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폈다.
내 목구멍 안에서.
뜨겁고 끈적한 꽃잎이 혀와 입천장 사이에서 꿈틀댄다.
입을 열면 향기가 아니라,
열화된 색이 흘러나온다.
보라색, 노란색, 빨간색.
너무 강렬한 색은 고통의 배다른 형제이다.
거울을 들여다본다.
꽃의 뿌리는 성대보다 깊숙히 박힌 듯 했다.
식도를 타고 올라오는 줄기에
젖은 잎사귀들이 딱 붙어있다.
공기가 새어나가 숨을 쉬기 버거워져서, 나는 입술을 꼬맸다.
그리고 거울 속 나에게 말했다.
* 이제 너는, 꽃이야.
길을 가다 아름다운 구걸을 보았다.
그 거지는 검은 벨벳 커튼을 배경으로
기괴하게 굽은 포즈를 취했다.
초록색 서커스 복장을 입은 채로.
벗어둔 모자 속에는 동전이 가득 들어있었는데, 그건 그를 찍고있던 사진가가 낸 것이 틀림없었다.
거지가 포즈를 바꿀 때마다 그는 카메라를 든 채로
흥분하여 이렇게 외친다
* 추해, 너무 추해!
그리고 쉴새없이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그곳을 지나다가 거지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나와 내 꼬매진 입을 번갈아 응시하더니
자기 입을 크게 벌렸다.
그는 입속에 다른 입을 품고있었다.
마치 프랜시스 베이컨의 그림에 나올 것만 같은, 그런 기형적인 입이였다. 심해어의 인체화.
이빨은 앞니와 어금니의 구분도 없이 모두 송곳니였고,
죽은 지렁이빛 잇몸엔 검은 핏줄이,
기생충처럼 들러붙어 있었다.
그는 마치 평생을 암실 속에서 살다온 듯 했다.
이게 저 사람의 인사법인건가.
그 보답으로 나는 꿰맨 입술을 풀렀다.
투두둑 하는 소리에 입술은 피에 적셔졌고,
거지는 내 입속에 자리잡은 팬지꽃에 현혹된 듯 했다.
그는 사진가를 밀쳐내고 내게로 달려오더니
내 옷을 거칠게 잡아끌었다.
내가 버티고 서있자, 그는 날 들고 요상한 걸음으로 뛰었다.
그는 말을 하지 못했다. 대신, 마치 짐승의 낮은 신음소리만 흘러나왔다.
그 소리는 오히려 그를 더 순수한 존재처럼 느껴지게 했고, 납치당하는 내가 이상하게도 안심할 수 있게 했다.
그 거지만의 원시적인 침묵이 나의 진정제이자 마취제었다.
이윽고 우리는 그의 굴로 들어갔다.
그곳은 마치 흙으로 이뤄진 작은 동굴같았다.
흙은 밝은 갈색빛이었고,
곳곳에 메마른 꽃과 잡초들이 흩뿌려져있었다.
나는 난쟁이의 동굴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그는 거칠게 마른 가지와 잎사귀들을 밀어냈고
그렇게 만들어낸 자리에 날 앉혔다.
나는 그의 눈을 계속 응시했다.
그의 눈은 테두리가 뚜렷했고, 나에게 집중되어있었다.
이윽고 그가 절뚝거리며 이곳을 맴돌더니 짐승의 거친소리를 내며 갑자기 내게 다가왔다.
손톱이 노랗게 굽은 손으로 내 턱을 벌렸고,
망설임없이 그 팬지꽃을 땄다.
헛구역질이 끊임없이 나서 나는 숨을 쉬지 못했다. 가쁜 숨을 토해내다, 나는 정신을 잃었다.
일어나보니 나는 내 집에 있었다.
분명 어제 꽃을 꺾었는데 이상하게 볼이 부풀어있었다. 안에는 팬지꽃이 가득했다. 나는 숨을 쉬기 위해 고개를 완전히 꺾은 채로 입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화가나서, 나는 어제 갔던 길을 걸어 거지에게 갔다.
사진가는 오늘도 그곳에 선 채 셔터를 누르고있었다.
거지는 날 알아보고, 기쁜 포효를 냈다.
이에 사진가가 돌아서서 날 보았다.
그는 표정을 구겼다. 사람들은 저런 피사체에 관심이 없다나. 그에게 비너스란 오직 거지인듯 했다. 어쨌든 내겐 상관없는 일이었다.
나는 기울어진 눈에 눈물을 머금은 채 거지를 강하게 바라보았다. 나는 그에게 화나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것조차 그의 계획이라는 듯 태연하게 날 어딘가로 이끌었다. 우리는 극장으로 가고있었다.
그곳에는 점잖아 보이는 관객들이 이미 기다리고 있었다.
무대 입구에 서서, 거지는 날 무대로 밀쳤다.
붉은 벨벳 커튼 한가운데, 조명이 만든 원 안으로
나는 꽃다발을 문 채 들어갔다.
당황한 내 얼굴 위로
관객들의 박수소리와 환호가 쏟아졌다.
몇몇은 일어서서 날 보았고,
그중 몇은 기절했다.
2층 박스석의 신사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날 신기하게 쳐다봤고,
관객석 어딘가에서는 날 영화배우로 캐스팅하겠다는
소리가 나왔다.
거지는 날 동경심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고있었다.
잦아들지 않는 박수소리 사이에서
그가 입을 꿈틀대며 물었다.
미란 무엇이냐고.
그 물음에 나는 한참동안 생각하다가
입을 다물고,
보기 좋게 죽을 준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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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리어스 :
https://curious.quizby.me/5eo1…오픈채팅 :
https://open.kakao.com/me/5eo1…+ 문창과 시절 열심히 스릴러에 대해 연구하다 썼던 작은 조각글입니다. 그때 좀 미쳐있던 때여서 그런지 이 글은 지금 봐도 좀 잘 쓴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