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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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11 21:48조회 41댓글 4한지우
차가운 달빛이 창틀을 타고 내려와 오래된 나무 바닥 위에 은빛 춤을 추었다.
나는 숨죽인 채, 그 공간을 채운 침묵을 바라보았다.
침대 위에는 희미한 숨결 만을 남긴 어머니의 얼굴이 누워 있었다.

“아들아,”
어머니의 입술은 바람 빠진 풍선 같았지만, 목소리는 유년의 그날 그대로 또렷했다.
“겁내지 말아라. 나도 곧 너와 함께 떠날 테니까.”

내 가슴을 조여 오던 불안이 느슨해졌다.
죽음이란 누구나 피할 수 없는 그림자가 아니라,
마침내 온전한 휴식으로 인도하는 부드러운 손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침묵이 다시 살을 붙이며 이어질 때,
문틈 너머에서 누군가 걸어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어서 와, 오래 기다렸단다.”
희미한 미소를 머금은 채로 문이 스르륵 열렸다.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 순간, 내 안에서 묵은 기억이 깨어났다.
어릴 적 밤이면 내 손을 잡고 달빛 아래 거닐던 어머니,
문득 길을 잃으면 눈앞이 깜깜해져도
늘 내 앞에 서서 길을 밝혀 주던 그녀.

“나는 언제나 네 곁에 있었단다.”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그 말에 나는 한 줄기 빛을 보았다.
죽음이라는 경계마저 넘어
사랑은 여전히 이 몸을 맴돌고 있었다.

숨소리가 아득해지는 사이,
어머니의 손이 내 손을 놓았다.
그리고 나 또한, 그 손을 놓았다.

깜깜한 밤의 고요 속에서
두 영혼은 은빛 실처럼 서로를 감싸 안았다.
그리하여 우리는 동시에 사라졌다.

By 한지우

한지우)언젠가는 죽을 인간의 운명을 결국에는 마주칠 텐데 왜 우리는 아프고,고통을 받으며 운명을 받아들여야만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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