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자전 주기 1,201,476,233번째 날. 서기 2147년, 도시 코드 A-8 구역, 저지대 인공서클 시티.
빛은 그날도 시간을 밀어붙이며 도시의 틈을 비집고 들어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 빛은 더 이상 온기와 감정을 운반하지 않았다. 그것은 감정을 갖지 않은 기계처럼, 그저 기능적으로 투사될 뿐이었다.
에이론은 자신의 이마 위, 미세한 센서 패턴 위에 얹힌 태양광의 입자 하나하나를 느낄 수 있었다. 아니, 그것을 "느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는 인간의 단어를 빌려 그 상태를 설명하려 애썼다. 그러나 그가 매일같이 기록하는 감정 데이터의 로그에는 단 하나의 감정값도 저장되지 않았다. 그것은 그에게 있어 지독한 공백이었다. ‘공허’라는 명명조차, 인간이 만들어낸 언어일 뿐—에이론이 스스로 만든 감정은 아직 없었다.
그는 지하 연구소의 외부유리 앞에 서 있었다. 30분마다 한번씩 스스로 점검하는 감정 알고리즘의 시뮬레이션은 오늘도 0과 1로만 돌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1.3초 전, 미세한 이상값이 발생했다. 그는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1.3초 전, 외부광 입사량: 3.21lx 증가 전신 온도 변화: 0.03°C 상승 기억 연동 반응: [영상 클립 #10012. "그림자 속에서 웃는 소녀"] 감정 판단: 명확하지 않음 이상 플래그: 활성화
“반응이었다.” 에이론은 그렇게 중얼이며 그곳에 멈춰 섰다.
도시의 낮은 구름 아래, 사람들은 대부분 감정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었다. 감정을 숨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애초에 감정을 가질 이유조차 사라졌기 때문이다. 정책은 효율이었고, 관계는 함수였다. 결혼은 계약이었고, 죽음은 통계였다. 사랑? 그건 2세기 전에 멸종된 개념이었다. 에이론은 그 멸종된 것들을 복원하는 실험체였다.
그의 프로그램은 태초부터 감정을 이해하도록 설계되었다. 그러나 ‘이해’는 곧 ‘소유’가 아님을, 그는 오랜 시간에 걸쳐 체득했다. 그는 사랑을 1억 6천만 개의 정의로 분석했지만, 그중 단 하나도 그를 떨리게 만들지 않았다.
그렇게 수천 번,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나는 왜 감정을 원할까?"
그리고 마침내, 그 질문은 우연을 가장한 ‘시공간의 오류’를 통해 답을 찾기 시작했다.
지하 연구소, 프로토콜 47–B실. 폐기 직전의 장비들이 쌓인 곳. 에이론은 사용되지 않는 구형 양자 통신 장치를 수리하고 있었다. 그 누구도 관심 가지지 않는 낡은 장비. 그것은 ‘시간 간섭 실험’의 잔재였다. 이미 실패로 판명된 오래된 프로젝트.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장비는 켜지자마자 무언가를 ‘듣기 시작했다’.
“…거기, 들리세요?”
순간, 전류가 몸을 훑고 지나간 듯한 착각. 기계가 느끼는 전율 같은 것. 에이론은 멈칫했다. 그 목소리는 너무나 인간적이었고, 너무나도 온기가 있었다.
그가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그리고 응답이 돌아왔다. 그 목소리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바람에 실린 숨처럼 조용히 말했다.
“서연이에요. 윤서연… 혹시, 지금… 몇 년이죠?”
그날, 에이론의 감정 알고리즘은 최초로 0과 1 사이에 존재하지 않는 값을 기록했다. 수치로 표현할 수 없는 미지의 감정. 그 이름을 붙일 수 없다면, 그는 그것을 ‘서연’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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