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4-20 20:33•조회 22•댓글 1•빈해윤
"곧 우리의 아이가 태어나면, 이름은 영이라 짓자."
안색이 파르개해진 부인을 다독이며 속삭였다. 넘실넘실 흘러오는 저 해수를 도외시할 수는 없기에, 그대가 낭자한 사체로 메워진 저 광활한 바다의 미개한 익사체가 되지 않기만을-
덧없이 구태여 간절히 기도하는 것이 찰나의 전부였다. 그리고선. 무한한 영원을 함께하자던 저의 잔향을 단념한다면, 나만은 연명할 수 있음을 알기에-
모순스럽게도, 날 저에게서부터 멀리로 떼미는 무지하고도 멍청하리만큼 착해빠진 그녀의 면상을 어루만지며, 나의 내면에 잔존하여있는 추악의 파편을, 그 잔혹한 이기심을- 그녀가 모른 체 해주기를. 속으로 간절히 간구하였다.
"면아… 아가, 우리 아기가 아빠 먼저 도망치래. 그니까 먼저 가. 곧 따라갈게. 나 믿지?"
면은 정말 미련하리만치 나를 사랑하지만, 애석하게도 나보다는 저를 조금 더 사랑해서. 종국엔 이 곳을 떠나, 홀로 연명할 것이다. 그는 언제나 영원을 어리석다 칭했으니까. 영원조차 결국엔 와해될 것이라 말했떤 그니까. 부디 이번에도 그가 같은 생각이길 바랐다.부디 내가 그의 죄책을 덜어줄 수 있기를.
그를 저에게서부터 감죄하여 줄 수 있기를. 열렬히 소원하였다.
"…유하나. 절대 나보다 먼저 죽으면 안 돼. 꼭 먼저 구조되어, 날 기다리고 있어야 해."
"응. 약속할게. 꼭 그럴게."
그대의 숨결이 곧 침윤되어 사라질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곧 아이와 나의 숨이 멎어 산산이 흩어질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우리는 서로의 무운을 빌었다. 폐에 바닷물이 울컥울컥 차오른다. 점점 시야가 까맣게 뒤덮이고, 온 몸의 신경이 단절된다. 당장이라도 명이 끊길 것만 같아. 순간, 부디 아이가 조금이라도 더 세상에 잔존하길 바랐다.
태동이 끊긴 것은, 단순히 내 감각 단절로 인한 착각이라- 아이는 여전히 살아있다고 그리 단언하고 싶었다.의식이 점점 흐릿해져가는 도중에도, 못난 어미는 제 아이에게 사죄를 빌었다. 허나 이 무거운 몸뚱아리로 그를 좇아 숨을 부지하는 것은 기적이나 다름이 없고, 난 신께 기적을 선사받을만한 여타자별한 인물이 아니다. 그러니 그런 기적이 내게 일어나지 않는다 해도, 내가 지금 당장 단멸한다 하여도-
면만이 연명할 수 있다면, 그가 살아남아 영과 나를 기억해준다면. 나는 기꺼이 신의 자비에 감사를 표할 것이다. 다만, 영원이라는 없다는 네 말에 끄덕일 수는 없네- 면. 난 이렇게 죽는 순간까지도 영원히 널 사랑하잖아.저 광막하고도 망막한 바다의 어딘가에서는 뒤져버린 유하나와 영의 사체가 둥둥 떠다닐 것이다. 아이를 뱃 여인이 그 찰나의 시간 동안, 휘몰아치는 해일에서부터 살아남을 수 있을리라 만무하므로. 저와 아이를 죽음으로 떠민 빌어먹을 남편이 있었음으로.
"유하나유하나유하나…"
흐릿해진 그녀의 이름 석 자를 간신히 토해내었다. 무한을 사랑하던 그녀의 이름은 더럽게도 유한과 닮아 버려서, 단 그 세 글자를 토해낼 때마다 턱턱 막히는 숨에 발버둥쳤다. 그것이 내가 그녀와 0에게 회개하는 유일한 방식이었으므로. 그래야만 그녀가 다시금 너그러이 날 품어줄 것 같았음으로. 유하나는 이미 저 바다에서 썩어가는 존재임을 알고 있었음에도. 애석하게도 나는, 뒤져버린 그녀에게 구태여 빌었다.
어리석으리마치 이기적인 나의 목을 더 죄어달라고. 잔인하리마치 흉악망측한 나의 숨을 끊어달라고. 언젠가의 뭉근했던 키스와 분유하는 나의 호흡을 멈춰달라고. 당신과 0을 떠나 독존하려하였던 내 찰나의 이기심을. 그가 가능하리라 믿었던 그 과거의 무지함을, 부디 용서하여 달라고. 그러나, 영원이라는 실재한다는 네 말에 끄덕일 수는 없네-
내 전부인 네가 부재하는데 도대체 뭐가 영원하다는 거야.아아, 신이시여- 고결한 그녀를 감히 미친한 제가 품은 것이 잘못입니까. 그런 그녀가 비천한 저의 아이를 베게 된 것이 잘못입니까. 혹은 너무나도 많은 신을 섬긴 것이 잘못이었을까요. 저의 모든 추악과 죄악을 추인하리니, 저를 제물 삼아 신께 제사를 올리리. 부디 그대께서 나를 심판하여주시오. 제 아이를 뱃 여인을 죽음에 이르게 한, 추악하고 불경한 자를 멸하여주시오. 다시는 당신께 기도 올리지 않으리니. 다만 나를, 악에서 구하지 말아주시오.
부디- 날 망가뜨려주시오.있잖아, 그대. 사실 나도 영원을 열애했어. 단지 우리에게 영생이 아닌 영면이 찾아올까 두려웠던 것 뿐이야. 그렇지만, 그댄 영면까지만도 영원이라 칭하며 사랑하겠지. 그렇다면- 우리 함께. 영원할까?
*영면(永眠): 영원히 잠들다.