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바다에 너와 내가 비쳤다. 검은 물에 선명했다. 찰박찰박. 한창 물이 밀려 들어오다 빠진 모양이라 모래에 눅눅하고 질퍽하게 젖어 있었다. 신발에 질퍽해진 모래가 붙었다. 툭 툭 터니 털어졌다. 물기만 남았다.
질퍽질퍽질퍽질퍽질퍽질퍽질퍽······.
눈을 돌려면 옆에 개새끼가 있었다. 나는 또 귀가 붉어져 고개를 돌릴 수 밖에 없었다. 다행히 밤이 어두워서 내 멍청한 표정만 겨우 보였다. 개새끼는 내 마음도 모르고 옆에서 송하영이 게임을 너무 못한다느니, 순애남이 너무 찌질하다 같은 이야기를 늘어 놓았다. 모두 나에 대한 배려였다.
너는 항상 나에게 손을 내밀었고 너는 또 나를 보며 웃었고. 나는 그런 너를 저항없이 사랑했다. 내가 그리는 미래 한 켠에는 항상 개새끼가 있었고, 내가 꾸는 꿈 속에는 항상 개새끼가 있었다. 나는 어쩌면 개새끼라는 불구덩이 속에 스스로 잠식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봄에도, 여름에도, 가을에도, 겨울에도. 사계절이 너였다. 내 청춘을 너가 이미 가득 집어 삼켰다.
- ···돼지.
그렇게 중얼거린 나를 개새끼는 갑자기 뭔 씹소리냐는 표정으로 바라보다 어디 아픈지 이마에 또 손을 올렸다. 이 새끼 미쳤나? 라고 다 들리는 욕을 했다. 그러다 갑자기 자기 배를 보며 울상을 지었다. -여기서 말하자면 개새끼는 개처말랐다. 살이 절대네버 안 찌는 체질.- 힝 너무 살쪄써··· 라며 혼자 우울해했다. 조울증인가? 너무 오래 지냈더니 정신 상태도 비슷해지나. 나는 개새끼를 달래주려 말했다.
- 너 살 안 쪘어.
- 돼지라며.
- 니가 나 먼저 돼지라며.
- 아니 그···
역시 반박 못 한다며 혼자 또 우울해졌다. 나는 정병 여친을 달래주는 안정형 남친 마냥 -희망 사항이다. 혹은 두더지의 망상이라고 볼 수 있다.- 요란하게 개새끼가 얼마나 말랐고 내가 돼지라며, 이번 여행에 자신이 얼마나 개처먹었는지 설명했다. 3분간 진땀을 빼니 개새끼가 또 헤헤 웃으며 그랭? 하고 쳐다보았다.
- 너두 이번에 별로 안 먹었잖엉.
그러고 많이 좀 먹으라며 실실 웃는데. 아. 심장이 너무 힘들다. 고작 네 작은 웃음에 나는 또 나는 속으로 너와 영원을 오백번 약속했다. -흔한 일이다.- 밤바다가 철썩 소리를 내며 큰 파도를 일었고 후유증처럼 푸르르 떨렸다. 청춘에도 후유증이 있나. 사랑에도 후유증이 있나?
철썩철썩철썩철썩철썩철썩철썩철썩철썩····.
질퍽질퍽열병
근처 거리만 간간히 걷다 홀린 듯 함께 바다 근처 모래로 걸었다. 우리 발에 치여 모래가 사르륵 쓸려 나갔다. 솔직히 신발애 모래가 묻는 게 싫었지만 -낭만과 감성은 개나 준다.- 개새끼가 이뿌당··· 이라며 웃는 갈 보니 갑자기 신발에 다다닥 붙은 모래가 예뻐 보였다. 내가 생각해도 존나 어이없다.
달빛에 조금 찌푸린 니 눈썹에. 보드랍게 흔들리는 니 솜털에. 니 향기에 취해, 바다의 비린내에 취해, 맘이 간질거려. 두 볼을 어루만지는 니 품처럼. 한가로이 표류하는 먼지처럼. 넌 거기 있지만 왠지 닿질 않아.
