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6-25 23:56•조회 54•댓글 2•미드나잇💜𝐦𝐢𝐝𝐧𝐢𝐠𝐡𝐭🌌
1950년 12월, 이곳, 흥남은 지옥이었다. 영하 30도에 육박하는 맹추위는 살을 파고드는 듯했고, 총성은 쉴 새 없이 터졌다. 중공군에 밀려 후퇴하던 국군과 유엔군은 흥남으로 집결했고, 그 뒤를 수십만 명의 피난민들이 필사적으로 따랐다.
늙은 부모를 업고 온 청년, 품에 갓난아이를 안고 흐느끼는 여인, 부모를 잃고 울부짖는 아이들의 비명이 눈보라 속에서 아우성쳤다.
영희는 열두 살이었다. 작고 마른 몸으로는 추위도, 배고픔도 감당하기 힘들었고 심지어 며칠 전, 폭격으로 어머니를 잃었다. 아버지는 이미 전쟁 초기에 전사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영희에게 남은 것은 동생 영철이와 손을 잡고 부두를 헤매는 것뿐이었다. 영철이는 겨우 다섯 살이었다. 추위에 파랗게 질린 채로 "누나, 배고파. 추워..."를 반복했다.
배를 타려는 인파는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군인들은 피난민을 막아섰다. 군인들은 군수물자를 실어야 할 배에 민간인을 태울 여유가 없다고 냉정하게 외쳤다. 그러나 영희는 포기할 수 없었다. 영철이의 작은 손을 더욱 세게 잡았다. "조금만 더 참아, 영철아. 우리 꼭 살 수 있을거야"
노을이 지고 있을 때, 마지막 배가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메러디스 빅토리호'. 원래는 대량의 무기와 군수물자를 싣고 온 7,600톤급 화물선이었다. 배 주변을 맴도는 수많은 피난민들의 절규는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제발 살려주세요!", "우리도 사람입니다! 제발 버리지 마세요!" 울부짖는 소리가 바다를 메웠다. 미군 병사들은 냉정하게 피난민들을 막아섰다.
그때였다. 부두 한편에서 미 10군단장 에드워드 알몬드 장군에게 간절히 매달리는 한국군 장교의 목소리가 들렸다. 현봉학 고문을 비롯한 한국군 관계자들이었다. 그들은 "장군님, 이 사람들을 버리고 갈 수는 없습니다! 저희가 이들을 외면한다면, 후대에 어떤 역사를 남기겠습니까! 군수물자보다 소중한 것은 인간의 생명입니다!" 라고 외쳤다.
알몬드 장군은 처음에는 반대했다. 군사 작전의 원칙상 10만여 명의 피난민을 태우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극한의 추위와 죽음의 그림자 앞에서 간절히 살려달라 애원하는 피난민들의 얼굴, 그리고 차마 버릴 수 없다는 한국군 장교들의 필사적인 호소는 그의 마음을 흔들었다. 고뇌에 찬 침묵 끝에, 알몬드 장군은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 명령은 곧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레너드 라루 선장에게 전달되었다. 라루 선장은 눈앞의 광경에 망연자실했다. 화물선에 실린 엄청난 양의 폭발물과 연료, 탄약들. 이 모든 것을 바다에 던지라는 명령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배의 안전과 생존자들의 위험을 동시에 감수해야 하는 미친 짓처럼 들렸다. 그러나 라루 선장은 잠시의 망설임 끝에 곧 결연한 표정으로 명령했다.
"배에 실린 모든 무기를 바다에 버려라! 탈 수 있는 만큼 사람들을 태워라!"
믿을 수 없는 일이 흥남에서 벌어진 것이다. 수십만 톤에 달하는 엄청난 양의 폭탄과 탄약들이 차가운 바다로 내던져졌다. 굉음과 함께 무기들이 물보라를 일으키며 가라앉는 모습은 사람들에게 놀라움과 감동을 주었다. 죽음의 문턱에서 피어난 생명의 기적이었다. 이 차가운 전쟁터에서, 그 무엇보다도 인간의 생명을 최우선시 한 감동적인 희생이 이뤄진 것이다.
갑자기 배의 문이 활짝 열렸다. "탈 수 있는 만큼 타라!"라는 외침이 들렸다. 사람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한꺼번에 배로 달려들었다. 영희는 영철이를 안고 사람들 틈새로 배에 올라탔다. 발에 밟히고 밀려 넘어지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서로가 서로를 도우며 10만여 명의 피난민들이 배에 탑승했다.
배 안은 사람들로 꽉 차 발 디딜 틈도 없었다. 영하의 날씨에 난방 시설도 제대로 없는 화물선이었지만, 사람들의 숨결로 가득 찼다. 영희는 영철이를 안고 웅크렸다. 영철이는 춥고 배고픔에 지쳐 잠들었고 영희는 잠든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새벽녘, 배가 거대한 파도를 가르며 남쪽으로 향하는 동안, 영철이는 배고픔에 기력을 잃어갔다. 영희는 울며 말했다. "영철아, 제발 눈 좀 떠봐…." 그때, 주위에 있던 한 여성이 다가왔다. 여성은 자신의 품에 품고 있던 낡은 담요와 작은 빵 조각을 꺼내 영철이를 덮어주었고 빵을 손에 쥐어주었다. 그리고는 영희를 보며 말했다. "아이야, 힘내렴. 이 아이는 반드시 살 수 있을거야" 여성의 따뜻한 손길에 영희는 왈칵 눈물을 쏟았다. "감사합니다...." 서로에 대해 하나도 알지 못하는 이들이었지만, 그 순간 배 안의 모든 사람들은 하나였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서로에게 기대고 의지하며 인간의 온기가 피어났다.
며칠간의 항해 끝에 배는 거제도에 도착했다. 수많은 피난민들이 무사히 상륙했고, 심지어 배 안에서 새로운 생명들이 태어나 그 아이들에게 '김치'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영희는 영철이와 함께 배에서 내렸다. 차가운 바닷바람이 불어왔지만, 그 바람은 희망을 싣고 오는 듯했다.
흥남에서의 마지막 밤, 죽음의 문턱에서 기적처럼 살아남은 사람들. 그들의 눈에는 슬픔과 고통이 여전히 있었지만, 그보다 더 강한 생명의 의지와 서로를 향한 인간애가 빛나고 있었다. 영희는 낡은 담요를 덮고 잠든 영철이를 다시 한번 품에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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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만여 명의 목숨을 살릴 수 있게 해주신 6.25전쟁 영웅 현봉학 박사님 정말 감사드립니다. 실제로 흥남철수가 크리스마스의 기적이라고 불린다고 하더라고요! 뭔가 감동적이지 않나요? ㅎㅎ
오늘이 6월 25일이라 시험기간임에도 불구하고 한 3일 전 부터 이 소설을 썼는데 마지막에 막 몰아쓰느라 조금 이상합니다.ㅠ...마음에 안들어요.. 흑흑 그래도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글 쓰면서 이 사건에 대해 많이 조사해보긴 했지만 그래도 제가 틀린 부분이 있다면 반드시 알려주세요!! ㅠㅠㅠ 그럼 좋은 밤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