀로 무대 위에 섰다. 그리고 에러가 그토록 사랑했던 군중의 광기 어린 찬사를 받고 있었다. 에러를 대신한 무대 위의 백련은 에러의 명성과 자리를 완벽하게 강탈한 듯했다. 모든 것이 순식간에 빼앗기는 절망적인 광경이었다. 에러는 모든 것을 '보고' 있었다. 이해할 수 없지만, 느껴지는 무언가가 있었다. 과거의 희미한 잔해가 그의 텅 빈 내면을 파고들었다.

에러는 몸을 짓누르는 "도려낼 수 없는 깊은 통증" 을 느꼈다. 심장이 산산조각 나는 듯한 감각, 뼈와 살이 뒤틀리는 듯한 고통. 감정이 사라진 그에게 처음으로 찾아온 격렬한 감각이었다. 그것은 분노도, 슬픔도 아닌, 그저 오직 통증, 오직 혼란 그 자체였다. 그 통증은 그의 텅 빈 가면을 찢어발겼다. 그의 무표정한 얼굴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갑자기, 에러의 몸이 뒤틀렸다. 기계적인 움직임은 끊어지고, 팔다리가 제멋대로 꺾였다. 얼굴 근육이 일그러지더니, 한쪽 입꼬리가 섬뜩하게 비틀려 올라갔다.

“크히힛, 아..하하하… 아하하하하하!!”

텅 빈 웃음소리는 이내 격렬한 조롱으로 변했다. 이 무감각한 세계를 비웃고, 배신을 조롱하며, 그리고 가장 처참하게는 자기 자신을 비웃는 듯한 웃음이었다. 그의 눈동자에 광기가 서렸다. 과거의 희망과 행복이 고통스럽게 뒤섞여 일그러진, 조커 같은 웃음이었다. 슬픔은 감춰진 채, 오직 조롱만이 울려 퍼졌다. 그는 웃었다. 왜 웃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그 웃음이 이전의 무의미한 히스테리보다는 훨씬 더 격렬하고 무언가 뱉어내는 듯하다는 것만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무채색 세계의 고요함이 그 웃음소리에 압도되었다. 웃음은 점점 더 격렬해지고 섬뜩하게 메아리쳤다. 에러는 더 이상 텅 빈 인형이 아니었다. 이제 그의 안에는 '미친 광대'와 함께, '뒤틀린 슬픔의 조롱자'가 깨어나 있었다. 그의 육체를 교대로 차지할, 기억을 공유하지 않는 두 인격이, 무채색 세계의 고독 속에서 잔혹한 희극의 서막을 열고 있었다. 텅 빈 무대 위에서, 에러의 일그러진 웃음은 찢겨진 가면처럼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 웃음이 멎자, 그의 눈은 멀어져 가는 지평선 끝의 흐릿한 빛 한 조각을 향했다. 그 빛은 또 다른 세상의 문인지, 혹은 이 무감각한 세계의 끝인지 알 수 없었다. 에러는 자신의 내면에 일어난 이 거대한 변화를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다만, 자신을 움직이는 새로운 충동, 그리고 그를 뒤흔드는 고통의 잔재만이 그를 이끌고 있었다. 그 안에, 아주 깊은 곳에는 아직 침묵하는, 작은 순수의 조각이 다른 두 인격에게 무참히 묵살된 채 희미하게 숨을 쉬고 있었다. 어쩌면 그 빛이 희미하게 숨 쉬는 순수의 조각에게 손짓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알 수 없는 세계의 어둠 속에서, 에러는 또 다른 시작을 향해 기계적인 발걸음을 떼었다.



p.s
있잖아요, 내가 원래 이거 단편하려 했는데.
요즘 필력이 딸려서 망해버렸으니깐.. 좀 이해를..
https://curious.quizby.me/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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