곁에 머물러 줄래? 내게 약속해 줄래. 손 대면 날아갈까 부서질까. 겁쟁이인 나는 또 도망쳐. 시간을 멈출래. 이 순간이 지나면, 없었던 일이 될까? 널 잃을까? 겁나. 아무것도 생각하지 마. 넌 아무 말도 꺼내지도 마.
그냥 내게 웃어줘.
손이 덜덜덜 떨렸다. 내가 갑자기 고개를 숙이니 개새끼가 얼굴을 쇽 들이 밀었다. 아파? 하고 또 묻는다. 아, 위험하다. 온몸이 제어를 못하고 덜덜 떨렸다. 시야가 털털 떨렸다. 개새끼가 순식간에 흐려지고 아득해진다. 눈을 꾹 감았다. 주먹을 꾹 쥐었다. 눈 아래로 뜨거운 게 흘렀다. 네가 흘렀다.
줄줄줄줄줄줄줄줄줄줄줄줄····.
- 야, 울어? 아니 너 울어?
개새끼 목소리의 당황스러움이 먹먹함에 묻혔다. 다급하게 손으로 눈물을 꾹 꾹 눌러 닦았다. 그래도 계속 흘렀다.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열을 내린지 오래거든. 머리 속은 너로 가득했는데. 개새끼는 내가 어디 심각하게 아픈 줄 알고 분주해졌다. 열이 나는지 보고 온몸을 살피고. 들켰다. 5년이나 참았는데. 바보처럼. 너를 보고 내가 내 감정을 누르지 못하고 울어버렸다. 세상에서 가장 추한 꼴로.
- 야, 야 너 내가 약 사올게.
- 딱 기다려.
개새끼는 내 대답을 듣기도 전에 뛰어갔다. 네가 멀어졌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아. 나는 개가 아니라서 기다리는 거 못해. 달렸다. 너를 잡으러 달렸다. 시야가 좁아서 중심도 못 잡았다. 모래가 걸리적거렸다. 한번 휘청여서 튄 모래가 흰 옷에 묻었다. 바람이 세게 불었다. 추워. 가까워진 개새끼 손목을 꾹 잡았다.
- 가지마····.
고백이나 다름 없는 말이었다.
그 이후 개새끼는 한참 나를 달래고 왜 그러냐 물었다. 그 결과 내가 한 대답은 눈에 모래가 들어갔어. 였다. 개새끼는 진짜 존나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생각해도 진짜 어이없긴 하다.- 계속 아 왜 울었는데에 하고 매달리다가 거짓말쟁이. 이 한마디 하고 무릅을 툭 툭 털고 일어났다. 나도 같이 일어났다. 그러다 휘청. 순간 개새끼가 내 어깨를 잡았다. 턱. 몸이 계속 떨렸다.
- 왛ㅎ 존나 순발력 미친.
- 나 자신 개처멋있어.
양 팔로 자신을 둘러 안고 몸을 돌리며 뿌듯해하는 그 모습에 나는 운 것도 잊고 픽 웃음을 터트렸다. 어 니 웃었당? 크큭. 개구진 웃음소리는 덤. 벤치 건너 밤바다를 바라보았다. 오락실에서 기어 나온지 벌써 두 시간이 다 되었다. 개새끼는 이제 괜찮아? 아까 힘들어 했잖아. 라며 배를 툭 쳤다. 역시 알고 있었군. 나는 어어. 라고 대답하고 내 배를 친 주먹을 쥐고 살랑살랑 흔들었다. 까분다? 개새끼는 또 웃었다. 예쁘게.
- 다음에 또 오자. 바다.
- 오늘 좋았나 봐? 다음엔 울지 마라.
바다로 당장 달려가고 싶은 기분이 들어.
네 옆에 있다가는 익사할 것 같아.
머나먼 수평선 너머로 도망치고 싶어.
나는 또
파들파들파들파들파들파들····.
사라지려 하지 마.
https://curious.quizby.me/ugun…^ 퇴고 없어요 영원을 여름하나요?
BGM: butterfly (prologue mix) - BTS
가사 인용 일부 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