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분홍 벚꽃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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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0-15 19:52조회 62댓글 2해월
벚꽃잎들이 햇살 아래 눈처럼 흩날렸다. 그 모습에 네가 문득 말했다.

"내려오는 벚꽃잎을 잡으면 소원을 이루어준대."

네 목소리는 봄의 햇살처럼 가벼웠다. 나는 괜히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을 감추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셀 수 없이 많은 꽃잎들이 빙글빙글 돌며 지상으로 향했다. 네 눈은 그중 가장 예쁜 연분홍색 조각을 쫓고 있었다.

손바닥 안에 어떤 간절함을 담으려했다. 너는 어떤 소원을 빌지. 나는 그게 '대학 합격'일지, 아니면 '짝사랑 성공'일지 혼자서 상상했다. 네 옆에 서서 같이 손을 뻗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들뜬 기분이었다.

가장 빠르게 내려오는 꽃잎 하나가 네 손을 스쳤다. 네가 잡지 못하고 놓쳐버린 아쉬움에 작게 탄식했다. 내가 정말 잡고 싶었던 것은 벚꽃잎이 아니였다. 나는 이 순간, 이 봄, 그리고 네가 곁에 있는 이 시간을 붙잡고 싶었다.

순간, 바람이 멎었다. 마치 세상의 모든 소리가 멈춘 듯 했다. 마지막 꽃잎 하나가 시간이 멈춘 것처럼 내 코앞에서 천천히 내려앉았다. 나는 그것을 잡지 않았고, 내 시선은 꽃잎이 아닌 너를 향했다. 네 눈이 나를 보았다. 그 눈 속에 봄이 가득 담겨 있었다.

"나, 소원 빌었어."

네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얼굴에는 벚꽃잎 같은 환한 기쁨이 피어 있었다.

"뭐라고 빌었어?"

"비밀. 소원은 말하면 이루어지지 않는대."

꽃잎을 잡으면 소원을 이룬다는 너의 말. 나는 내가 잡지 않은 그 꽃잎이 나를 이룰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네가 지금처럼 늘 웃어주기를 바라는 소원. 내년 봄에도, 그다음 봄에도 너와 함께 이 길을 걸을 수 있기를 바라는 소원.

우리가 함께 걷는 이 순간은 어떤 마법 같은 기적보다도 소중했다. 청춘은 이렇게 서툰 간절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주머니 속에 숨겨둔 손을 펴보았다. 방금 전 네 머리 위에 살짝 내려앉았던 꽃잎 하나가 손바닥 위에 있었다. 너는 모르겠지. 이 작은 꽃잎이 이미 나의 가장 큰 소원을 이루어주었다는 것을.

나는 그 꽃잎을 손바닥 안에 꼭 쥐었다. 그리고 네 어깨에 닿을 듯 말 듯 가까이 걸었다. 이 봄의 끝자락에서 우리는 가장 빛나는 순간을 만들고 있었다.

우리가 함께 걸어가는 이 순간 자체가 이미 가장 예쁜 청춘의 소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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