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개월의 유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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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8-14 21:55조회 121댓글 10익애
그의 눈빛은 나의 세상이었고 그의 미소는 나의 계절이었다. 그중에서도 그의 얼굴은 내 모든 기억의 나침반이었다. 나는 그의 얼굴을 사진으로도 품에 안고 다니며 닳도록 들여다보았다. 눈을 감아도 그의 잔상이 선명하게 박혔다.

그러나 사람에게 가장 소중했던 이의 얼굴을 또렷이 기억할 수 있는 시간은 약 8개월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내 세상은 무너졌다. 겨우 8개월이라니. 내 심장 깊이 새겨진 그를 나의 세포는 기껏해야 그 짧은 시간만을 허락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매일 밤 그는 꿈에 찾아왔다. 꿈속에서 그의 얼굴은 선명했고 온기 가득했다. 깨어나면 나는 필사적으로 그의 모습을 되뇌었다. 눈을 감고 그의 콧날을 따라 그렸다. 입가의 작은 미소 주름을 만졌다. 젖은 머리칼을 쓸어 올리는 듯 손을 허공에 헤매었다. 사진을 들고 그 위에 내 손가락을 얹어 감각을 새기려 했다.

기억의 빈틈을 찾으려 끊임없이 퍼즐을 맞췄다. 지우개로 덧그리듯 끈질기게 그의 얼굴을 그려냈다. 마치 내가 매 순간을 놓치면 그는 영원히 사라질 것처럼. 숨이 가빴다. 그 얼굴을 붙잡는 일은 삶을 붙잡는 것만큼이나 고됐다.

하루하루가 지났다. 햇살이 창을 넘고 바람이 불었다. 계절이 바뀌는 동안 나는 더욱 필사적이었다. 그의 사진을 보는 시간은 길어졌다. 사진 속 그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변함없이 따뜻했다. 하지만 묘한 이질감이 감돌았다. 분명 그인데 알 수 없는 낯섦. 그의 미소가 예전만큼 나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의 눈동자에 담긴 빛이 더 이상 나를 향하지 않는 것 같았다. 덜컥 겁이 났다. 나는 이 모든 변화를 거부했다. 기억의 저편에서 그를 잃어버리는 일은 차라리 죽음과 같았다.

그리고 세월이 지났다. 나는 여전히 그의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애써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의 얼굴은 마치 흐릿한 유리 뒤에 있는 것처럼 선명하게 잡히지 않았다. 그의 눈코입은 여전히 있었지만 그 조합에서 오는 그이만의 분위기 특유의 인상만이 뭉뚱그려져 존재할 뿐이었다.

그의 얼굴은 내 안에서 서서히 침식당하고 있었다. 내가 그토록 붙잡으려 애썼던 노력들이 부질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시간은 어떤 기억도 영원히 허락하지 않았다.

눈을 감았다. 그의 미소를 떠올렸다. 여전히 온기가 느껴졌고 가슴이 저릿했다. 그러나 그의 얼굴은 더 이상 그릴 수 없었다. 분명 그인데 그의 얼굴 형태는 희미하게 흔들렸다. 흐릿했다. 그의 얼굴은 결국 세포의 시간에 항복했다.

나의 기억은 그를 시각적으로 영원히 붙잡을 수 없었다. 아프게 눈물이 흘렀다. 그 얼굴은 흐려졌지만, 그 얼굴이 내게 남긴 감정과 사랑의 온기만은 결코 흐려지지 않았다.

이제 그의 얼굴은 내 눈이 아닌 마음속에 머물렀다. 잡을 수 없는 손과 같다. 그의 얼굴은 나의 시야에서는 지워졌지만 나를 채운 존재감은 여전했다. 어떤 형태로든 그는 내 안에 여전히 살아 있었다. 세포가 기억하지 못하는 그의 얼굴. 이제 나는 그의 얼굴을 그리기보다 그가 내게 남긴 계절의 온도를 더듬었다.

덧없이 흐려지는 기억 속에서도

사랑은 언제나 선명하게 빛났다.




✒ || 익애 || 가장 소중했던 사람의 얼굴을
기억하는 시간은 약 8개월 정도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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